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의원이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주장에 대해 하태경 의원, 이준석대표가 동조하고 나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치인들이 이런 논란을 벌이는 이유는 여가부가 이대남 이대녀로 표출된 여성과 남성간의 젠더 갈등을 더 키우는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이대남 이대녀 갈등은 정치가들이 키운 것이지 여가부가 나서서 한 일은 아니다. 마치 이대남 이대녀 갈등이 남녀간 모든 갈등을 대변하는 것처럼 부각시켜 이 책임을 여가부에 돌리는 것은 치졸할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현실은 기업과 조직 내에서도 고위직과 임원급에 이를수록 성 차별이 심각하고, 군대, 종교 등 사회의 각 영역에서도 승진, 임금, 처우 등에서 보이지 않는 심각한 차별이 실제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OECD 평균에 비춰봐도 경쟁력이 턱없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인들 주장이 현실을 무시하는 대안없는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다.
이런 논란은 대통령이 나서서 여성친화적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장관후보나 임명직에서 최대한 여성을 우대하고 있음에도 발생하고 있어서 문제다. 국민은 대통령의 성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대통령의 의중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희정씨를 비롯해 현 재직 시장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핵심 인물들이 성추문의 중심이 되어왔다. 성추문에 대한 일말의 반성없이 정치공학에 따라 치뤄진 시장 보궐 선거도 이런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여기에 여성할당제를 반대하는 능력지상주의자의 당대표 당선, 엔트리 레벨에서 여성들과 경쟁해야 하는 이대남들의 상대적 박탈감, 위험의 외주화로 죽음에 심각하게 노출되 있는 성의 특정성 등이 노이즈로 겹쳐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여성가족부 수장인 여성장관이 시장들의 성추문 문제를 놓고 성인지 감수성을 의심케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이런 여러가지 돌출된 문제들이 실제 여가부와는 상관이 없음에도 여가부가 대표적으로 욕을 먹는 이유가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성가족부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 성에 관한 적절한 목적함수를 진화시키는데 실패한 것이 문제다. 여성과 남성 간의 제로섬적인 성평등을 넘어서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했다. 성협업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치를 만들어 가는 부서로서의 사명이 목적함수로 제시되어야 했다. 플러스 섬에 근거한 성통합의 목적함수를 제시할 수 있었어야 함에도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성을 범주적으로 이원화 시켜놓고 이 범주의 한 편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듯한 정책이 성 통합의 비전을 놓쳤다. 성 통합의 비전이 사라지니 성에 관한 모든 이슈가 지금 있는 것을 나누는 정치적 제로섬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이대남 이대녀는 이런 정치가들 싸움의 희생물이다. 이대남 이대녀는 싸움을 부추기기 위해 정치가들이 만든 가짜 허수아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가족부 폐지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국가인재풀의 상단을 구성하는 고위직에서의 고질적 불평등, 돌봄의 사회화, 청소년 문제는 여가부에 고유한 업무이고 국가 경쟁력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는 이슈다. 단 시대가 변화한 만큼 성평등에 고착된 젠더갈등을 넘어 젠더 통합이라는 비전을 포함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의 목적함수 변화가 요구된다. 또한 평등을 넘어 통합이라는 목적함수를 실현할 수 있는 부서의 정체성을 반영하기 위해 지금의 여성가족부라는 이름보다 가족 및 젠더 통합부 (Ministry of Family & Gender Integration)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젠더는 Jakobovits가 지적한 의미물림(Semantic Satiation)으로 고통을 받는 대표적 용어다. 의미물림이란 잘못된 정의로 지속되어 사용되는 순간 원래 가지고 있던 중요한 의미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젠더라는 용어가 정치 페미니스트들의 전투용어로 전용되어 편파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물림에서 벗어나는 해체적 실험을 시도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실제 젠더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중요한 이슈이다. 현대적 의미의 젠더를 여성/남성 두 성으로만 한정해 보는 학자들은 없다. 젠더에는 전통적 남성 여성을 넘어 다양한 범주의 N 젠더가 함축되어 있다. 남녀 갈등이 아니라 N 젠더 간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도록 젠더 이슈가 새롭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젠더 통합이란 성평등의 차원을 넘어서 성협업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 부처의 핵심 가버넌스 구조에는 성통합과 성협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대거 포함되어야 한다. 성협업과 성통합은 처음부터 여성들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문자 여성과 대문자 남성의 가면을 벗어던진 사람들이 서로의 가슴을 맞대고 논의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문제다.
마찬가지로 가족의 개념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전통적 가족의 범주를 벗어난 가족 형태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 전통적 범주를 벗어난 다양한 N 가족 개념들을 인정하고 이것을 제도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 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젠더나 가족의 다양성 문제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면 젠더 가족부는 다시 한 번 목적함수를 다양성 포용부(Ministry of Diversity & Inclusion)로 진화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이 다양성 갈등의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성 문제는 젠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대, 학연, 지연, 장애인, 비정규직, 이민자 등의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의 다양성 이슈가 분출되고 있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는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들을 포용하고 이들이 속한 사회적 범주를 초월해 유연하게 협업에 동원할 수 있는 지에 따라 국가 경쟁력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다양성과 포용의 문제는 국가적 과제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상대를 이방인으로 취급하지 않고 공동으로 합의한 대한민국의 존재이유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허심탄회하게 협업하여 미래를 도출하는 사회가 제대로된 민주 시민사회의 본질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당신들은 표라는 정치공학을 넘어 한국사회의 주류에 포함되지 못한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소수 이방인들 아픔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십니까? 본인의 혈연적 가족이 아닌 여성들에게 표를 생각하지 않고 한번이라도 가족처럼 애틋하게 대해본 적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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