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지브리풍’ 일러스트가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배경, 섬세한 색감, 일상의 마법을 포착한 듯한 표현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시그니처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현상을 단순히 미적 유행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예술의 민주화’, 더 나아가 ‘민주화의 민주화’라는 초뷰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되는 예술의 민주화

예전에는 예술은 예술의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소수의 전문가, 혹은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도구의 보급과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은 창작의 문을 누구에게나 열어주었다. 태블릿 하나로도 수준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작품을 공유할 수 있다. 지브리풍의 유행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결과다. 누구나 애니메이터가 아니더라도, 감성을 포착하고 해석할 수 있는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예술은 이제 선택받은 이들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었다.

기회의 분산을 통한 경제 민주화

비슷한 변화는 경제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자본과 권력을 가진 대기업과 기득권이 시장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창업 플랫폼, 디지털 금융,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누구든 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부의 집중’괴 양극화가 여전히 문제이긴 하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가치를 경제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가 점차 가능해졌다. 실제로 AI와 휴머노이드가 결합한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면 모든 기업은 일인의 사장과 AI가 장착된 휴머노이드 에이젠트로 운영된다. 이들에게 부가해 거둔 각종 로봇세금에서 얻어진 재원은 청년들에게 생계에 대한 최소한의 걱정을 덜어주고 새로운 창업 생태계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경제의 민주화가 성숙되면 지금의 개인들의 경제 활동은 더 열린 플랫폼 생태계를 타고 점점 더 분산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

정치 역시 점점 더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이 가속화 될 것이다. 예전에는 정치인이 말을 하고 시민은 듣기만 했다면, 이제는 시민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이슈를 만들어내며, 투표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할 것이다. 방송은 SNS에 의해 민주화되어 누구나 원하면 신문사를 개국해 기자가 될 수 있고 유튜브 방송국을 개국해 PD가 될 수 있다. 온라인 청원, SNS 캠페인, 지역 커뮤니티 참여 등은 모두 정치의 직접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권력은 점점 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흐를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직접 묻고 즉각적으로 반영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해져 지금의 간접 대의민주주의는 첨차 소멸될 것이다. 국회의원이 사라지고 그리스식의 아고라 민주주의가 부활할 것이다.

다양성의 존중되는 사회적 민주화

사회적 민주화란, ‘정상’이라는 기준이 무너지고 다양한 존재가 인정받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성별, 장애, 국적, 세대, 계층 등 모든 영역에서 '당연함'을 재고하고 있다. 예전에는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배제되거나 침묵을 강요받았다면, 앞으로는 각자의 목소리와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중심의 골리앗이 무너지고 다양한 변방의 다윗이 사회적 다양성의 표준을 설정하고 이 설정에 따라 사회의 운동장이 더 평평지도록 제도화되어 사회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다.

믿음의 개인화를 통한 종교의 민주화

과거 종교는 제도와 조직 중심이었다. 교리와 해석권은 위계 구조 안에 있었고, 신앙은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방식대로 믿는’ 개인화된 신앙이 늘어날 것이다. 성직자가 이끄는 조직과 제도 중심의 종교는 약화되는 반면, 영성과 명상, 개인적 사색은 점점 강화될 것이다. 제도에 갇혀 있던 믿음이 해방되고 민주화되는 흐름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보편민주주의를 향한 민주화의 민주화 물결

이 모든 흐름은 보편적 민주화로 지향성을 만든다. 소위 '민주화의 민주화'다. 민주화는 더 이상 정치적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권한이 아래로 내려오고, 중심에서 바깥으로 흘러간다. 정치 영역에서 민주화가 자꾸 퇴행을 겪는 이유는 다른 영역의 민주화가 같은 수준으로 레벨링되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브리풍 그림 하나를 그려 올리는 이의 행위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사회적 신호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모든 영역이 민주화되는' 전환기의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민주화가 성숙되면 인간 사회의 지배구조도 그리스 시대의 직접민주주의 지배구조 형태를 재현할 것이다.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노예가 자유시민들이 해야할 일들을 대부분 대행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이 성숙되는 초뷰카 시대에는 휴먼노이드 로봇이 노예가 했던 역할을 대채할 예정이어서 인간은 절대적 주체로서 자신의 존재우위를 구현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지위는 여전히 협업이란 이름으로 기계의 보조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과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존재우위를 구현하는 민주화된 인간으로 대별될 것이다.

인간의 존재우위란 존재목적에 대한 깨달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존재우위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 (sociability)와 공동운명체의 공동의 존재목적을 위해 협업할 수 있는 교호성(associabiity)의 자격기준을 통과한 사람들만 기계의 경쟁우위와 자신 삶의 존재우위를 직조할 수 있는 시민권을 부여받을 것이다. 이들이 신귀족이다.

초뷰카 시대는 초월적 기술을 통해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한 공의의 운동장이 구현되어 모두가 이 운동장의 공주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다.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어도 그 흐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더 평등하고, 더 창조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온전하게 민주화 되는 열린 세상의 최고의 적은 경제적 양극화를 추동하는 세력일 것이다.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순간 역사의 수레바퀴는 당분간 수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정치는 양극화를 추동하는 엘리트 세력과 보편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대결구조로 전개될 것이다.

보편적 직접 민주주의를 시작할 수 운전대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각성된 시민들에게 달려 있다. 이들이 #급진거북이(잉걸북스 2024)가 되어 양극화를 추동하는 엘리트주의자들을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이들이 적어도 민주주의의 뒷다리 세력을 벗어나도록 회심시킬 수 있는지의 문제다.모든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