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않 좋은데 학교 수업에 들어가야 하거나 어디 중요한 특강을 해야 할 때 내 몸이 불편한 상태를 교실 밖에나 특강장 문 앞에 걸어 놓았다가 돌아갈 때 다시 찾아가야 한다. 어느 때부터 이 방법보다 더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학생들 수업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나 이 특강을 통해서 전달해야 하는 사명에 대해 다시 각성하고 이 사명으로 가상의 심리적 울타리를 만들어내면 내가 문 밖에 걸어놓고 들어온 나쁜 기운들이 더 이상 침범하지 못했다.
우리가 두르고 있는 심리적 울타리는 우리의 생존과 성장의 문제를 관장한다. 어떤 사람은 똑 같이 위급한 상황에서 여유만만하고 어떤 사람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해서 조급하게 행동한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런 차이가 왜 생기는 것일까?
상황이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인식하는 주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상황이 이 주체를 침범해서 객관적 상황을 강요할 방법은 없다. 상황이 암울할 때 상황이 암울하다고 인식해야만 이 암울한 상황이 주체에게 현실이 된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진 능력은 바로 자신과 상황 사이에 울타리를 만들어 버퍼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울타리를 통해 만들어진 버퍼존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지대를 제공한다.
옛날에는 자연의 침입으로부터 심리적 안정지대를 만들기 위해 공동의 부락을 만들었다. 적의 침입으로부터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성을 쌓았다. 느헤미아가 이스라엘로 귀국한 후에 처음 시작한 일도 바로 성전이 아니라 성벽을 복원하는 사업이었다. 공동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지대가 없다면 환경과 적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를 벗어날 수 없고 이 심리적 불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어떤 것도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동물적 번식을 넘어서 번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다 심리적 안정지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
심리적 울타리는 최근에 애드몬슨이라는 학자가 많이 연구했지만 실제로 욕구단계설을 주장하는 매슬로우나 앨더퍼에서 기원한 것이다. 매슬로우는 우리가 두르는 심리적 울타리를 다섯단계로 구획했다. 생존을 위한 울타리, 안정적 생활을 위한 울타리, 관계를 통한 울타리, 이기적 자아를 넘어서는 울타리, 자기실현을 위해 만들어 놓은 울타리이다. 앨더퍼는 매슬로우의 울타리를 안정의 울타리, 관계의 울타리, 성장의 울타리로 단순화 시켰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울타리는 앨더퍼가 이야기한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안정적 직장이나 안정적 생활을 마련하기 위한 울타리이다.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이 안정의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관계의 울타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인맥도 쌓고 정치적 연합세력도 만들어낸다. 안정의 울타리를 마련해도 그 안에서 앞만 볼 수 있는 자신은 뒤에서 공격하는 적이나 경쟁자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 관계의 울타리까지 있다면 이런 상황에 노출되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정의 울타리나 관계의 울타리는 생존을 위한 울타리이지 혁신과 변화와 번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한다.
성장을 위한 울타리가 마련이 된 사람들만 그 성장의 공간 안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신장시켜가며 미래를 창조한다. 성장을 염두에 둔 모든 사람들이나 조직이 지향하는 것은 목적과 사명이다. 결국 성장의 울타리는 사명과 삶의 목적을 각성한 사람들만 만들어내고 이 울타리가 주는 무궁무진한 혜택을 즐긴다.
사명의 울타리는 관계와 안정의 울타리와는 달리 선제적이다. 사명과 목적을 각성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고, 자신이 하는 일을 보다 혁신적을 완수하려고 하며, 더 도전적인 일을 찾아서 즐긴다.
결국 사람들이나 조직은 자신이 두르고 있는 울타리의 크기만큼만 성장한다. 내가 만들어 두르고 있는 심리적 울타리의 수준은 어떤 것일까? 우리 나라는 젊은이나 나이드신 분이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안정의 울타리에 갇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