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 2010년 한 버스기사가 400원씩 두 번에 걸쳐 버스 요금 800원을 빼돌린 것이 확인돼 재판에 넘겨졌다.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건 2: 유흥접대를 받은 검사의 면직을 취소한 사건에서는 "향응의 가액이 85만원 정도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직무와 관련해 수수했는지도 불명확하다"며 "검사의 면직 처분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결했다.

이런 판결을 내린 판사들이 대한민국 법의 최정점인 대법원에 근무하는 대법원 판사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그냥 오래된 통념이자 제도로 굳어졌다. 권력자와 재벌,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정교한 법적 논리와 고액의 변호인을 앞세워 법망을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법이 부자의 도구로 사용되어도 누구도 그냥 그러려니 생각하고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 기술자들이 법의 울타리 밑에 자신들만의 개구멍을 만들어 놓고 돈을 받고 판사, 검사와 공모해 범죄자들을 풀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 배경에는 법을 기술적으로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공공의 윤리와 정의에는 무감각한 이른바 ‘법기술자’들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유전무죄가 제도로 굳어지자 한층 대담해진 법기술자들이 정치가들과 공모해 국가적 질서를 무너트린 중범죄자들도 개구멍 출입을 허락하고 있다. 점점 커지는 개구멍은 법의 울타리 자체를 송두리째 무너트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법의 울타리를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법기술자는 조문과 판례, 절차의 허점을 이용해 의뢰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법 조문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법을 존종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윤리적 정당성을 무너트린다. 이 같은 현실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법 시스템 내에서 실천적 지혜, 즉 프로네시스(phronesis)의 부재가 빚은 구조적 위기다.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대표적인 실천적 지혜의 상징으로 꼽힌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모두 자기 자식이라 주장하자, 솔로몬은 아이를 둘로 나눠 갖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 순간 진짜 어머니는 울부짖으며 아이를 양보하겠다고 하고, 이를 통해 솔로몬은 진실을 가려낸다. 증거도, 조문도 없던 상황에서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공동체적 윤리를 바탕으로 정의로운 결정을 내렸다.

이 사례는 법이란 단순히 조문을 적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도덕적 판단이자 공공의 선을 위한 실천적 행위여야 함을 일깨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프로네시스를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상황에 맞는 수단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 설명했다. 이는 오늘날 법조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법조 교육과 실무는 테크네(technē), 즉 법률 해석과 기술적 논증에 편중되어 있다. 판사와 변호사, 검사가 법의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윤리적 상상력과 실천적 판단력을 갖추기보다, ‘이기는 기술’에 몰두하게 되는 구조적 유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특정 집단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국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거리에서 피흘리고 있을 때 법조문을 달달 외워서 사법시험에 높은 점수로 통과한 사람들일 것이다. 법조문을 외우는 능력만 탁월한 사람들이 국가의 미래에 개입하는 정치적 판결을 일삼는다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다. 이들을 사람들의 아픔을 판단해야 하는 신성한 자리에 세우는 것은 법의 안대를 쓰고도 저울의 형평을 판단하는 여신 디케에 대한 반란이자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 시대가 법조문 잘 외운 것만 가지고 법기술자로 떵텅거리며 살 수 있는 마지막 시대가 될 것이다.

더 아픈 사람들에 대한 실천적 지혜 없는 법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법조인은 조문을 넘어서 그 법이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과 인간적 고통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공정과 정의는 기술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에서 비롯된다. 대한민국 법률가들이 ‘법기술자’가 아닌 ‘솔로몬의 후예’로 거듭나야 할 때다. 법기술에 빠져 실천적 지혜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사법 정의는 회생할 수 없다. 사법이 사법을 먹고 점점 멸망하는 사법 우로보러스가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