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영화 콘클라베를 감상했다. 콘클라베는 카톨릭에만 있는 독특한 교황 선출방식이다. 추기경들은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외부출입이 통제된 상태에서 온전하게 교황선출에만 집중한다. 새 교황이 선출되면 교황청 굴뚝 연기를 통해 선출소식을 전달하고 선거인단에 참여했던 추기경들은 연금상태에서 벗어난다.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정치 드라마다. 로마 가톨릭 교황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Conclave)에 돌입한다. 주인공인 디누치오 추기경은 선출을 관리하는 중심 인물이다. 선출과정에서 시대적 다양성과 변화를 반영하려는 진보진영과 율법주의로 회귀하려는 보수진영 간 권력 다툼과 서로를 이기기 위한 숨겨진 전략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영화는 종교 기관 안에서도 정치적 계산과 갈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뜻밖의 인물이나 과거의 사건들이 소환되어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교황이 선출되면 그간의 반목과 갈등은 믿음과 신앙이란 이름으로 용서되고 치유된다. 차분하지만 긴장감 때문에 영화내내 한 눈을 팔 수 없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수작 영화다.

영화는 종교의 신성함과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선출된 교황인 벤티즈 추기경(Cardinal Vincent Benítez)이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자궁을 가진 인물임이 밝혀진다. 논란이 번지자 자신이 자궁 적출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를 고해성사한다. 자신을 이렇게 창조한 것도 하나님의 의도가 반영된 것일진데 하나님이 주신 몸을 거부하고 임의로 칼을 대는 것이 불경이라는 생각에 수술을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추기경들이 벤티즈의 소명에 대해 수긍하고 벤티즈를 교황으로 임명한다.

카톨릭 추기경들은 생식기로 분류하는 이원론적 생물학적 성은 인간이 사후적으로 개념화 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지 가장 아픈자까지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무관하다고 해석한다. 생식기 성을 넘어 어떤 형태의 성을 가지고 있던 이 성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구현할 수 있는지 아니면 못할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신약이 율법으로 정한 남성 제사장론을 구약을 넘어 남성 여성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선포한 것도 생물학적 성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장애가 되서는 안된다는 각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전임 교황이 사망하기 전에 기르던 #급진거북이(잉걸북스 2024) 한마리가 돌아가신 교황의 중요한 메신저로 등장한다. 교황이 성공적으로 선출되자 선출을 주관했던 추기경이 바티칸 연못에 거북이를 풀어준다.

거북이가 콘클라베에 왜 등장했을까?

거북이는 느리게 가지만 방향성을 잃지 않는 동물을 상징한다. 교황선출은 거북이처럼 느린 과정이지만 올바른 교황을 선출해야하는 방향성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거북이는 경주에 임할 때 속도보다 방향을 파악하는 지도술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거북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여 태어난 해변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되돌아오는 능력을 지녔다. 이는 단순한 방향 감지(compass sense)를 넘어서, 위도와 경도를 동시에 인식하는 자기장 지도(map sense)까지 포함하는 정교한 내비게이션 체계를 작동시킨 결과다. 거북이에게 나침반의 역할은 광수용체 단백질인 크립토크롬이 수행하고 자기장 지도를 그릴 때는 자기철석이라는 세포가 작용한다. 거북이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경로에서 벗어나면 바로잡을 수 있는 자기 교정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교황선출 과정은 거북이처럼 느린 과정이지만 올바른 교황을 선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어서는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선출과정을 주관하던 추기경은 올바른 교황이 성공적으로 선출되자 거북이를 연못에 풀어준다. 급진거북이가 책무를 완성했음을 상징한다.

급진거북이는 방향 없는 속도는 혼란이고, 방향 있는 느림은 미래임을 상징한다. 급진거북이는 교황청의 근원적 변화전략이었다. 추기경들은 급진거북이 전략에 따라 경쟁후보를 적이 아닌 스파링 파트너로 삼고 경쟁에 임한다. 또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변화한 세상에 맞춰 신앙을 다시 해석해냄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새생명을 불어넣는다. 세상의 변화에 울림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영화는 방향을 알 수 없는 지금과 같은 21세기 초뷰카 세상에서 급진거북이에게 내재한 나침반의 방향성을 무시하고 20세기에 통용되었던 빨리 빨리를 외쳐대는 토끼 몰이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빨리빨리는 대한민국 미래를 무너트리는 치명적 부메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원래 백의로 상징되던 영혼을 앞세우고 말 달리던 민족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에 의해 나라가 장악되자 구호가 빨리빨리로 바뀌었다. 이들의 주문대로 빨리빨리를 외쳐가며 달리다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함을 놓쳤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지금은 뒤쳐진 영혼이 다시 사명과 존재목적의 길잡이로 세워질 수 있게 잠시 멈취서야 할 시간이다. 지금은 무엇이 우리를 지금의 잘못된 길로 이끌었는지를 성찰해야 하는 급진거북이의 시간이다.

우리 모두 급진거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