작성일 : 18-08-22 22:10
[Carpe Diem] 교수로서의 정체성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671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교수로서의 정체성 위기

내가 매년 여름마다 연구를 위해 머물고 있는 이타카는 뉴욕주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도시 이름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딧세우스의 고향 이타카에서 따왔다. 북부 뉴욕에는 희랍 신화에서 이름을 따온 도시들이 유난히 많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마을로는 Homer, Ulysses, Rome, Syracuse, Attica, Alexander, Aurelius, Brutus, Cato, Scipio, Sempronius, Aurora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1800년대부터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한 뉴욕주 북부의 마을들은 누군가가 희랍신화를 상상하며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이타카가 섬인 반면 이곳 시골마을 이타카는 계곡과 호수의 마을이다. 주변에 계곡이 많이서 이타카 gorgeous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딧세우스가 자신의 아들을 맨토에게 맡기고 오랜 전쟁을 끝내고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왔듯이 지난 20년간 한국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면 이타카로 돌아와 연구와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질문했다.

몇 년전부터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질문이 대학교수로서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사실 모든 고급지식을 대학보다는 구글이나 무크 등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다. 이런 세상이 도래하자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문제가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차별적으로 연구해서 차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세상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가는 방향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이 과연 존재이유가 있는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구글이나 무크 지식플랫폼에서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을 단지 대학이 지금까지 축적한 상아탑의 명성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친다면 대학은 과거의 명성을 임대해서 먹고 사는 임대업자로 전락한 것이다. 그간 나름 고급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 먹고 살았던 교수들에게 지식 플랫폼들에 위한 지식의 민주화는 이들의 밥그릇을 탈취해갔다. 학습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 쉽게 가르쳐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보습학원 강사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밥그릇 뿐 아니라 손발까지 절단해 불구로 만든 것이다.

지식전수가 더 이상 사명이 될 수 없다면 교수가 살아남기 위한 사명은 어떻게 다시 설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가끔 학생들이 촛불시위 현장에 나타나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이들은 촛불을 들고 나에게 "이게 대학이냐?" "당신들이 교수냐?", "이게 경영학이라고 가르치는거냐?"는 등등 근원적 정체성을 흔드는 시위를 벌이고 돌아간다.

존재이유를 재설정하지 못하고 헤메는 대학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족에게는 조심스럽게 조기에 퇴직할 수도 있다는 문제를 꺼냈지만 다른 해결 방안이 있다면 시도도 해보고 싶다. 대학교수로서의 시대에 맞는 의미있는 새로운 정체성을 도출하고 이 정체성에 근거해 새로운 미션을 찾지 못한다면 대학교수하는 일이 엄청 괴로운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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