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컴퓨터의 기능을 탑재한 chat GTP가 처음 출시되었었을 때 질문을 넣으면 기괴하게 편파적 답을 산출하고 심지어는 답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할룩시네이션(Hallucination) 현상까지 목격했다. 다행히 세상의 정황을 반영한 균형잡힌 데이타를 다시 제공해 할룩시네이션의 문제를 상당히 해결했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선문답으로 가르침을 주는 장면이 등장햐다. 손자가 묻는다. 할아버지, 내 머리 속에는 악한 늑대 한마리와 선한 늑대 한마리가 매일 싸우고 있어요. 과연 어떤 늑대가 이길지 궁금해요? 손자의 질문에 할아버지 인디언이 답한다. 네가 먹이를 더 주는 늑대가 항상 이긴단다. 아무리 뛰어난 슈퍼컴퓨터를 작동 시킨다고 해도 들어가는 데이터가 쓰레기 수준이면 나오는 나오는 산출물도 쓰레기를 가공한 결과인 쓰레기를 산출할 수 밖에 없다. 소위 가비지(Garbage 쓰레기) 인(In) 가비지(Garbage) 아웃(Out) 원리다(GIGO).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머리가 천재적으로 명석해도 자신에게 먹이는 자료가 쓰레기면 내놓는 결과는 쓰레기일 뿐이다. 쓰레기 데이터가 컴퓨터 알고리즘을 오염시키는 현상이나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인 정신모형(Mental Model)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비슷하지만 쓰레기 데이터에 의해 오염당하는 사례는 컴퓨터 알고리즘보다 인간의 정신모형이 더 심각하다. 인간의 정신모형에 쓰레기 데이터가 제공되어 쓰레기 결과를 산출하면 이 쓰레기 결과는 인간의 뇌에 단기기억되어 다음 데이터 처리 시에 초기값으로 작동되어 정신모형을 오염시킨다. 다양한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수집하는데 한계가 있는 인간과 인간의 뇌는 초기값에 의해 걸러진 데이터가 결과물로 산출되고 결과는 다시 초기값으로 작동하는 반복적 과정을 통해 결국은 쓰레기 정신모형으로 전락한다. 쓰레기 정신모형은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는 구조적 관성까지 획득해 정신모형이 산출한 결론과 같은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수집해서 자신의 정신모형을 지킨다. 인간의 뇌는 오염되면 균형된 데이터로 씻어낼 수 있는 컴퓨터의 뇌와는 달리 쓰레기가 만들어낸 초기값과 초기값이 산출한 새로운 초기값의 연속적 오염으로 확증편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뇌인 정신모형의 오염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요즈음 젊은이들은 쓰레기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친구의 말을 폄하할 때는 반드시 "쓰레기" 같은 말을 어디서 들은 거냐고 반문한다. 그래도 상대가 계속 쓰레기 같은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상대를 쓰레기라고 폄하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주장이 먹혀 들어가지 않으면 자신을 스스로 쓰레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보수와 진보 성향 중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데이터에 대한 편식을 통해 확증편향에 더 빠지는지에 대한 실제 연구도 있다.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장 활발히 공유된 5000개 기사를 통해 참과 거짓으로 구분된 20개 정치적 진술을 도출해낸 후, 미국인 1204명을 대상으로 각 진술을 참이라고 믿는 경향을 측정하여 여러 가지 변수와 함께 분석하는 통계 모델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보수 성향 사람들이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보수 진영에 오염된 거짓 정보가 더 많이 유통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회과학 하는 사람들은 데이터가 충분히 수집되지 못했을 때 통상 부츠스르랩핑(Bootstrapping)이라는 방법을 이용한다. 부츠스트래핑이란 데이터가 부족할 때 부족한 데이터를 원 데이터로 삼아 많은 반복적 표집을 통해 표집의 표집을 통해 확률 분포를 만들고 이 확률분포를 통해 추정치를 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최초로 제공된 데이터가 모집단의 분포와는 다른 극도로 편향된 데이터를 통해 구성된 분포일 경우는 아무리 많은 부츠스트래핑을 통해서 샘플의 확율분포를 만들어도 초기의 편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츠스트래핑으로 구성된 확률분포를 믿고 마치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양 의사결정을 한다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계엄이 맞다고 가정해서 산출한 부츠스트래핑 데이터가 이끄는 현실처럼 비현실적 집단사고로 이어진다. 헌재 윤석렬 변호인들이 이끄는 공방에서 부츠스트래핑 데이터의 논리적 함정이 드러나고 있다. 극우 편향 유튜버들이 구성하는 부츠스트래핑은 이들 유튜버들의 댓글창에 실릴 글들이다. 한번 방송이 끝나면 실리는 수많은 댓글들이 새롭게 부츠스트래핑된 데이터다. 이런 방식으로 수차례의 방송이 끝나면 댓글이 다시 댓글을 낳고 초기에 왜곡되었던 데이터가 확장 가공된다. 어느 순간에는 극우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음모론이 애청자에게 그대로 과학적 근거와 데이터를 가진 진리처럼 전염된다. 추정컨데 이번 서부지법에 동원된 젊은이들의 정신모형을 만들어낸 것도 부츠스트래핑되는 댓글들을 객관적 데이터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샘플 방식을 통해 부츠스트래핑된 자료를 객관적 자료로 믿기 시작하면 아무리 뛰어난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슈퍼컴퓨터라도 알고리즘이 붕괴된다. 인간에게는 정신모형 알고리즘인 휴리스틱이 철저하게 왜곡된다. 잘못 구성된 휴리스틱이 뇌의 알고리즘을 장악하면 왜곡된 뇌를 확증하는 데이터만 적극적으로 편향되게 수집된다. 수집된 데이터도 왜곡된 휴리스틱에 맞게 다시 해석되어서 초현실적 세상이 만들어지고 이 초현실 세상에 자신을 가둔다. 댓글로 가공한 데이터가 과학적 이론을 뇌에서 몰아내고 대신 근거없는 음모론을 키운다. 초현실 세상 속에서 가공된 음모론과 음모론을 진실로 믿고 내린 의사결정이 지금 21세기 민주주의 선봉국가 대한민국에서 겪고 있는 비현실적 현실를 만들어내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정신모형이 이런 극우, 극단 진보 세력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오염되기 시작하면 우리도 Garbage In Garbage Out의 편향된 정신모형에 갇힌 삶을 벗어나기 힘들다. 빅 데이터를 넘어서 공의로운 세상에 대한 존재목적과 가장 아픈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인지라는 인간의 존재근거에 대한 관점을 잃는다면 정신모형이 쪼그라든 사람들의 논리에 포섭되고 어느 순간 길을 잃는다. 수많은 데이터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목적과 긍휼을 잊는 순간 우리도 윤석열이 상징하는 쪼그라든 뇌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본인은 요즈음 새삼 레거시 미디아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고 있다. SNS가 모든 개인들을 PD와 신문기자로 만들어 레거시에 의해 독점되던 소통의 민주화를 촉발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정치적 편향으로 오염시켜 비현실적 세상을 현실적 세상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최소한 팩트 체크한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지킨다는 점에서 소통의 민주화가 만들어낸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몇몇 레거시 미디어들도 정치적 편향성과 프레임 전쟁에 매몰되어 레거시 언론으로서의 팩트체크 책무를 방기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혼돈의 세상에서 그나마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가르치고 있듯이 자신이 악인이 되는지 선한 사람이 되는지는 타고난 인성의 측면도 있지만 평소 자신의 정신모형에 어떤 데이터를 제공했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악의 데이터만 제공하면 악인이 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악인이어도 균형된 데이터가 제공되면 최소한 악인이 되려는 성향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우리는 데이터에 대한 편식으로 뇌가 점점 쪼그라들어 결국 쓰레기 정보만을 산출하는 쓰레기 뇌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책무가 있다. 다음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우파든 좌파든 세상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해 판단중지해가며 국민의 공동 존재목적을 실현하거나 더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솔루션에 근접한 진실된 데이터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정상적 리더였으면 한다. 좌 우 중도를 떠나 인간의 고통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최소한 쪼그라든 뇌를 가지지 않은 리더가 대한민국을 이끌기를 염원한다. 편견과 아집으로 쪼그라든 뇌를 가졌거나 음모론에 오염된 뇌가 아니라 정상을 정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건강한 뇌를 가진 리더가 절실하다. 편견과 아집으로 쪼그라든 뇌는 사람들 마음을 살상하는 무기다.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바이든이 날리면으로 주입되고 국회의원이 국회요원으로 강요된다. 세상은 권력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날조된다. 날조된 비현실적 세상을 현실이라고 강요 당하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곡예가 삶의 본질이 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인간 세상에서 대부분의 데이터가 산출되고 전달되는 방식은 인간 관계를 통해서다. 자신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로 포진되어 있는지의 문제가 열려있는 건강한 정신모형을 만드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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