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피라미드 조직 구조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기업에서 허리 역할을 하던 중간관리자 직책이 사라지는 '대수평화(Great Flattening)' 현상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신자유주의의 몰락에 따른 기업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전환과 일반인공지능(AGI) 및 휴머노이드 로봇의 부상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의 표준 거버넌스였던 '대리인 이론'하에서 중간관리자는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는 관리자들에게 전혀 다른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 중간관리자는 관리자가 아닌 '한방 의사 내지는 상처 당한 직원에 대한 치유사'가 될 것이 요구된다.

관리자 역할의 종말

신자유주의 시대의 표준 거버넌스였던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은 기업의 주인을 주주로 보고, 전문경영인과 직원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고용된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전제한다. 이 구조에서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이윤 창출'이며, 대리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주주를 배신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중간관리자의 핵심 역할이었다. 그들은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하고, 고도화된 인센티브 시스템을 운영하며 직원들의 충성을 유도하는 감시자이자 통제관이었다.

하지만 L자형 장기 불황과 AI기술 발전은 대리인 거버넌스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를 넘어선 AI Agent의 등장은 대리인 이론의 마지막 숨통을 끊고 있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Agent AI는 왠만한 현업의 일을 인간보다 윌등하게 처리하고 있고 심지어 이들은 야근을 시켜도 수당을 요구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열심히 시키는대로 일한다. 조직심리학자들이 백년간 쌓아온 동기 이론이 쓸모없어진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 현업의 일들이 AI Agent에게 이양되고 이런 이양이 성숙되면 현업을 감시할 필요성 자체가 사라진다. 이양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People Analytics만 가지고도 중간관리자들이 했던 성과평가와 보상에 관한 루틴한 일을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다. 알고리즘이 인간 중간관리자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객관적으로 직원의 성과를 측정하고, 목표 달성 과정을 추적하며, 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목적경영 거버넌스의 등장

대리인 이론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목적경영 거버넌스(Purpose-Driven Governance)다. 신자유주의 대리인 이론이 주주를 정점으로 피라밋 구조로 통제하는 방식이라면 목적경영 거버넌스는 역피라미드 구조다.

목적경영 거버넌스는 비즈니스의 존재이유가 돈이 아닌 '목적'을 따라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본다. 기업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 즉 '존재목적'이 기업을 이끄는 동력(끌개)가 된다. 이윤은 목적을 추구한 프로젝트를 구성원들이 주인이 되어 협업해 달성한 결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으로 규정한다. 대리인 거버넌스처럼 이윤을 드라이버로 삼고 이윤을 따라가는 개념이 아니라 이윤은 목적을 성실하게 실현한 결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개념이다. 그 이윤을 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공정성'이 조직을 움직이는 힘(밀개)이 된다.

물론 이런 Agent AI 시대 목적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목적에 대한 약속을 진실된 약속으로 설정하고 구성원과 고객도 회사의 이런 약속을 진실된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작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나 고객이 회사의 목적에 대한 약속의 진실성을 받아들인다면 목적경영 거버넌스는 조직 구조를 역피라미드로 뒤집는다. CEO는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대신, 가장 아래에서 조직 전체가 나아갈 '목적'이라는 배의 방향을 잡는 조타수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현업의 과제를 직접 수행하는 전문가들이 조직의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피라미드의 최상단 운동장에서 목적의 주인이자 목적의 대리인으로 활동한다. 이 역피라미드 구조에서 직원들은 더 이상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아닌,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주인이자 협업의 파트너다.

초뷰카 시대 관리자의 역할

이런 역 피라미드 목적경영 거버넌스 구조에서 중간관리자는 해고되어야 할까?

아니다.

바로 회사가 약속한 목적과 목적을 실현하는 현업 전문가들의 사명과제 수행 사이에서 막힌 혈을 뚫고 기를 불어넣는 조직한방병원 의사' 내지는 문제를 풀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구성원을 다시 치유하고 위로하는 치유사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과거 중간관리자가 직원의 일탈을 감시하는 데 주력했다면, 새로운 중간 관리자는 공동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겪는 '아픔'을 진단하고 치유해서 이들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 초뷰카시대 현업의 전문가들은 원대한 목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과 장벽에 부딪히며 상처를 입는다. 자원이 부족하고, 동료와의 협업이 어긋나며, 때로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쓰러지기도 한다. 중간관리자는 그들의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해 주는 한방 의사가 되어야 한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생긴 아픔과 가시는 양방식 수술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외과식 수술은 갱생이 불가능한 마지막 단계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문제해결과정에서 생긴 아픔은 한방식으로 몸의 온도를 높혀 아픔의 뿌리를 녹여낼 수 있을 때만 치유된다. 종업원이 왜 넘어졌는지, 무엇이 발목을 잡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한 연민(Self-Compassion)과 회복탄력성을 불어넣어 주어야 상처가 온전하게 치유된다.

관리자는 질책과 통제가 아닌, 따뜻한 진맥과 처방을 통해 전문가들이 다시금 목적을 향한 여정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먼저 넘어지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일 때, 구성원들은 측은지심을 느끼고 기꺼이 마음의 밭을 내어준다. 근원적 변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 수평화 시대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름을 영어 이름으로 바꾸고 구성원을 님으로 부르라고 강요하지만 디커플링으로 끝난다. 대 수평화 시대에 동참한다는 것은 단순히 조직도를 평평하게 만드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다.

대 수평화 시대의 본질은 기업의 영혼인 목적을 찾아 세우고 목적에 대한 약속을 과제로 수행하게 도와주는 거버넌스의 혁명이다. 이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과거의 감시자 역할에 머무르는 중간관리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중간관리자는 차가운 감시의 눈을 거두고, 구성원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길을 찾는 따뜻한 '한방 명의(名醫)'이다. 이들만이 조직이 약속한 목적을 중심으로 몸, 마음, 정신이 통합된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지속가능한 성과를 창출하는 위대한 여정의 핵심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