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29 12:09
[Carpe Diem] 정년 퇴임하는 스승님을 위한 헌사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8,008  

독고 윤교수님의 정년기념 학술대회 축사

저와 아주대학교와의 인연은 어려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오래 전인 26년 전 1987년까지 거슬러 갑니다.

제가 군을 제대하고 유학가기 전에 아주대학교에서 잠깐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심리학과의 안한숙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안한숙 선생님은 생리심리학 전공으로 그 당시 아주대학교가 의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뉴욕대학 의대에 적을 두고 계시던 분을 특별초빙 형식으로 모셔 오신 분입니다. 안한숙선생님은 50년대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유학을 떠나 아이오와에서 박사를 하시고 뉴욕대학에서 교수를 하신 유학 1세대 선구적 여성이셨습니다. 제가 아이오와 대학에서 박사를 마친 것도 안한숙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른 것입니다.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바치느라고 결혼을 하시지 못하신 안한숙 선생님은 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높게 평가해주시고 저를 양아들로 삼으셔서 지금까지 저를 친자식으로 여기고 맨토링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그 당시 연세가 있으셨음에도 매 수업시간마다 강의노트를 다시 쓰시고 새로운 연구가 출판될 때마다 그 내용을 업데이트해서 강의노트에 반영하시고, 학생들 시험지를 한 명 한명 다 꼼꼼히 읽어보고 피드백을 해주는 모습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그 당시 교수님들의 일반적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수님들의 강의노트는 교수님들의 영업비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년이 가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7년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독고교수님이 강의노트를 인터넷 공개하는 정책을 시도하였을 때 많은 교수님들이 충격을 받아 대혼란이 있었던 일도 결국 한국적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안한숙교수님을 만나 진정한 교수의 역할을 옆에서 보고 배우게 된 것은 젊은 시절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 후 안한숙 선생님은 의대가 성공적으로 설립된 후 다시 심리학과를 설립하셔서 심리학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지금은 은퇴를 하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고 계십니다. 정년퇴임으로 학교를 떠나실 때는 본인의 전공이 생리 심리학이었음에도 생리심리학 보다는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되는 다른 전공의 교수님을 후임으로 직접 뽑으시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제가 안한숙교수님과의 인연을 장황스럽게 말씀드리는 것은 안한숙교수님이 저와 독고교수님간의 인연의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94년 아이오와에서 박사를 마치고 코넬대학으로 옮겨와 있던 1995년 여름 안한숙 선생님을 뵙기 위해 아주대학교를 잠깐 방문했을 때 제 인생을 다시 한 번 바꾸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생님께 한국에 돌아 올 생각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이력서를 독고교수님에게 보내셔서 전격적인 채용이 하루만에 이뤄졌습니다. 너무 급작스런 채용이라 교수티오를 낼 수가 없어서 일단은 대우교수로 입사하기로 했습니다. 후일담으로 독교교수님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는냐"하고 여러사람들에게 덕담을 해주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교수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에 하루만의 의사결정은 당시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에 대한 한국대학의 패러다임을 고쳐 쓰던 아주대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96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독교교수님의 리더십이 탄력을 받아 한국대학의 발전의 역사를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이 선두에서서 막 쓰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 대학교육의 역사를 선도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려가면서 학교를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독고교수님에 대한 첫 인상은 내가 만나본 분 중에서 몇 안 되는 최고로 스마트한 분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숨겨진 진정한 무기는 최고를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약자들을 향한 한없이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중에 같이 생활해가면서 서서히 깨달게 되었습니다.

독고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좋은 대학과 훌륭한 교수의 역할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사사받을 수 있었습니다. 독고교수님은 좋은 대학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희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장 즐기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좋은 대학의 정의는 어떤 어려운 난관이 닥쳐도 교수님들이 연구와 강의에서의 수월성을 포기하지 않는 대학입니다. 이 좋은 대학에 대한 믿음은 한국에서 교수로써의 나태함에 빠져서 살 수 있는 나 자신의 진북(true north)을 설정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와서도 제가 여름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코넬에 가서 연구를 하고 돌아오는 여정이 올해로 16년째 루틴으로 정립된 것도 결국은 독고교수님이 소명이신 학자라면 죽는 날까지 “연구의 수월성을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는”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동료들도 나의 여름연구여행을 고상하게 여름연구순례여행 Summer Research Pilgrimage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의 수월성과 미션에 대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파되기 시작하자 구형건, 조진완, 김일형교수님 등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이 대거 아주대학교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당시에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이 국내 대학 중에는 국제연구업적수준과 수업의 질에 있어서 최고의 교수진을 보유하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뛰어난 미션은 자석처럼 그에 동조하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준다는 내 평소의 믿음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 설정된 금융공학과의 WCU 프로그램도 결국은 독고교수님의 이와 같은 수월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처럼 연구와 교육의 수월성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계신 교수님들과 좋은 대학의 조건과 연구의 수월성을 위해 토론을 벌이던 시기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 뛰며 생활했던 교수로써의 황금기였습니다. 다시 한 번 이런 기회의 플랫폼을 조성해주셨던 독고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독고교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금도 내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정직성입니다. 정직이 가장 느린 길이지만 정직을 저버리기 시작할 때 모든 거래에는 비용이 치솟기 시작할 것이고 따라서 사회는 정치적 거래에 의해서 부패하기 시작한다. 정직하게 땀의 씨앗을 뿌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이다. 이와 같은 정직성의 경제학은 많은 울림을 만들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명예선언을 하고, 무감독 시험을 시행하고, 집 짖기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활동을 만들어내고 이것들이 다른 대학에 벤치마킹되어 정직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학교수의 관행처럼 여기던 표절문제를 사회문제화 함에 의해서 대학이 자성하는 계기도 만들어 냈습니다. 독고교수님이 이 맥락에서 자주 인용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검은 법복을 입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교수, 성직자, 법관이라는 사실입니다. 사회가 가장 혼탁한 순간에도 이들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사회의 권한위임입니다. 한국에서 법관이나 성직자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학교를 중심으로 양심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 이것은 독고교수님의 덕택일 겁니다.

둘째는 교육에서는 탁월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서서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독고교수님은 능력이 아니라 학벌에 의해서 기회가 제한되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으시고 아주대학교 학생들에게 항상 너희들부터 학벌을 깨 부시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우뚝 서야한다고 독려하셨습니다. 독려의 방법은 말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시는 것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저는 초기에는 독고교수님의 말씀에 반신반의 하였습니다. 경기고 서울대 와튼스쿨의 학벌을 가지신 분이 학벌을 타파하고 능력에 따라서 기회를 주자고 주장한다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분이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저런 이야기를 할까? 당신은 학벌에 대한 것을 다 누리고 살만큼 살아서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그와 같은 의심을 가진 적이 있으나 그런 말씀을 하시고 다니시는 원동력이 결국 학벌의 감옥에 갇혀 기도 펴지 못하고 시들어 갈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젊은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고 진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학벌하나로 평생을 먹고사는 학벌에 대한 랜트시킹(rent seeking)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아주대학생과 같은 젊고 패기만만한 열정을 가진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 수조차도 없다는 안타까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독고교수님으로부터 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내리사랑으로 학벌의 감옥에서 구해낼야 할 뿐 아니라 구해낸 학생들에게 삶의 나침반을 보여주여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학벌로 랜트시킹하며 호의호식을 해 온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독고교수님의 최고의 마음의 적이었을 겁니다. 이와 같은 학생에 대한 사랑은 교권보다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실행방안으로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최초로 교수의 강의평가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교권이 바위처럼 단단한 사회에 교수들로부터 많은 저항을 야기했고 다양한 흠해와 핍박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많은 싸움과 핍박에도 독고교수님은 대학에서 항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약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라는 믿음이 제가 전수받은 두 번째 가치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배우다보면 누구나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일찍부터 대학에서 학습이 전수되는 방향을 읽으시고 무경계교육의 이념을 설파하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육이 한곳에서 머물지 않고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사회에 대한 이상형이 무경계교육의 이념입니다. 요즈음 많은 대학과 기관들이 몰입하고 있는 평생교육이란 것도 보면 무경계교육이념의 한 산물입니다.

아주대학교와 경영대학의 현금상자로 자리 잡은 사이버엠비에이는 이와 같은 교육의 방향에 대한 통찰력의 산물입니다. 또한 교수나 학생이나 마음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학습해서 자신의 경계를 확장시켜나갈 때 다른 사람을 시샘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10년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독고교수님은 10년을 앞서서 세월을 보시고 살아오신 분이라는 것이 이제야 많은 사람들이 꺠달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좋은 대학에 대한 생각은 아주대학교의 척박한 토양에서 발아되기에는 너무 큰 씨앗이었다고 그래서 씨앗이 충분히 발아되지 못하고 고사당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독고교수님의 철학과 믿음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이라는 토양을 넘어 이미 저를 비롯한 많은 교수와 제자들의 마음속에 정신으로 살아남아서 그분들의 사는 세상에서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독고교수님은 “한국의 좋은 대학”이라는 멋진 교양곡을 작곡하시고 지금까지 지휘하고 계신 장본인입니다. 이 교향곡은 독고교수님과는 독립적으로 제자들과 후배교수들의 마음과 마음속에서 공감을 일으키며 영원히 살아서 울려 퍼질 것입니다.

독고교수님은 이와 같은 좋은 대학의 사명을 선구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박해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학교에 대한 신념을 한 번도 포기하지지 않고 영원히 힘없는 학생들의 친구로 남아계셨습니다. 독고교수님은 정말 시대의 스승님이십니다. 독고교수님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맹자가 고자장에서 쓴 말이 생각납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너무 지금까지 독고교수님의 가르침 덕택에 너무 과분한 사랑과 혜택을 받고 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13년 6월 22일

윤정구


PS: 대학이 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자행하고 있는 갑질

http://www.nlearners.org/gnuboard4/bbs/board.php?bo_table=nlearning&wr_id=510&page=2


jkyoon 13-06-30 12:01
답변 삭제  
구형건교수님을 포항공대로부터 모셔올 때 비화:
-독고 윤-

미국의 대학에서 총장이나 학장에게 우수 교수 유치는 더 좋은 대학을 만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이다. 대학을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비유한다면 가르치는 교수는 원료(input)이며, 배우는 학생은 제품(output)이라 할 수 있는데, 원료가 좋아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듯이, 가르치는 교수가 우수해야 우수한 학생을 배출할 수 있는 법이다. 지극히 명료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네 대학이 흔히 무시하는 법칙이다. 대학 경영에서 가장 기본원칙인데도 말이다. 나는 우수교수 유치를 말로만 하는 총장이나 학장도 여럿을 보아왔다.

나는 학장을 역임하면서 예산확장(돈이 있어야 좋은 학교를 만들기가 더 쉬어지지 않겠는가), 우수 교수 유치 및 학교홍보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자부한다. 이 셋 중에 우수 교수 유치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총장이나 학장이 우수한 교수를 유치하겠다고 노래 부르듯이 떠들고 다니며 실제 행동으로 옮기면 교육이나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교수들이 알아서 하며, 학생들은 수업의 질 향상을 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는 게 내가 주장하는 대학 경영론의 핵심이다.

아주대처럼 일종의 ‘후발’ 대학이 서울대, 연대, 고려대 등과 맞서 우수한 교수를 스카우트 하려는 노력은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일처럼 거창하게 비유는 안 하더라도 남편이 갖다 주는 얼마 안 되는 봉급에만 의존해 살림하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싶은 엄마의 마음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옷을 입히고 싶다면 바겐세일을 기다리든지 돈을 모으든지 무슨 수를 취해야지 가만히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어디서 좋은 옷을 파는지도 알아야 한다. 어쩌다 한 번 사 입히는 옷인데 충동구매나 아무 거나 사는 행위는 없는 살림에 정말 위험한 짓일 게다.

우수 교수 유치는 이처럼 없는 살림에 자식에게 좋은 옷을 사 입히려는 엄마의 바람과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나는 학장으로 역임하면서 우수한 교수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 많은 조사를 했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의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이나 최근에 조교수가 되어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들에 관한 정보를 끊임없이 입수하고, 그들의 신변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를 알려고 노력하였다. 다른 대학에 있는 시니어 교수들 중에는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교수들에 관해 항상 파악하고 있으려 했다. 이 들 중 우리가 언제 어떻게 아주대학에 모셔올 수 있을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싶은 ‘명품’을 나열한 위시리스트(wish list) 중에는 지금 우리 대학에 계신 구형건 교수님도 있었다. 서울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구 교수님은 텍사스 대학(Austin)에서 수학박사를, 프린스톤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1980년대 말 유능한 학장을 영입하여 신흥 명문 경영대학원으로 부상한 Olin School(Washington Univ, St. Louis에 있음)에서 3년여 교수를 역임한 후 포항공대에 재직 중이었다. 경제학 분야에서 Harvard, MIT, Chicago 및 Stanford와 더불어 5대 산맥 중의 하나이며, von Neumann과 Nash(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다.) 등 전설적인 학자들이 거쳐 간 Princeton의 경제학 박사라는 점만 보더라도 구 박사님은 ‘명품’인데, 노벨상을 받을 것이 확실한 Dixit 교수 밑에서 수학(修學)하고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American Economic Review의 편집장인 Campbell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셨으니 구 박사님은 배운 수준으로 따지자면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게다가 금융공학(선물 옵션)분야에서 그 분의 연구 업적은 세계적인 수준이었으니 구 박사님이야말로 내가 꿈에서라도 갖고 싶은 ‘명품’이었다. 그러나 연봉이나 연구지원에서 아주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우수한 조건을 제시하는 포항공대에 재직 중이었으니 아주대에 올리는 만무했었다.

아무리 비싼 명품이라도 잘 지켜보면서 기다리면 운이 좋아 살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내가 구형건 교수님을 갖고 싶은 명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던 때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999년 3월 어느 날 포항 비행장에 비행기가 착륙하다가 활주로를 이탈해 무언가에 부딪쳐 두 동강이가 나 여러 사람이 심하게 다친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눈앞에서 무언가가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즉시로 포항공대에 교수로 있는 후배를 통해 구형건 교수님이 그 비행기를 탔으며, 허리를 상당히 다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지만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부터 구형건 교수님을 아주대학에 모셔오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였다. 우선 구 박사님의 가족관계를 알아보니 쌍둥이 아들이 있는데 대원외고에 다니고 있단다. 그래서 집은 서울이고, 월요일 포항에 내려가서 주말에 서울로 돌아오는 원거리 출퇴근(commuting)을 하던 중에 비행기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구 박사님 스카우트가 성공할 확률은 50% 이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구 박사님이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두 달 정도가 지나 나는 구 박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어느 금요일 오후 아주대를 방문해 세미나를 열어 주십사고 초대했다. 나는 스카우트 의도를 조금도 표시하지 않고, 단순히 논문 하나를 발표하는 세미나임을 강조했다. 아주대가 구 박사님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세미나에 초청한다면 아직도 환자 상태인 구 박사님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고, 구 박사님은 세미나 초청을 아예 거절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금요일 오후에 아주대를 방문해서 즐거운 세미나를 갖자는 것만을 강조했다. 마치 한 남학생이 한 여학생에게 저녁만 먹으면서 부담 없는 데이트를 하자고 요청하는 것처럼. 실제로 대학이 우수 교수를 유치하는 과정은 이와 같은 구애(求愛)행위와 비슷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짝사랑으로 끝나기도 하겠지만.

구 박사님에게 댁이 어디냐고 자연스럽게 물었더니 성수대교 건너 성수동이란다. 우선 구 박사님이 세미나를 하려고 아주대에 올 때 우리 학교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만약에 구 박사님이 익숙하지 않은 길을 직접 운전을 하거나, 강북에 있는 집에서 강남으로 나와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아주대에 온다면 아주대가 아주 먼 곳에 소재한 대학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구 박사님에게 집에서 모범택시를 불러 학교까지 타고 오시면 비용은 아주대가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안에서 잠을 자던지 책이라도 읽으면 사실 아주대는 강북에서도 매우 가까운 대학이다.(게다가 구 박사님의 경우 시골사람 서울 구경 온 것도 아닌데 차 안에서 밖을 두리번거릴 일도 없지 않겠는가.) 대학교수에게 모범택시 타는 일이 그다지 흔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주대도 포항공대처럼 부자 대학이라는 과시도 은근히 겸할 수도 있었다.

구 박사님 스카우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수학과에 도움을 요청했다. 수학과 교수님들도 세미나에 오셔서 구 박사님에게 많은 질문을 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수학과 교수님들은 세미나 발표하러 우리 대학에 오신 분에게 어떻게 하면 경의를 표시하는지를 알고 계신 분들이었다. (발표자에게 힘든 시간을 드리는 것이 도리다.) 우리 대학에 관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지적(知的)으로 ‘같이 놀만한’ 교수가 우리 대학에도 많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중섭 교수님, 고계원 교수님, 이승호 교수님 등 여러 분들이 나의 요청에 응해 주셨다. 물론 경영대의 상당수의 교수님들도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세미나가 끝난 후 저녁은 강남 청담동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장소를 청담동으로 정한 이유는 우선 세미나가 5시쯤 끝나면 고속화 도로를 타고 가면 청담동까지 한 시간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은 내가 운전을 하면서 차 안에서 계속 토론을 하면 아주대가 멀리 있다는 느낌을 전혀 안 줄 거라는 계산이었다.(우리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다! 그것도 강북에서 가까운.) 그리고 식사 후 구 박사님이 집에까지 가는 시간은 성수대교를 건너기만 하면 되니까 10분 정도면 충분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레스토랑 방에서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아름드리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번잡한 도시 생활에서는 귀한 분위기였다. (사실 나는 다른 교수를 유치할 때도 이 방을 자주 이용하였다.)

저녁 식사는 경영대 교수님들과 세미나에 오신 수학과 교수님들 7~8 분이 함께 하였다. 우리 대학의 교수진이 의기투합하고 지적(intellectual)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구성이나 숫자로 보건대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구 박사님을 모신다는 우리들의 ‘겸손함’을 보이기에도 아주 적절한 수의 교수들이 모였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는 구 박사님에게 우리 대학에 오시라는 이야기를 안 했다. 그냥 아주대학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각본 없이 수학과 교수님들과 경영대 교수님들이 많이 해 주셨다. 아주경영을 한국에서 제일 좋은 경영대로 만들고 싶다는 우리의 의지와 비전을 보여드리려고 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이게 진짜 홍보다!) 구 박사님의 관심 분야인 금융공학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이것은 더 진짜 홍보.) 구 박사님 입장에서 볼 때 지적으로 같이 놀만한 동료는 포항공대보다 아주대에 더 많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저녁 모임이었을 게다.

저녁을 마칠 무렵인 10시경이 돼서야 나는 속마음을 털어 냈다. 사실 그동안 구 박사님을 아주대학에 모셔오고 싶었으니 다음 학기부터 아주대에 오시라고. 그런데 나의 제의는 일요일 밤 10시에 끝나는 것이니까 아주대에 오시고 싶으면 48시간 안에 수락하셔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구 박사님을 한없이 기다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구 박사님을 놓치고 나서 구 박사님 다음으로 원하는 분마저 놓치는 위험을 부담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지만 일요일 밤까지 48시간의 여유밖에 못 드리는 점을 양해해주십사는 부탁도 드렸다.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구 박사님이 우리 대학에 안 온다면 다른 대안이 그 당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 박사님이 안 오시겠다면 대안을 찾기 시작했겠지만 말이다.(나는 당시 김덕중 총장 및 경영대 재무분야 교수들과 구 박사님이 ‘최고’임에 합의를 이미 도출하였다. 이런 의사 결정과정은 무슨 규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금요일을 세미나 날로 잡고, 잡오퍼(job offer)도 이날 저녁 늦게 제안한 이유는 바로 구 박사님의 가족(나에게는 진짜 원군이었을 게다.)에 있었다. 금요일 밤 늦게 잡오퍼를 받은 구 박사님이 직장을 옮기는 것에 관해 상의를 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 때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가족뿐이라는 게 나의 계산이었다. 불과 몇 달 전에 비행기 사고로 아빠를 잃을 뻔 했던 가족들에게 아주대학의 잡오퍼는 매우 매력적이었을 게다.

그러나 월요일에 구 박사님이 포항공대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을 나는 내 경험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일리노이 대학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매년 여름 방학에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내년 가을에는 아주 이사해서 돌아올게요.”라는 약속을 하였는데 일단 일리노이 대학의 좋은 연구 환경으로 돌아가면 그 약속은 다 잊어버리고 눌러 앉았던 짓만 햇수로 따져도 거의 10년을 그래왔는데, 구 박사님이 다음 주부터 포항공대로 커뮤팅을 시작하면 구 박사님을 모셔오기란 매우 힘들 거라는 예상을 하였다. 게다가 포항공대의 동료들은 구 박사님이 떠나지 않도록 극구 만류할 것임은 뻔했다.

약속한 시간인 일요일 밤 10시경 구 박사님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잡오퍼를 일주일만 연기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주말 내내 구 박사님은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게다. 아빠의 안전을 염려하는 가족들로부터 “아빠, 우리 서울서 같이 살자”라는 말도 들었을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포항공대의 매력이나 프레스티지도 놓치기 싫었을 것이다. 구 박사님의 고민하던 모습은 보지 않았어도 눈에 선했다. 그게 바로 내가 노리던 것이었다. 경제학자인 우리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균형(equilibrium)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매주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 한 포항공대는 아주대보다 절대적으로 매력 있는 대학은 더 이상 아니었다. 나는 구 박사님에게 월요일 아침 10시까지 잡오퍼를 연기해 드렸다. 어차피 그 시간까지는 포항공대에 못 가실 테니까.

월요일 아침 9시경 구 박사님은 서울역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학기부터 아주대에 오시겠다고 통보해왔다.(구 박사님은 비행기 공포증에서 아직 못 벗어나던 때였다.) 비록 구두 약속이지만, 구 박사님을 학자로서 존경하던 나는 이 분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데 조금의 의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나는 구 박사님을 우리 대학에 오시라고 권유하던 과정에서 구 박사님의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핑계는 있지만 어쨌든 못 지킨 약속이다. 그래도 구 박사님은 다른 대학의 유혹이 있어도 우리 대학에 계셔 왔다. 아주대에 오신 이후 구 박사님은 더 좋은 대접을 받겠다고 자기 욕심을 부린 적도 없다. 그저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단다. 이게 진짜 승부를 가리는 프로의 자세이다. 일단 쌈판에 나가면 ‘우리’ 팀이 이겨야 되는 법이다. 지는 팀 안에서 자기 혼자만이라도 조금 더 좋은 대접을 받겠다고 자기 것만 챙기려는 사람은 진짜 프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구 박사님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마찬가지로 지는 팀 안에서 캡틴 하겠다고 잔머리 굴리는 사람보다 이기는 팀 안에서 후보 선수라도 하겠다는 우직한 사람을 나는 더 좋아한다.

구 박사님을 모셔오던 때가 불쑥 생각나서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내 자랑을 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에 목적이 있다면 “우수 교수 유치”란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행동으로 하는 것이지 구호로 떠들어 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입으로 떠드는 비전이 아니라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은 비전과 신념을 가슴 속에 정말로 간직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우수교수 유치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일이라면 우수교수 유치에는 정형도 없고 정도도 없다. Purdue 대학이 Business Week誌에서 best teacher로 자랑하던 김일형 교수님을 아주대학에 모셔오기 위해서 나는 2년을 기다린 적도 있다. 구 박사님에게 드린 60시간에 비하면 영겁의 시간이었다. 정말 대가(大家)를 모셔올 때는 김덕중 총장께서 직접 나서 챙기셨다. 우수 교수 유치에도 프로토콜이 있다는 말이다. MIT가 선정한 ‘아담 스미스 이후 경제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1,140명의 경제학자’ 중에 유일한 한국인인 이동헌 선생님을 우리 대학에 모셔올 때가 그러했다. 몇 년을 가까운 사이로 사귀다가 아주대에 안 올 거면 의를 끊자고 떼를 쓴 적도 있었다. 회계 분야에서 제1인자인 서윤석 교수님을 모셔올 때가 그러했다. 카네기 멜론의 대학원생 시절에 찜을 해 놓았다가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조교수가 된 후 5년여를 학문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학생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조진완 교수님을 모셔올 때가 그러했다. 온라인 교육(e-러닝)에 원대한 꿈을 갖고 계신 분이 있어 아주대에서 그 꿈을 실현시켜 드리겠다는 약속으로 유혹한 분도 있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온라인 MBA과정을 아주대에서 당당하게 취항시킨 방석범 교수님을 모셔올 때가 그러했다. 자기 발로 우리 대학을 찾아 온 분도 있었다. 윤정구 교수님은 Cornell 대학에 계시다가 자기 발로 우리 대학에 찾아오셨다. 아주대가 한참 잘 나갈 때 호박이 넝쿨째로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그때 윤정구 교수님의 연구업적을 담은 이력서를 보고 횡재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대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새롭다.

우수 교수 유치란 어린 아이에게는 예쁜 구슬을 모으는 일이고, 엄마에게는 자식에게 좋은 옷을 입히는 일이며, 할아버지에게는 손자에게 조상대대로 지켜온 혼을 넣어 주고 싶은 일과 같은 것이다. 상대방과 게임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상대방에게 아주대를 좋은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비전과 능력을 확신시켜야만 가능하다. 상대방의 이력서(curriculum vita)를 읽으면 행간의 뜻을 찾아내서 그 사람의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혜안도 필요하다. 고등교육에서 수월성의 가치를 이해하고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우수 교수를 면접하는 게 아니라, 우수 교수가 아주대에 와서 총장, 부총장, 교무처장, 학장, 교수진을 면접하는 것이다. 우수 교수를 배척하려는 기존 교수들과 맞서 싸워야할 때도 있으니, 교수들 눈치나 보면서 자리에 연연하는 총장이나 학장은 절대로 못할 일이다. 때로는 아무개를 임용하라고 윗사람들로부터 무언 유언의 압력을 받을 때도 있으니, 윗사람에게 대항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경쟁대학이나 상대대학이 눈치 못 채게 비밀리에 작업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우수 교수를 유치하는 전략은 다르다. 그저 신문에 교수모집 광고 내고 요식절차를 따라 지원자 중에 한 사람 ‘뽑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우수 교수 유치란 말로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대학이 등록금 올려 받기 위해 만드는 구호는 더 더욱 아니다.

말로만 우수 교수 유치한다고 떠들어대는 총장이나 학장에게 진짜로 우수 교수를 유치할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드리면 무슨 짓을 해서 피할까? 우선 학교 규정에 없는 일이라면서 이리저리 피할 것이다. 규정을 따지거나, 우수 교수를 유치하는 제도부터 만들자는 것이다. 이럴 때는 복지부동하는 저질 공무원과 아주 똑같다. 우수 교수 유치에는 정형이나 정도가 없는데 무슨 규정이나 제도를 찾느냐고 따지면 이번에는 무어라고 핑계를 댈까? 교수님들에게 맡긴 일이니 자율적으로 정하시란다. 대학에서 총장이나 학장이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을 위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궤변 중에 가장 흔한 것이 “교수님들 자율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말이다.

때로는 우수 교수를 배척하려는 사람들은 “돈으로 사람을 사려는 발상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듣기에 그럴듯한 궤변도 펼친다.(자신들이 돈을 밝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물론 돈만으로 우수 교수를 사오기는 어렵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수 교수를 유치하려면 좋은 대학을 만들겠다는 비전과 열정이 있어야 하며, 고액연봉 또는 다른 조건의 제공은 그런 비전과 열정을 표시하는 징표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100송이의 장미, 루비 반지를 사주는 것이 전혀 돈이 안 아깝고 마냥 즐겁기만 하듯이. 엄마가 자기는 못 입어도 자식에게 좋은 옷을 입힐 때 그저 행복하기만 하듯이. 바로 이런 마음이 우리 대학에 필요하다.

독고 윤
운수대통 18-05-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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