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처럼 매운 맛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한국인은 떡볶이, 매운 라면, 매운 짬뽕, 불닭 복음면 등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매운 음식을 입에 달고 산다. 일반적으로 음식과 반찬의 색도 고추가 많이 들어가서 붉은 계통이다.

매운 맛은 맛이라기 보다는 매운 것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라는 화학성분이 만들어내는 통증에 가깝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통각을 자극하고 이 통각은 뇌에서 진통제에 해당하는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매운맛을 영어로 표현할 때도 Spicy(찌르는 통증)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인들은 매운 맛을 온도를 뜻하는 hot이라고 잘못 번역하기도 한다. 아마도 매운 맛은 통증과 더불어 열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의 음식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외국인은 hot이 통증을 주는 spicy hot인지 그냥 뜨겁기만한 hot인지를 되묻는다.

매운 맛에 중독을 느끼는 것은 매운맛 자체가 아니라 매운 맛이 만들어낸 통증을 해결해주는 진통제인 엔도르핀 때문이다. 또한 우리 몸은 매운 맛으로 달궈진 온도를 식히기 위해 땀을 분비한다. 엔도르핀과 더불어 땀이 분비되는 개운한 쾌감도 매운 맛을 좋아하는 이유다.

통증을 해결할 때 나오는 엔드르핀인 매운 맛과 가장 가까운 정서는 열정(Passion)이다. 열정의 어원에는 고통이라는 뜻이 담겼다. 열정이란 고통이 주체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이다. 고통을 직면해 주체적 해결하지 않고 우연히 얻어낸 것은 쾌락이다. 마약이 위험한 이유는 고통 없이 쾌락을 주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쾌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결과만 중시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열정을 고통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쾌락으로 오해한다. 고통을 주체적으로 극복한 결과로 얻은 희열은 내재적 동기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등산가나 마라톤 주자들은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했을 때 얻은 희열이 고통 비용을 크게 상회하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고통에 다시 용기 있게 뛰어든다. 이들에게는 고통을 이겼을 때 얻은 내재적 보상이 그만큼 크다.

요즈음에 다시 쇼펜하우어가 다시 뜨는 이유는 고통 없이 얻는 쾌락의 허구성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가 일상으로 체험하는 고통은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여기에 성장의 나이테를 더 하기 위해선 고통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개인이 고통을 해결해 얻는 희열이 Passion이라면 우리에게 신바람으로 알려진 집단적 희열의 원천은 긍휼이다. 긍휼을 의미하는 Compassion은 공유된(com) 열정 (Passion)이다. 긍휼은 공동체가 직면한 고통을 협업으로 해결하는 문제다. 공유된 고통의 문제를 원인의 수준에서 협업으로 해결했을 때 느끼는 집단적 희열이 신바람을 일으킨다. 긍휼은 공동체가 경험하는 고통을 원인의 수준에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고통을 원인의 수준에서 그대로 정의할 수 있을 때 고통 해결을 위한 근원적 알고리즘에 도달한다. 공동체의 고통을 근원적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할 있을 때 신바람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신바람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아픔을 그대로 직시해서 체험하는 긍휼(Compassion)을 통해서만 생성된다. 긍휼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서로가 느끼는 아픔을 그대로 직시하고 공감하고 환대하고 치유해 서로를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감정이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서로를 협업의 주인공으로 일으켜 세울 때 체험하는 정서의 상승 작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스나미처럼 밀려오는 고단위 에너지원이다.

이처럼 고통을 용감하게 직면하는 경우는 생명, 탄생, 희열, 신바람의 기원이 되지만 고통을 외면할 때 자신과 사회에 대한 큰 저주가 시작된다. 고통이 무서워서 누군가가 여기에 거적을 덮어 놓았다면 거적 속의 고통은 썩어서 구더기를 만들고 구더기는 상처를 휘저어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고통에 대한 회피는 인간을 권위주의적 인간으로 만든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권위주의 성격은 새디즘과 매조키즘의 결합이다.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주체적 자아가 형성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귀속시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보다 못해보이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전가시키는 방식으로도 문제를 해결한다. 힘 있는 사람들에 자신을 귀속시키는 것은 매조키스트의 방식이고 힘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새디즘의 방식이다. 약자에 대한 새디즘과 강자에 대한 매조키즘이 결합해 약육강식이라는 권위주의 성격을 형성한다. 권위주의 성격이란 강자에는 굴종적이고 약자에게는 폭압적이다. 강자의 힘이 자신에게 시시각각으로 닥치는 고통의 우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 반면 실제로 자신에게 닥치는 고통은 끊임없이 약자에게 꼬리 자르고 전가하고 떠넘긴다. 권의주의 성격이란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생성한 이중성격이다.

권위주의가 집단적으로 발현되면 파시즘이 등장한다. 주체적 자아가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강자를 우상화 해가며 추앙하고 약자를 악마화해 고통을 주는 일에 집단적으로 동원된 형태가 파시즘이다. 파시스트들은 우상화와 악마화를 반복해가며 자신들의 비현실적 세계관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음모론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성경은 고통을 직면하는 것을 넘어서 고통을 앓고 있는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긍휼만이 사랑의 편애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임을 가르친다. 하나님이 욥에게 가르친 것은 진실한 기독교인은 율법적 삶을 통해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소극적 행동을 넘어 고통을 직면하고 고통 속에 있는 진리의 밀알을 찾아서 세상에 발현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창조의 비밀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독실한 신자라면 당연히 율법을 지켜가며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하겠지만 자신 스스로가 생명의 주체가 되어 고통을 직면하고 고통의 해결을 통해 하나님이 대목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을 소목이 되어 더 살기 좋은 집으로 만드는 창조와 생성의 일을 주문한 것이다.

대한민국에 신바람이 사라진 이유는 고통을 원인의 수준에서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수준에서 만든 가짜 만병통치약인 마약(돈, 권력, 명예)에 중독된 것이다. 공동의 목적과 공유된 아픔을 직시할 수 있는 긍휼의 용기가 복원되지 않는 한 신바람은 영원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 매섭게 불고 있는 파시즘의 열풍을 잠재우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늦게 시작했지만 가장 선진화된 민주국가를 만들었다는 찬사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매운 맛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임에도 더 이상 신바람을 찾지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목적에 대한 신념과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긍휼이 넘치는 리더를 발굴해 세우지 못한 형벌이다. 겉만 화려한 유사 리더를 우상화 해가며 고통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긍휼과 목적을 통해 세운 발전소에서 생성되는 신바람이라는 집단적 에너지가 없다면 뿌리 깊은 파시즘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세계 시민이 존경하는 민주국가로 다시 진입시킬 방법이 없다. 대한민국의 저력은 매운 맛(고통)을 도전적으로 직면할 뿐 아니라 본능적으로 즐겼던 기상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는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고 자신의 것으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다. 권위주의자들이나 파시스트는 오래 전에 자신의 고통을 직면할 용기를 잃은 쫄보들이다.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는 리더는 리더로 선출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실제 리더가 된 후 이들이 벌이는 대부분 일들은 법 기술을 동원해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 시키고 고통을 절연해 가며 꼬리 자르는 일이다. 리더로서 이들이 하는 일은 자신의 고통을 전가시켜 남들의 고통을 배가 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