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 관계로 지내다 사소한 일로 관계 문제가 생기면 인간인 이상 처음에는 서로의 자발적 자정능력을 발휘해서 좋게 해결하려 시도한다. 자신이 가진 관계의 기술과 친구의 친구의 힘을 빌려서 관계를 복원해보려고 시도를 해보다 안 되면 서로를 법정에 소환한다. 법정은 결국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마지막 종착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법정에 서로를 소환해 검사, 변호사가 고용되고 판사가 최종 판결을 내서 누구의 손을 들어 주면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 지점이 건강한 사회를 무너트리는 블랙홀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발적으로 만든 관계가 공정성의 법정에 소환되는 순간 역설적으로 모든 관계는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간 피땀흘려 만든 사회적 자본의 잔고가 한 순간 사라진다.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를 법정에 소환해 판사, 검사, 변호사의 힘에 맡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적 기반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사, 변호사, 검사가 주도하는 법정은 사회적 자본을 소실시키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법이 관계의 종착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관계가 소중할수록 상대를 법정에 소환하지 않는다. 판사, 변호사, 검사의 법적 공정성에 의존하는 관계로 전락했다는 것은 판결이 어떻게 나오던 관계의 종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서로의 자발적 의지로 얼굴 볼일은 없어지는 관계가 된 것이다. 관계문제가 생길 때마다 법의 공정성에 의존해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복원할 수 있는 건강성과 회복력이 무너진 사회를 상징한다.

우리는 굳이 공식적 법의 공정성의 의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유사법정을 만들고 상대를 이 유사법정에 소환한다. 유사법정에 소환해 서로가 변호사, 검사, 판사가 되어 서로를 비난하고, 자신을 변호하고, 상대를 심판하고 판결을 내린다. 어떤 판결이 내려지던 유사법정에 소환된 관계는 공식적 법정에 소환된 관계만큼 위험한 관계를 산출한다. 관계종결의 전조이다.

법의 공정성이 사회와 관계를 재단하는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관계를 생성해낼 능력을 상실한 비정상적 문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은 자율적 관계를 생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을 빌미로 관계를 파괴시키는 역할의 주역이다.

건강한 시민사회는 미래와 공의를 생각해가며 당장의 시시비비보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이 먼저 한 발 더 가주는 자발성을 가진 시민들이 모인 사회를 의미한다.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같아도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단 일단은 상대를 위해 먼저 한 발 양보하고 이를 통해 관계가 복원되면 복원된 관계를 기반으로 상대에게도 걸 맞는 양보도 요구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다. 이런 자발적 양보를 가진 사람, 잘 난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이 먼저 실천하는 사회가 시민사회의 척도다.

대부분 글로벌 초우량기업들도 법정소환의 문제점에 착안해서 회사의 문화적 그라운드 룰을 다음처럼 정한다. 첫째, 상대를 법정에 소환하기 전에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확인하라. 사랑하는 마음이 확인이 안되면 법정에 소환하지 마라. 둘째, 법정에서는 정의와 공정성이 아니라 사랑, 성장, 미래라는 목적함수를 염두에 두고 서로를 건설적으로 피드백하라. 셋째, 서로의 피드백에 대해 동의가 이뤄지면 서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서로를 법정에 소환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에 대한 피드백을 실현시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상대의 사랑에 보답하라. 비난과 판단을 중단하고 사랑을 실현시키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

지금 대한민국처럼 공정성을 빌미로 판사, 변호사, 검사들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미래를 찾는 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공정성이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성숙된 자발적 시민의식에 의해서 작동되는 사회를 비전으로 제시할 수 있는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전두환 시대 내걸었던 슬로건인 <정의 사회 구현>이 지금도 대통령 후보들의 슬로건으로 반복되는 것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비전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