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 윤교수님의 정년기념 학술대회 축사
저와 아주대학교와의 인연은 어려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오래 전인 26년 전 1987년까지 거슬러 갑니다.
제가 군을 제대하고 유학가기 전에 아주대학교에서 잠깐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심리학과의 안한숙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안한숙 선생님은 생리심리학 전공으로 그 당시 아주대학교가 의대를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뉴욕대학 의대에 적을 두고 계시던 분을 특별초빙 형식으로 모셔 오신 분입니다. 안한숙선생님은 50년대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유학을 떠나 아이오와에서 박사를 하시고 뉴욕대학에서 교수를 하신 유학 1세대 선구적 여성이셨습니다. 제가 아이오와 대학에서 박사를 마친 것도 안한숙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른 것입니다. 평생을 연구와 교육에 바치느라고 결혼을 하시지 못하신 안한숙 선생님은 제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높게 평가해주시고 저를 양아들로 삼으셔서 지금까지 저를 친자식으로 여기고 맨토링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그 당시 연세가 있으셨음에도 매 수업시간마다 강의노트를 다시 쓰시고 새로운 연구가 출판될 때마다 그 내용을 업데이트해서 강의노트에 반영하시고, 학생들 시험지를 한 명 한명 다 꼼꼼히 읽어보고 피드백을 해주는 모습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그 당시 교수님들의 일반적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수님들의 강의노트는 교수님들의 영업비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년이 가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97년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독고교수님이 강의노트를 인터넷 공개하는 정책을 시도하였을 때 많은 교수님들이 충격을 받아 대혼란이 있었던 일도 결국 한국적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안한숙교수님을 만나 진정한 교수의 역할을 옆에서 보고 배우게 된 것은 젊은 시절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 후 안한숙 선생님은 의대가 성공적으로 설립된 후 다시 심리학과를 설립하셔서 심리학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지금은 은퇴를 하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고 계십니다. 정년퇴임으로 학교를 떠나실 때는 본인의 전공이 생리 심리학이었음에도 생리심리학 보다는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되는 다른 전공의 교수님을 후임으로 직접 뽑으시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제가 안한숙교수님과의 인연을 장황스럽게 말씀드리는 것은 안한숙교수님이 저와 독고교수님간의 인연의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94년 아이오와에서 박사를 마치고 코넬대학으로 옮겨와 있던 1995년 여름 안한숙 선생님을 뵙기 위해 아주대학교를 잠깐 방문했을 때 제 인생을 다시 한 번 바꾸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생님께 한국에 돌아 올 생각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이력서를 독고교수님에게 보내셔서 전격적인 채용이 하루만에 이뤄졌습니다. 너무 급작스런 채용이라 교수티오를 낼 수가 없어서 일단은 대우교수로 입사하기로 했습니다. 후일담으로 독교교수님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는냐"하고 여러사람들에게 덕담을 해주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교수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그 시절에 하루만의 의사결정은 당시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에 대한 한국대학의 패러다임을 고쳐 쓰던 아주대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96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독교교수님의 리더십이 탄력을 받아 한국대학의 발전의 역사를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이 선두에서서 막 쓰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 대학교육의 역사를 선도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려가면서 학교를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독고교수님에 대한 첫 인상은 내가 만나본 분 중에서 몇 안 되는 최고로 스마트한 분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숨겨진 진정한 무기는 최고를 향한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약자들을 향한 한없이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중에 같이 생활해가면서 서서히 깨달게 되었습니다.
독고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좋은 대학과 훌륭한 교수의 역할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사사받을 수 있었습니다. 독고교수님은 좋은 대학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희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장 즐기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좋은 대학의 정의는 어떤 어려운 난관이 닥쳐도 교수님들이 연구와 강의에서의 수월성을 포기하지 않는 대학입니다. 이 좋은 대학에 대한 믿음은 한국에서 교수로써의 나태함에 빠져서 살 수 있는 나 자신의 진북(true north)을 설정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와서도 제가 여름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코넬에 가서 연구를 하고 돌아오는 여정이 올해로 16년째 루틴으로 정립된 것도 결국은 독고교수님이 소명이신 학자라면 죽는 날까지 “연구의 수월성을 위해서 헌신해야 한다는”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동료들도 나의 여름연구여행을 고상하게 여름연구순례여행 Summer Research Pilgrimage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의 수월성과 미션에 대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파되기 시작하자 구형건, 조진완, 김일형교수님 등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이 대거 아주대학교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당시에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이 국내 대학 중에는 국제연구업적수준과 수업의 질에 있어서 최고의 교수진을 보유하는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뛰어난 미션은 자석처럼 그에 동조하는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준다는 내 평소의 믿음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 설정된 금융공학과의 WCU 프로그램도 결국은 독고교수님의 이와 같은 수월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처럼 연구와 교육의 수월성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계신 교수님들과 좋은 대학의 조건과 연구의 수월성을 위해 토론을 벌이던 시기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 뛰며 생활했던 교수로써의 황금기였습니다. 다시 한 번 이런 기회의 플랫폼을 조성해주셨던 독고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독고교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금도 내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정직성입니다. 정직이 가장 느린 길이지만 정직을 저버리기 시작할 때 모든 거래에는 비용이 치솟기 시작할 것이고 따라서 사회는 정치적 거래에 의해서 부패하기 시작한다. 정직하게 땀의 씨앗을 뿌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이다. 이와 같은 정직성의 경제학은 많은 울림을 만들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명예선언을 하고, 무감독 시험을 시행하고, 집 짖기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활동을 만들어내고 이것들이 다른 대학에 벤치마킹되어 정직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학교수의 관행처럼 여기던 표절문제를 사회문제화 함에 의해서 대학이 자성하는 계기도 만들어 냈습니다. 독고교수님이 이 맥락에서 자주 인용하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검은 법복을 입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교수, 성직자, 법관이라는 사실입니다. 사회가 가장 혼탁한 순간에도 이들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사회의 권한위임입니다. 한국에서 법관이나 성직자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학교를 중심으로 양심이 살아 있다면 아마도 이것은 독고교수님의 덕택일 겁니다.
둘째는 교육에서는 탁월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서서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독고교수님은 능력이 아니라 학벌에 의해서 기회가 제한되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으시고 아주대학교 학생들에게 항상 너희들부터 학벌을 깨 부시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우뚝 서야한다고 독려하셨습니다. 독려의 방법은 말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시는 것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저는 초기에는 독고교수님의 말씀에 반신반의 하였습니다. 경기고 서울대 와튼스쿨의 학벌을 가지신 분이 학벌을 타파하고 능력에 따라서 기회를 주자고 주장한다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분이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저런 이야기를 할까? 당신은 학벌에 대한 것을 다 누리고 살만큼 살아서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그와 같은 의심을 가진 적이 있으나 그런 말씀을 하시고 다니시는 원동력이 결국 학벌의 감옥에 갇혀 기도 펴지 못하고 시들어 갈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젊은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고 진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학벌하나로 평생을 먹고사는 학벌에 대한 랜트시킹(rent seeking)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아주대학생과 같은 젊고 패기만만한 열정을 가진 청년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 수조차도 없다는 안타까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독고교수님으로부터 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내리사랑으로 학벌의 감옥에서 구해낼야 할 뿐 아니라 구해낸 학생들에게 삶의 나침반을 보여주여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학벌로 랜트시킹하며 호의호식을 해 온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독고교수님의 최고의 마음의 적이었을 겁니다. 이와 같은 학생에 대한 사랑은 교권보다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실행방안으로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최초로 교수의 강의평가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교권이 바위처럼 단단한 사회에 교수들로부터 많은 저항을 야기했고 다양한 흠해와 핍박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많은 싸움과 핍박에도 독고교수님은 대학에서 항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약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라는 믿음이 제가 전수받은 두 번째 가치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배우다보면 누구나 미래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얻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일찍부터 대학에서 학습이 전수되는 방향을 읽으시고 무경계교육의 이념을 설파하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육이 한곳에서 머물지 않고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사회에 대한 이상형이 무경계교육의 이념입니다. 요즈음 많은 대학과 기관들이 몰입하고 있는 평생교육이란 것도 보면 무경계교육이념의 한 산물입니다.
아주대학교와 경영대학의 현금상자로 자리 잡은 사이버엠비에이는 이와 같은 교육의 방향에 대한 통찰력의 산물입니다. 또한 교수나 학생이나 마음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학습해서 자신의 경계를 확장시켜나갈 때 다른 사람을 시샘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10년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독고교수님은 10년을 앞서서 세월을 보시고 살아오신 분이라는 것이 이제야 많은 사람들이 꺠달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좋은 대학에 대한 생각은 아주대학교의 척박한 토양에서 발아되기에는 너무 큰 씨앗이었다고 그래서 씨앗이 충분히 발아되지 못하고 고사당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독고교수님의 철학과 믿음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이라는 토양을 넘어 이미 저를 비롯한 많은 교수와 제자들의 마음속에 정신으로 살아남아서 그분들의 사는 세상에서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독고교수님은 “한국의 좋은 대학”이라는 멋진 교양곡을 작곡하시고 지금까지 지휘하고 계신 장본인입니다. 이 교향곡은 독고교수님과는 독립적으로 제자들과 후배교수들의 마음과 마음속에서 공감을 일으키며 영원히 살아서 울려 퍼질 것입니다.
독고교수님은 이와 같은 좋은 대학의 사명을 선구하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박해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학교에 대한 신념을 한 번도 포기하지지 않고 영원히 힘없는 학생들의 친구로 남아계셨습니다. 독고교수님은 정말 시대의 스승님이십니다. 독고교수님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맹자가 고자장에서 쓴 말이 생각납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며,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너무 지금까지 독고교수님의 가르침 덕택에 너무 과분한 사랑과 혜택을 받고 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13년 6월 22일
윤정구
PS: 대학이 학생과 교수를 대상으로 자행하고 있는 갑질
http://www.nlearners.org/gnuboard4/bbs/board.php?bo_table=nlearning&wr_id=510&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