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신드럼 #가스라이팅

#인질효과 #범인

차귀연 판사와 검찰총장의 공조로 윤석열이 감옥에서 풀려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을 TV 방송으로 보시던 장모님이 "그간 얼마나 고생했을까?"라고 혼잣말로 애처로와 하시는 것을 들었다. 태극기 부대도 아니고 정치에 관심도 없으시고 단지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만 있는 장모님의 혼잣 말씀이어서 잠시 놀랬다.

왜 마음씨 곱고 천성이 착한 어른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흔히들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알려진 인질효과 때문이다.

범인에게 일정 기간 인질로 잡혀 현실로부터의 정보가 끊어져 현실감각을 상실한 상태에서 인질범으로 부터 집중적이고 반복적이고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을 인질로 잡아둔 범인의 주장에 수긍하고 급기야는 인질범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에서 여주인공 선화는 자신을 납치하여 가둬 놓고 매춘을 시키는 한기를 어느 시점부터 동경하게 된다. 인질효과 때문이다. 매 맞는 아내로 오랫동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때리는 남편을 인정하고 자신이 매 맞을 짓을 했다고 자기를 합리화 한다. 실제 두드려 맞아도 맞을 짓을 했다고 먼저 고백한다. 학대 받는 아동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전쟁 말미 체념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인터뷰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증언을 얻어내는 것도 고립된 상황에서 인질이었던 할머니들에게 자신들의 변명을 주입시킨 결과이다.

최근 여론 동향에서 청년 남성들을 중심으로 윤석열 지지도가 잠시 높아졌던 현상도 SNS와 매스컴을 동원한 인질효과 덕택이다.

젊은이들이 인질효과에 감염되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감염되는 이유인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서는 음모론이 가세한다.

음모론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선택이 불가능한 유사감옥에 대한 체험이 전제되어야 한다. 감옥은 대안에 대한 선택이 불가능한 공간이다. 감옥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윤석열의 입장이 젊은 청년들에게 전이되는 이유도 자신들도 대안에 대한 선택이 불가능한 유사감옥에 갇혀 있다는 동병상린 때문이다. 미래에 극심한 불안 때문에 미래를 빼앗긴 자신의 입장이 창살 없는 감옥에 같이 갇힌 인질이라는 생각을 키운다. 앞으로 살 날은 구만리인데 이 지긋지긋한 현실의 감옥을 탈주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들을 인질로 만든다. 이들이 인질로 전락한 것은 이들에게 미래를 제공하지 못한 어른들 때문이다.

창살 있는 감옥에 갇힌 윤석열이나 창살 없는 유사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들이나 처지가 같다는 믿음을 결정적으로 강화시키는 열쇠가 인질범들의 퍼트리는 음모론이다. 유사감옥에 갇힌 젊은이들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는 것은 인질범들이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시키는데 동원하는 음모론이다.

젊은이들이 유괴범이 제안하는 음모론에 매료되는 이유는 음모론은 간단한 이원론적 선악설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복잡하게 인과관계를 따져야 하는 과학적 설명을 배격하고 선과 악의 이원론적 구조로 만든 허구적 스토리다. 과학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과학과는 거리가 먼 유사과학이다. 설명이 단순하고 명쾌하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음모론의 서술구조도 불투명한 미래의 감옥에 갇혀 고생하는 젊은이들을 매료시킨다. 자신이 세상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사건을 조작해 자신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옥에 가두어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언젠가는 이들을 찾아서 응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젊은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이런 잘못된 믿음은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들은 깨어 있다는 잘못된 선지자 의식도 불러 일으킨다. 한 마디로 음모론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자신감과 내재적 통제감이 낮아져 시대적 상황에 불모가 된 젊은이의 약한 고리를 공격해 이들을 전염시킨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 자긍심, 효능감으로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온 젊은이라면 이런 황당무계한 음모론에 끌릴 이유가 없다.

인질범이 퍼트린 음모론에 감염되어 인질이 되면 현실에서 감당이 가능하던 확증편향이 감당할 수 없는 수순으로 악화된다. 그나마 작동하던 정신모형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먹퉁이 된다. 정보와 현실을 왜곡하는 수준이 현실을 비현실로 만들고 비현실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어느 순간 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간다. 확증편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우상화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이 겪는 불안을 투사하고 폄하하고 공격한다. 음모론에 감염된 젊은이들은 이유도 모르고 서부지법 난동에 동참하는 좀비로 전락한다. 음모론은 과학적 근거를 떠나 자신들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세력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악마화 하는 정치선동가가 가스라이팅을 위해 동원하는 대표적 정치 술수이다.

인질범은 보이지 않는 미래 불안으로 떨고 있는 젊은이들이 자주 접하는 SNS 매체에 자주 출몰해 이들을 인질로 잡아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방적 이야기만 반복해 이들을 감염시킨다. 범인이 자신이 구상한 음모론으로 세상이 건강하게 돌아가는 정보를 성공적으로 차단하면 인질로 잡혀 있던 사람들의 정신모형이 범인의 정신모형과 동조를 일으킨다. 음모론을 퍼트리는 유튜버의 편협된 알고리즘에 과대노출되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인질효과로 전이된 가스라이팅의 희생자가 된다.

국민들이 인질로 잡혀 범인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게 되고 이들의 고통 섞인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실제 인질로 잡혀 있지 않아도 인질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심정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한다. 가스라이팅을 통한 정치가의 인질효과에 감염되면 감염된 사람들은 자기라도 그런 상황이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질의 음모론을 지지하고 공범이 된다. 인질은 범죄를 옹호하는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어느 순간 범인들이 주장하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저항권을 발동해서 법원을 공격하라는 명령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이행한다. 완벽하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순간이다.

FBI 연구에 의하면 매스컴에 의한 인질효과는 세상을 보는 정신모형이 적은 샘플로 과대적합화 되어 자신의 정신모형에 갇혀 살던 5% 극단에서 시작해 주변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에 감염된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정보를 균형 있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약한 고리를 구성하는 5%다. 이들에서 시작해 인질효과는 파도처럼 약한 고리를 찾아서 상당한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인질효과와 음모론에 감염되는 현상은 태극기 부대나 서부지법에 난입한 청년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들은 대안이 없는 상태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왔던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여서 먼저 감염되었을 뿐이다.

인질효과나 음모론에 감염되는 원리는 아주 정상적인 일반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대안이 없는 불확실한 현실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과학적 추론과 검증이 불가능한 음모론의 알고리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어느 순간 범인이 만든 비현실적 세상을 현실로 받아 들여 사회를 균형 있게 보는 시각을 잃는다.

음모론을 앞세운 인질효과는 이들을 파쇼의 숙주로 만드는 아주 위험한 사회병리 현상이다. 음모론을 전략적으로 퍼트리고 확산시키는 무당, 사이비 종교인, 정치인, 기관, 매스컴은 파쇼로 향하는 사회 무질서의 숨겨진 공동정범들이다. 사회가 극보수 파쇼로 전락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의 부재로 대안없는 사회, 불투명한 미래가 젊은이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유사감옥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순간 세상과 삶에 대한 성찰의 고리를 놓치면 정신모형은 우리를 감옥에 가두고 자신을 감옥에 가둔 범인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