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또래의 친구들은 지금 대부분 정년퇴임해서 인생 삼 막을 시작하고 있다. 정년 퇴임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이냐고 질문을 하자 생각지 못했던 답변을 들었다.

"천 만금을 준다고 해도 앞으로는 남들 밑에서 들어가서 시키는 일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대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정년 퇴임한 친구가 한 말이어서 놀랬다. 비슷한 직책으로 먼저 정년을 한 친구들도 이 친구의 대답에 격하게 맞장구쳐서 더욱 놀랬다. 나름대로 회사에서 성공한 직책인 사장 부사장에 해당하는 C 레벨 직급이었어도 리더가 아니라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는 노예의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었다. 모두가 열망하는 대기업의 임원 자리가 노예들이 월급 받고 리더십을 연기한 자리였음을 폭로한 것이다.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리더십의 실종 사건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다. 기업에서 이들을 리더라고 부르지만 결국 진짜 리더는 아니었다. 옛날 한보철강 비리로 법정에 섰던 정태수 회장이 법정 공방에서 기소한 검사가 임원들의 증언을 인용하자 "걔들 머슴들이 뭘 알아"라고 반박했던 머슴에 대한 악몽이 떠올랐다. 지금 기업에서도 임원들은 여전히 돈 받고 리더십을 연기하는 머슴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오너가 있는 대기업에서 임원은 직급이 높은 머슴이지 리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오너가 리더의 자격과 품격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부인한다. 리더십을 그렇게 강조하고 부르짖었지만 정작 기업에 리더란 돈 잘 버는 기계를 멋지게 포장해서 표현한 말이었다. 기업에서 리더는 오래전에 멸종해 있었다.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요순시대 우임금과 요임금이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민찰에 나섰다. 놀랍게도 백성들은 배불리 먹어 터질듯한 자신의 배를 두드려가며 태평 성대를 찬양하는 <고복격양가>를 부르고 있었다. 문제는 격양가의 내용이다. 백성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장단 맞춰 "남 눈치 보지 않고 주인이 되어 이렇게 태평 성대를 누리고 있는데 임금이 무슨 대수냐"고 노래했다.

요순시대는 리더십이 최고로 민주화 되었던 시대다. 임금이 백성들이 임금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삶의 주인이 되어 생생지락을 구가할 수 있도록 더 높고 평평한 곳에 플랫폼 운동장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상향 평준화된 플랫폼에서 주인이자 리더로 살고 있는 백성들조차도 임금과 이런 플랫폼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순시대는 완전한 리더십의 민주화를 달성했다. 모든 현대 리더십 교과서에서 요순시대를 리더십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이념형으로 선정하는 이유다.

리더십의 민주화란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한 공의의 운동장을 설계해 모든 성원이 이 운동장에서 리더로 세워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모두가 리더이기 때문에 리더라는 말이 더 이상 의미하는 바가 없어지는 세상이다. 리더라는 말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질 때 온전한 리더십의 민주화가 달성된다.

우리나라는 정치 영역에서는 유신 및 군사 독재 시대에 비해 어느 정도 민주화를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경제, 사회, 종교, 교육, 문화 등등 다른 영역에서는 리더십의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 아직도 직장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들 중심으로 리더가 세워진다. 대학교에서 학문 후속 세대인 대학원생들은 평생 지도 교수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는 전공의의 반발도 사실은 노예해방 운동이다. 병원에서 노예 상태로 살던 전공의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고위 공무원은 머슴을 빙자한 국민들의 마름이다. 믿음을 기반으로 가장 수평적이어야 할 교회나 사찰도 예외가 아니다. 머슴과 상전으로 조직된 위계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상명 하복은 심지어 자신들의 노예 서열을 넘어 국민들까지 암묵적 노예로 생각한다. 여기 저기 편재한 전관이나 카르텔 세력은 리더십 민주화에 대한 대표적 반란군이다.

문화 영역에서의 리더십의 민주화도 심각한 문제였다.

최근에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김민기의 학전에 관한 회고 기획을 보면 김민기가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이야기가 드러난다. 김민기는 공연예술 영역에서의 노예 해방을 선언한 선구자였다.

운동권의 애국가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 아침 이슬을 작곡했던 김민기는 가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사에 나오는 "그"를 "나"로 바꾸는 시도를 통해서 아침이슬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침이슬 가사에서 <나>는 원 가사에서 <그>였다.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 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삼인칭 그가 일인칭 주체인 나로 바뀐다. 일인칭 주체로 바뀌자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통해 스스로를 주인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일인칭 주체가 되어 역사의 주인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노래의 가사말이 나가 아닌 그였다면 아침 이슬은 잊혀 사라진 많은 노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김민기가 동승동에 소극장 학전(學田)을 설립한 이유도 결국은 예술인들의 노예해방을 위한 기획이었다. 소수의 유명 연기자들이 독점해온 대한민국 공연무대를 민주화시킨 것이다. 학전을 통해 무명 연기자와 무명 가수에게도 무대가 제공되었고 많은 무명인들을 예술 공연계의 진정한 리더로 세울 수 있었다. 학전을 플랫폼으로 재능 있는 무명 연기자 가수가 일인칭 주인공으로 세워졌다. 동승동 소극장을 학전이라고 부른 이유는 학생들을 길러내는 논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무명의 연기자와 가수들이 학전의 연단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정성 있는 연기자 가수로 탄생했다.

김민기는 학전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평생 노예 상태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던 무명 예술가들을 해방시켜 모두 주인이자 리더로 세웠다. 대한민국 예술의 진실된 민주화를 꿈꾸고 있었던 셈이다.

진성리더십이 열망하는 세상이 바로 각 사회 영역에서 구성원들이 주인으로 세워지고 리더로 연단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세상이다. 리더십의 민주화가 의미하는 세상이다. 사회의 각 영역에서 김민기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서 한번도 주인으로 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주인이자 리더로서의 삶을 살아보게 하는 세상이다.

리더십이 민주돠된 세상은 진성리더십 아카데미의 동역자들이 꿈꾸는 세상이다. 평생 한 번도 주인이자 리더로 살아본 적이 없는 미생을 리더로 연단해 완생의 삶을 살아보게 만드는 것이 진성리더십 운동가들이 희망하는 세상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리더가 되었기 때문에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모든 주체가 인간이자 주인으로 온전하게 대접 받는 리더십이 민주화된 세상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