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가 영연방에 대항해서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영연방이었던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순회 중 식량과 여비가 떨어져서 거리의 낭인으로 전락할 처지에 몰렸다. 수행원들의 걱정은 태산인데 간디는 무사 태평이다. 간디 일행의 소문을 듣고 한 독지가가 멀리서 찾아와서 간디 일행을 구해냈다.
이 귀인이 간디 일행을 떠나기 전 간디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나타날 것을 알았나요?" 질문의 의도는 아무리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도 거리에 나 앉을 것을 예측 못할 정도로 너무 무모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간디가 귀인에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욕을 챙기는 일도 아니고 영연방의 압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인데 간디가 거지가 되어 이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 시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나타나서 도와줄 것임을 믿고 있었소."
간디는 사명과 목적을 품고 달리다 넘어진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측은지심의 힘을 믿었다. 일반인들은 여건이 허락하지 못해 도우러 달려오지 못할 수 있어도 여건이 되는 큰 귀인은 목적을 품고 쓰러진 자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면 멀리서라도 본능적으로 달려올 것임을 믿었다. 간디는 존재목적을 품고 달리다 쓰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장애를 만나면 통과하지 못하는 빛과는 달리 측은지심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통과해 멀리 징소리로 울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목적을 품고 쓰러진 자가 생성하는 측은지심의 힘은 지금 현대가를 일군 고 정주영 회장에게 찾아온 귀인의 이야기에도 해당된다.
1968년 고 정주영 회장이 조선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1년 7월 울산 미포만 모래사장 사진 한 장, 지도 한 장, 유도선 도면이 담긴 조선소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자금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지만, 세계시장 점유율이 1%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상황에서 조선소를 실현하기 위한 외자확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대는 당시 영국 최고의 은행이던 바클레이 은행에도 510억 원에 이르는 차관을 요청했지만, 바클레이 측은 현대의 조선 능력과 기술 수준이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정주영 회장은 낙심하지 않고 차가운 현실을 바꿀 우회 전략을 구사했다. 1971년 9월 고 정주영 회장은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간다. 사업계획서를 들려주었지만 롱바텀 회장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 정 회장은 재빨리 지갑에서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펴보였다.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져서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이오.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오.”
롱바텀 회장은 기진맥진해져 쓰러져 가며 거북선 이야기를 꺼내던 정주영 회장의 존재목적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롱바텀 회장은 거북선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 것이 아니라 황당무개한 거북선 이야기까지 꺼내는 정주영 회장의 절실함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롱바텀 회장은 귀인이 되어 현대건설 등을 직접 둘러본 뒤 추천서를 써서 바클레이에 건넸다. 현대조선은 조선업 세계 1위가 되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 쓰러짐과 재기의 연속이다. 크게 부도를 나던 적게 부도를 나던 상관없이 재기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과 가족은 개인적 이익을 키우기 위해 사업한 사람들은 아니다.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사업을 재기 시키는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 죄의식을 느낄 정도로 자신이 반드시 사업에 성공해야 하는 남다른 이유에 대해 진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업하는 사람이나 영달을 넘어 사업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이나 쓰러지기 직전까지 열심히 하는 정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업이 여의치 않아 쓰러지는 순간 두 사람의 행로는 갈라진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업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지만 자신의 영달을 넘은 이유가 있어서 사업했던 사람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문제가 자신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 사람들이 여건이 안됨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하고 다시 쓰러지면 일어나려 시도한다. 이런 시도에 측은지심으로 지켜보던 귀인들이 나서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만 귀인들은 측은지심을 느낀다. 일반인들도 이런 이야기가 알려지면 돈줄로 삭막해진 세상에 혼줄을 내주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그친다. 연이 닿은 귀인은 목적을 품고 쓰러진 사람이 재기에 완전히 성공할 때까지 평생을 지지하고 도와준다.
측은지심은 존재목적에 대한 진심이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게 만드는 비밀이다. 목적에 대한 진심 때문에 쓰러져 있음이 다른 사람들의 자본을 자신의 자본처럼 쓸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는 힘이다. 재무적 자원은 자동차의 휘발유라면 사회적 자본은 윤활유다. 윤활유가 없어도 휘발유만 있으면 차는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차가 부서져 먼 길을 가지 못한다. 측은지심은 지속가능성의 원리다. 회사같은 이익 결사체는 휘발유의 원리로 움직이지만 공동체는 윤활유가 없으면 무너진다. 외견 상 이익을 앞세우는 회사도 백년기업의 지위에 도달한 회사는 휘발유와 윤활유를 모두 동원해 세월의 도전을 이겨낸 회사들이다.
간디나 정주영 회장처럼 엄청나게 인류와 국가를 구하는 행위 정도는 아니었어도 본인도 제자들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할 때 내가 가진 역량을 넘어서 도와주려고 노력했던 것같다. 많은 학생들이 석사나 박사를 하겠다고 찾아왔지만 모든 학생에게 마음이 간 것은 아니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박사나 석사로 마음이 갔었던 제자는 스펙을 떠나 공부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쓰러지기 직전의 학생들이었다. 공부에 대해 얼마나 진심이었으면 내가 지도할 여건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와서 부탁하고 또 부탁한 학생들이었다. 10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지만 이들의 도끼질이 얼마나 측은지심을 담고 있는지에 따라 상황은 다르다. 심지가 굳은 귀인은 누가 와서 만 번을 찍어도 도끼질 하는 이유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안 넘어간다.
귀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측은지심에 대한 원리는 사람과 회사를 넘어 사회에도 적용된다.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절대혼란 상태에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주체를 공동체로 묶어주는 측은지심을 상실한 리더를 세운 리더십의 문제였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도끼질을 해야하는 이유를 가지지 못하고 오직 자신, 가족, 카르텔의 생존만을 위해 도끼질을 일삼는 사람들의 연기와 스펙에 속아 도끼질 할 수 있는 리더십 권한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린 난동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나라의 존재목적을 잃은 뉴라이트에게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넘겨주었고 공의 하나님에 대한 측은지심을 잃은 유사 개신교가 교회를 떠나 극보수 정치 노마드로 전락한 것도 문제였다. 이들의 연합으로 뼈 속까지 친일한 세력들이 우상화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과 가족을 희생해왔던 독립 지사의 가족들이 천민 취급 당했다. 이들의 연합으로 국가 전체가 측은지심을 잃었다.
우리는 카르텔이나 전관 엘리트가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 민주 대한민국이 쓰러져 있음에도 쓰러진 나라에 대한 측은지심을 잃었다. 대한민국이 온전한 독립국가가로 서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하나, 국민 각자가 삶의 주인이 되어 서로에게 측은지심을 끌어낼 수 있는 공동체가 회복된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 대한민국이 완전히 자주 독립국가가 되어 존재 의미를 깨달은 국민이 주인이 되어 생생지락할 수 있는 날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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