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4월 4일 계엄령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 나라의 정치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SNS는 가짜 뉴스와 분노로 들끓고, 시민들은 광장과 사이버 공간 사이에서 갈등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누구는 질서를 요구하고, 누구는 자유를 외치며, 사회는 양극화와 냉소 속에 공론장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다.

이 혼돈 상황에 대해 실천적 지혜를 강조했던 인류 최초의 정치 사회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대한민국 헌재 재판관들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주라고 요청하면 그는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까?

이런 상상적 실험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헌법조문, 여론, 개인의 감정을 넘어서 프로네시스를 기반으로 더 깊은 미래에 대한 통찰과 맥락적 지혜를 주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프로네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인간' '좋은 사회' '좋은 정치'를 논할 때 사용했던 실천적/맥락적인 지혜를 뜻한다. 실천적/맥락적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을 넘어서는 지혜로 복잡한 삶의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프로네시스’는 탁월한 시민과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라 했다.

이는 오늘날의 상황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념적 진영논리, 기계적 법조문, 즉흥적 여론이 아닌, 복잡한 상황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도덕적 목적을 향해 행동하는 능력이 헌재 재판관들에게 가장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유사 정치가, 유사 전문가, 유사 법률가들에 의해 ‘판단력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넘치고, 분석은 정밀하지만, ‘무엇이 바람직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성숙한 판단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성숙한 판단의 부재에 대해 시민은 즉흥적 분노에 휩쓸리고, 정치인은 정당성보다 이익을 따지며, 전문가는 복잡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거나 기계적 중립 뒤에 숨었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 시작했고 지금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가 가져온 상식적 판단 윤리의 실종 문제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대한민국의 혼란 상황에 다음과 같이 물으라고 주문할 것이다.

“이 위기에서 누가 탁월한 시민인가?” “어떤 지도자가 진정으로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인물인가?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헌재의 재판관들에게 실천적/맥락적 지혜 (프로네시스 Phronesis)를 염두에 두고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첫째, 감정과 정치적 이득에 앞서 맥락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라.

프로네시스는 단지 도덕적 감정이나 직감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자는 법과 현실, 정서와 제도, 개인과 공동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사태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지혜로운 눈이다. 단편적 법조문 해석을 넘어서, 이 혼란의 구조적 원인과 미래 시나리오를 설명하고,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자세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둘째, 절차의 윤리 위에 행위의 정당성을 물어라.

법이 정당하다고 해서 모든 결정이 옳지는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justice)는 규칙의 적용보다, 행동이 좋은 목적에 부합하는가에 따라 판단된다고 말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지 헌법의 형식적 정당성을 넘어서 결정이 공동체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하고 숙고하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하다. 헌법은 최소한의 정의를 보장할 뿐이며, 진정한 재판관이라면 최선의 공동선을 향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셋째, 지혜롭고 성숙한 판단이 내려진다는 것을 전제로 헌재는 윤석열 지지자와 인용을 바라는 모두에게 서로를 적으로 보지 말고, 함께 사유할 같은 시민이자 스파링 파트너로 보라고 주문해라.

윤석열이 지금까지 이런 극심한 혼란을 초래한 이유는 집권하자마자 자신을 반대한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계엄을 통해서라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십자군 전쟁을 해왔던 결과물이다.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미러링해 윤석열과 지지자를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싸웠다.

프로네시스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법에 저촉되지 않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다. 법을 넘어 상식이 통용될 때 모두가 모여 '좋은 삶과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을 획득한다.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혼란에 휩쌓인 이유는 법기술자들이 유전무죄를 앞세워 법의 경계를 초토화 시켰을 뿐 아니라 상식의 운동장에 침범해 운동장 여기저기에 카르텔의 토굴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지혜로운 대화는 단절되고 현명한 판단은 물건너간 일이 된다. 지금의 계엄 상황과 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단지 법 체제가 아니라, 상식과 존재목적에 근거한 '공동 판단의 습관'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법을 넘어 상식의 운동장에서 우리가 함께 사유할 수 없다면 아무리 정교한 법 시스템도 정당성을 상실한다.

지금 헌재 재판관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나 '더 정교한 법'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헌재 재판관들이 프로네시스에 기반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훈련된 직관’과 ‘성찰적 판단’으로 무장한 실천적 시민들의 간절한 기도다.

역사는 장애를 만나면 구비 구비 옆으로도 흐르지만 다시 물꼬를 조정해 항상 더 낮은 바다로 흐른다. 절대로 거슬러 흘러가는 법은 없다는 것을 믿는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믿는다.

우리들의 기도가 마침내 응답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문 선고를 기다리며

2025년 4월 4일 10시 2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