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꾸라지가 무너트린 대한민국의 사법정의 연기하지 말고 사명 선언문을 찢어라! 솔로몬 대왕은 어떻게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와 공의의 화신이 되었을까? 솔로몬은 한 아이를 놓고 각자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의 판결을 맡는다. 같은 집에서 각자의 아이를 기르고 있던 중 한 여인의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자 아이를 잃은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상대 여인이 바꿔치기 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사건의 주심이었던 솔로몬은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눠 가지라는 평결을 내리고 두 어머니의 행동을 관찰한다. 아이의 진짜 어머니가 아이를 포기하자 솔로몬은 아이를 포기한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라고 판단하고 이 여인에게 아이를 돌려주라고 최종 판결을 내린다. 공정성(Fairness)은 형평 혹은 분배 공정성(Equity), 절차 공정성(Procedural Justice), 정보 공정성(Informational Justice), 관계 공정성(Relational Justice)으로 구성되고 이 네 차원이 모두 구현될 때 공정성은 정의(Justice)라는 지위를 획득한다. 네 차원의 역할은 각기 다르다. 형평성은 정의의 빙산에 드러난 부분이고 나머지 차원이 빙산의 밑둥을 구성한다. 한 나라에 정의가 무너지는 이유는 빙산의 드러난 부분인 형평성에만 집착하다 빙산의 밑둥에 해당되는 정의의 차원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정의는 형평성을 넘어선 절차, 정보, 관계 공정성에 의해서 실현된다. 형평성은 자신이 지은 죗값에 맞게 기계적 형량을 부여하는 공정성이다. 사실 모든 공정성 논란의 시발점이자 결론이 형평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형평성은 정의라는 빙산의 드러난 부분일 뿐이다. 절차공정성이란 이런 형평성을 위한 형량을 계산하는데 일관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누구에게는 널널한 잣대를 적용하고 누구에게는 엄격한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면 불리한 잣대를 적용 받은 사람은 형량의 유불리를 떠나 공정성이 무너진 것으로 지각한다. 정보 공정성은 누구에게는 판결 결과에 대한 모든 유리한 정보를 미리 알려 주고 누구에게는 깜깜이로 판결을 내리고 판결 결과만 통보할 경우다. 깜깜이로 통보받은 사람은 설사 결과가 만족스럽다 하더라도 찜찜함 때문에 결과에 승복하기 힘들어진다. 검찰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상징하는 있는 캐비넷 정보로 없는 과거의 밝혀지지 않은 죄까지 털어가며 죄 값을 협상하고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백을 이끌어내는 것은 극단적으로 정보공정성을 위배하는 일이다. 이런 치욕을 경험한 사람들이 검찰 조사 중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마지막이 관계 공정성이다.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을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입장으로 친절하게 대해야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더 중요한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이들에게만 유독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할 때 맞는 형량이 나왔어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형량을 수긍하지 않는다. 법 기술을 부린다는 것은 형량을 이끌어낼 때 공정성의 다른 차원에 대한 지식을 조작해가며 의뢰인에게 유리한 평결을 내리게 만드는 행동이다. 이들의 법기술을 부리는 이유도 고액의 수임료 때문이다. 무너진 법 체계를 풍자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조어는 빙상의 밑둥에 해당되는 공정성의 차원들이 빙산의 윗둥에 해당하는 형평성(형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솔로몬이 지혜로운 공정성의 대왕으로 추앙 받은 것은 형평성에 따라 형량을 배분한 것이 아니라 형량을 부과했을 때 누가 더 진심으로 아파하는 지에 대한 실험 조치를 하게 하고 이 조치에 대한 반응을 통해 진실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객관적 증거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더 아파하는 사람이 진실을 담고 있다고 가정했다. 증거가 같다면 더 아파하는 긍휼감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솔로몬은 형평성을 넘어 얽힌 관계에 대해서 더 아파하는 긍휼이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었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리 비통하게 아파할 이유가 없다고 믿었다. 솔로몬에게 형평성이라는 잣대는 막대로 만들어진 자라면 누가 아이 엄마로서 더 아파하는지는 진실을 잴 수 있는 줄자였던 셈이다. 솔로몬은 기계적 형평이라는 막대자(Straight Ruler)로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 아파하는 정도를 구부려가며 잴 수 있는 줄자(Bending Ruler)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서 지혜의 대왕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지귀연 판사와 심우정 검찰총장이 합작해 윤석열을 풀어준 사건은 앞에서 언급한 공정성의 네 차원 모두를 어긴 법란 쿠데타였다. 이 쿠데타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법치는 송두리째 무너졌다. 내란의 공범들은 모두 감옥에 있는데 가장 죄가 중한 수괴만 풀려났다는 점에서 기계적 중립을 요구하는 형평성을 어겼다. 지금까지 모든 죄인들은 날짜로 계산해서 형벌을 부과했던 반면 윤석열에게만 시간으로 계산하는 이중잣대를 운용해서 절차공정성을 무너트렸다. 명태균과 이런 이중잣대로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이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조짐이다. 지귀연 판사는 법원만 알고 있고 검찰인 심우정도 몰랐던 시간으로 환산한 구속기간을 선택적으로 윤석열에게만 알려줘 정보 공정성을 위배했다. 결정적으로 대한민국의 법은 일반 국민에게는 추상같고 윤석열에게만 친철한 관계 공정성을 위배했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일반 국민이 아니라 윤석열을 개인을 위한 것임을 입증했다. 법난을 일으킨 법꾸라지들은 윤석열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대한민국 진짜 국민이자 진짜 왕임을 관계공정성을 위배해가며 입증했다. 대한민국에서 법관이 되거나 검사가 되면 다음과 같은 사명문을 낭독하고 지킬 것을 약속한다. 이번 법란을 주모했거나 동참한 법꾸라지들은 오래 전에 이런 사명 선서문을 찢었겠지만 평상시에는 지키는 것처럼 연기하는 고도의 연기자들이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소명도 없고 사명에 대한 약속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런 법꾸라지들에게 나라의 법을 운용하는 중책을 맡길 수는 없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본인은 법관으로서 ,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 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금처럼 중차대한 시점에 법꾸라지들이 합작해 붕괴시킨 대한민국의 정의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주권자이자 나라의 공 주인인 국민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서 정리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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