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정치의 부상과 함께 음모론이 정치 담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정선거설, 반(反)백신주의, 성소수자 음모론 등은 단순한 주장 그 이상으로, 특정 정치 세력의 결집과 동원에 중요한 심리적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 사회에서도 이 음모론적 정치가 가장 강력하게 뿌리 내리는 곳이 다름 아닌 일부 개신교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도 개신교 신자들이 전광훈을 목사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를 이용해 손현보 목사가 주도한 세계로 교회와 일부 대형교회가 여의도 파라는 이름으로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왜 개신교는 극단적 보수 정치와 근거 없는 음모론의 가장 유력한 동맹군이 되었는가?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념적 편향이나 세속적 이해관계 이상의 차원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본인이 보기에는 개신교 신앙의 인식론적 구조, 즉 세계를 바라보는 틀에 깊이 뿌리박힌 인식 편향(cognitive bias)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심리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이 음모론에 빠지기 쉬운 이유를 몇 가지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으로 설명한다. 그중 핵심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크기 편향(magnitude bias). 이는 “큰 결과에는 반드시 큰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직관이다. 테러, 전염병, 경제위기처럼 사회를 뒤흔드는 대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우연이나 작은 실수보다는 의도적이고 거대한 배후를 찾으려 한다. 둘째, 서사 편향(narrative bias)이다. 인간은 논리적 인과보다는 매력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존재다. 원인과 결과가 모호한 상황에서도, “그럴듯한 이야기”만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에 마음을 내어준다. 마지막으로 셋째, 목적론적 편향(teleological bias)이다. 사람들은 무작위성을 불편해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묻는 순간, 거기에는 목적이나 의도가 있다고 여기는 성향이 작동한다. 이 세계에는 우연이 없고, 모든 일은 누군가의 계획과 목적 아래서 일어난다고 믿는 성향이 목적론적 설명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 세 가지 인식 편향은 음모론의 인식론적 토대를 이룬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개신교 신앙과 깊이 맞물린다.

기독교 인식론과 극보수 음모론의 구조적 유사성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전제한다. 신의 존재, 영적 전쟁, 예정과 섭리 같은 개념은 감각 경험과 논리적 증거를 초월한 세계를 상정한다. 이때 작동하는 인식틀은 앞서 말한 세 가지 편향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우선, 크기 편향. 기독교인은 하나님이라는 전능한 존재가 세상의 모든 일에 개입하신다고 믿는다. 특히 인류 역사 속의 거대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출애굽, 홍수,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모두 “큰 결과는 큰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신념과 맞닿아 있다. 이런 사고에 익숙한 이들은 오늘날의 팬데믹이나 전쟁 같은 사건을 “인간의 실수”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떤 거대한 음모”로 인식하는 데 더 친숙하다.

둘째, 서사 편향. 성경은 이야기의 책이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인간과 신, 선과 악, 배신과 구원의 거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기독교 신자는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 안에서 세상을 읽는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복잡한 현상은 대개 비선형적이며, 간명한 내러티브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때 음모론은 단순하고 선명한 ‘선과 악’의 구도로 현실을 재구성해준다. “그들은 우리를 해치려 하고 있고,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서사와 쉽게 연결된다.

셋째, 목적론적 편향. 기독교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말한다. 고통조차도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위한 과정이라 여긴다. 이런 사고에 익숙한 신자는 “우연”이나 “불확실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신 “왜 이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누군가의 목적이나 악의적 기획을 상정한다. 이 틈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정치적 음모론이다. “이 모든 혼란은 좌파 세력이, 혹은 중국 공산당 마피아 집단이 기독교 가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라는 식의 설명은 불안을 덜어주는 동시에 신념을 강화시킨다.

극 보수정치가 기독교인을 필요로 하는 이유

이러한 인식론적 취약성은 극 보수 정치세력에게는 강력한 자산이다. 기독교인은 단순한 유권자 집단이 아니라, 음모론적 정치의 인식적 정당화 기제를 내면화한 유일한 대중 집단이자 투사들이다. 이들은 감시, 투쟁, 저항의 언어를 성경적 언어로 받아들이고, 현실정치를 ‘영적 전쟁’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한다. 즉, 정치의 영역이 ‘믿음의 전장’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들은 스스로 전사가 된다. 그리고 그 전쟁은 항상 ‘보수 대 진보’의 도식으로 재구성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인가? 기독교인은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음모에 사로잡힌 정치적 용병이 되고 만다. 복음은 이념이 되고, 신앙은 분노의 연료가 된다. 이는 기독교 본연의 정신에도, 건강한 민주주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가 보수 정치의 무기가 되는 것은 단지 정치적 선동이나 성경 해석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 지닌 인식론적 구조 자체가, 음모론적 세계관에 깊은 친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가 이 구조를 잘 이해하고 활용할 때, 기독교인은 쉽게 동원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신앙 자체가 아니라 신앙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온전한 기독교인이라면 이런 음모론의 인식론적 편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믿음은 진리의 세계를 해석하는 렌즈다. 하지만 그 렌즈가 편향된 인식으로 가려졌다면, 우리는 오히려 진실을 보지 못한 채 ‘보는 것을 믿는’ 착각 속에 빠질 수 있다. 기독교인이야말로, 그런 함정에서 누구보다 먼저 깨어나야 한다. 적어도 음모론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공의를 찾아내는 맥락적 질문과 아픔의 눈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기독교의 믿음은 진실에 기반해 있다. 진실은 맥락 자체가 아니라 맥락 속에 숨겨진 보물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맥락 속에 숨겨진 보물과 같아서 변화하는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의 오류에 빠진다. 성경을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맥락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파내는 가장 강력한 성찰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 읽을 때 음모론이 제기하는 거짓된 진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보다 맥락적 진실이 불편한 진실임에도 진실을 사랑해야 한다. 음모론은 진실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불안과 편견을 자극하여 특정 권력의 도구로 기능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변화하는 맥락 속에 숨겨져 있는 공의로운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맥락을 걷어내고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왜 이것을 믿는가?”, “그 이야기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가?”, “믿음과 두려움 중 무엇이 내 판단을 이끄는가?”

그런 와중에 찾아진 공의로운 진실은 다시 긍휼의 눈물로 씻어낸 눈으로 다시 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찾아낸 진실은 더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있는가?" "아픈 사람에 대한 차별, 혐오와 배제는 아닌가?" 우리의 진실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예수의 아픈 마음을 담고 있는가?"

정통 기독교는 음모론자들과 비슷해 보이는 인식론 뿐 아니라 이 인식론을 통해 실현하려는 공의와 긍휼이라는 존재론이 있다. 기독교의 존재론을 보지 못하고 인식론에만 빠져 있다면 유사 기독교인으로 전락한다

공의로운 마음과 더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사랑을 직조해 만든 그물로 맥락을 제거하고 찾아낸 진실만 믿음의 안경으로 연단할 수 있는 진짜 진리일 것이다. 이런 진실한 믿음의 안경으로 못 보던 자신, 못 보던 세상, 보이지 않던 아픈 사람들, 잊고 지내던 과거,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미래를 본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로 통찰의 눈인 비전을 얻은 것이다.

음모론은 기독교 존재론의 두 축인 공의와 긍휼을 잃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인식론적 유사성을 이용해 장님의 검은 안경을 씌운다. 세상을 가리는 안경을 씌워 보았다고 믿는 비현실적인 세상을 현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음모론에 오염된 사람들과는 사실에 근거한 타협과 토론이 불가능하다. 음모론의 안경을 쓴 사람들은 사실에 근거한 차이의 인정과 차이를 통합하는 과정인 민주주의를 부인한다.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 시작해 나찌 정권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듯이 대한민국에서도 음모론에 빠진 기독교는 극보수 파쇼의 먹잇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