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미대에서 늦깍이로 박사를 시작한 친구의 전시회에 초대를 받았다. 박과학생들이 한점씩 출품해 마련한 전시회인데 포스가 범상치 않다.

친구로부터 그림 그리는 학생들은 대부분 생계에 극심한 어려움을 격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림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던 고흐가 아를에 있던 노란집에 세웠던 협동조합이 생각났다. 고흐의 화가 협동조합은 화가들의 민주화를 꿈꾸고 설립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고흐도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그림 한점 팔지 못하고 평생을 가난에 시달렸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화가들은 여전히 가난한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림 판매는 화랑, 유통상, 소수의 평론가들이 전권을 쥐고 있는 구조였다. 화가는 이들 유통구조의 노예다.

양극화도 심각한 문제다. 명성이 있는 부유한 화가는 여러 명의 새끼 화가를 고용해 자신 그림의 다양한 변이를 시뮬라크로 그리게 시키고 그림이 완성되면 자신의 사인을 넣어 비싼 값에 유통시킨다. 이런 양극화는 뱀이 배가 고프면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러스로 번지고 화단 생태계를 망가트린다. 어느 순간 세상은 화가의 영혼이 사라진 그림들로 도배되고 있다.

화단이 민주화되어 화가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 화가들이 유통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 모든 중산층 가정에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무명화가들의 그림이 한두점 씩 걸려있는 문화강국을 꿈꿔본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하지만 여전히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그늘진 영역이 차고 넘친다. 민주화 손길을 기다리며 고통으로 쓰러진 분들이 넘친다. 이들이 주인답게 살 수 있는 천의 고원은 당장 시급한 문제다. 천의 고원은 정치 민주화를 넘어선 삶의 영역에서 온전한 민주가 실현된 운동장이자 플랫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