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빚진자들이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스스로 잘난 사람이기 때문에 빚이 없는 듯이 행세하며 산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빚진자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고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헌신에 빚을 졌다. 자연에도 큰 빚을 졌다.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산소와 공기와 물도 대부분 공짜로 써왔고 아름다운 경치를 통해 상한 마음을 치유한 것도 자연에 대한 빚이다. 이웃과 친구에게 진 빚은 더 크다. 지금 이 만큼의 성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동료, 선배, 친구, 이웃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응원해준 덕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고 세상을 호령하며 사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더 큰 빚을 진 사람들이다. 돈 많은 부모 밑에 재벌 아들로 태어난 것, 좋은 머리를 가진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좋은 대학나오고 사자붙은 직업을 향유하는 것도 다 신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행운의 유전자복권을 뽑아준 결과다. 부모의 데이트 스케쥴이 하루만 어긋났어도 우리는 유전자 복권의 당첨자가 될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조상 중 한 사람의 데이트 스케쥴이 하루만 어긋났어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다. 자신이 최고로 건강한 정자로 점지되는 행운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다. 특정한 시간에 수 만 개의 정자의 피 터지는 경쟁을 제치고 난자에 안착하는 행운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는 세상을 구경할 수 없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복권당첨이다. 이런 엄청난 유전자 복권에다 머리 좋은 부모 밑에서 건강과 준수한 외모를 받아 태어난 것은 유전자 복권에 중복당첨된 것이다. 여기에 대학 공부를 시키거나 유학을 보낼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은 다시 복권에 연속으로 당첨된 것이다. 유전자 복권에 중복 당첨될 확률을 계산하면 일등 복권에 당첨될 확률에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전라도에서 태어난 것도 경상도에 태어난 것도 남성으로 태어난 것도 유전자 복권의 결과다. 이 시기에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게 복권을 당첨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큰 은혜이다.

문제는 큰 유전자 복권에 중복 당첨된 사람들일수록 당첨자의 행운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이 모두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세상이 자신 덕택에 사는 것처럼 부풀려 질대로 부풀려진 이고(Ego)의 감옥 속에서 산다. 이들 중에는 왕자를 감추는 연기력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도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이다. 스스로가 빚진자임을 인정하지도 않고 심지어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사회의 공진화를 방해하는 원흉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대법원 재판관들의 대비되는 행태가 눈이 뛴다. 대법원 재판관들은 세상을 판단하는 줄자와 나무자를 만들어 놓고 자신들과 같은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널널한 줄자를 유전자 복권에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을 판단할 때는 일직선의 나무자를 임의로 번갈아 사용하다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어떤 자를 사용하는지는 판결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머리를 유전자 복권으로 받고 태어난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이다. 이들이 유전자 복권 당첨금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법전을 외워가며 고시에 몰두하는 동안에 일반 시민들은 이들이 외운 법이 제대로 적용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피를 흘렸다. 이들이 지금의 지위에서 존경받을 수 있게 만든 토대는 일반 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대가 없는 피흘림이었다. 이들이 빚진자임을 외면해가며 자신과 같은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법비가 되어 있다. 물에 빠진 자를 구해 놓으니 노상강도로 변해 보따리 달라고 달려드는 행태다. 이들의 법 정당성을 넘어서는 정치적 행보는 배은망덕의 극치다. 법의 공정성을 넘어서 법을 정치화 시켜 법을 인간 위에 세우는 비인륜적 행태다. 겉보기에는 인간으로 보이지만 인두껍을 쓴 유사인간이다.

이들이 행사하는 권력과 영향력도 빚에 대한 문제다. 권력은 직책을 무기로 상대가 하기 싫어하는 행동을 시킬 수 있는 개연성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법이 사용되어야 할 목적을 벗어나 사용되면 법은 무기다. 이들이 지금 보이는 행태는 법이라는 칼을 무기로 법비가 되어 국민의 지갑을 강탈하는 노상강도 짓이다. 법의 영향력은 평소 상대의 성공을 도와주고 이렇게 생긴 빚을 지렛대로 더 큰 일을 해결해 줄 때 발현된다. 법관으로서의 영향력은 지금처럼 법을 노상강도의 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진 빚을 성실하게 갚은 은혜의 행동을 통해서만 살아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빚진자임을 인정하고 은혜를 갚는 주체인지의 문제다. 우리가 동물세계의 질서를 규정하는 진화론의 각자도생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빚진자임을 각성하는 일이 세상을 다시 세우는 근원적 변화의 시작점이다. 동물 세상과 달리 인간 세상에서 채권자들은 우리에게 이자조차 청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세상은 온통 은혜와 감사의 대상이다.

은혜와 감사가 사라진 이유는 유전자 복권에 중복 당첨된 지도층 사람들이 빚진자라는 사실을 감추고 유전자 복권을 자신, 가족, 카르텔을 먹여 살리는 일에 전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물 세계의 원리인 진화론에 오염된 사람들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자신의 가족과 카르텔을 위해 소시민들에게 금수만도 못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