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역을 갑질의 관심영역으로 주의깊게 관심을 두는 이유는 대형병원을 다녀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이미 대부분의 대형병원에서는 사용자로서 환자경험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수없이 병원을 많이 다녀봤지만 집 근처의 개업 의사분을 제외하고 큰 병원의 의사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거나 눈을 맞춘 의사가 없었다. 큰 병원에서는 이미 환자경험을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어졌다. 환자경험이란 환자가 고통받는 인간으로 대접받는 경험을 말한다. 환자경험이 실종되었다는 것은 환자가 더 이상 고통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의식적으로야 그러지 않겠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고장난 물건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갑질은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주는 물건이나 도구로 생각할 때 일어난다. 도구로서 주인이 시키는대로 목적을 달성하도록 잘 이용되어야 하는데 이 도구가 사람임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갑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망치를 예로 들면 망치는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망치가 존재로서 드러나는 순간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대신 손을 내리쳤거나 못을 겨냥했지만 여기를 내리치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내리쳤을 때이다. 병원이 위험한 이유는 이 전문성 때문에 이 도구관계가 어느 정도 용인되고 수용된다는 점이다.

병원은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있으면 그대로 사고로 이어진다. 또한 병원에서 있을 수 있는 사고는 대부분 생명과 직결된다. 이처럼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데 이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어떤 지위가 있는 의사 밑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의 조그만 잘못이라도 한다면 이 잘못은 모두 환자의 생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문제는 갑질하는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 뒤에 숨어서 자신의 갑질을 정당화시키는데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병원을 완벽하게는 모르지만 이 모든 것들의 가장 정수를 꼽을 수 있는 영역은 외과의사들의 수술방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형병원에서 환자가 고통받는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병원을 운영에 관련이 있는 모든 종업원들이 비슷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갑질이던 병원의 갑질이던 갑질의 시작은 항상 조직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서 시작된다. 병원의 정점은 의사들일 것이다.

또한 병원은 군대와 가장 닮아 있다. 권위가 있는 의사를 중심으로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돌아간다. 또한 고도의 전문성 때문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외부인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군대, 병원, 감옥, 정신병동 등을 일반사회와 닫혀서 내밀하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조직 섬 Total Institution이라고 규정하고 연구되어 왔다. 조직 섬이라는 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무인도처럼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사회와 고립된 병원, 군대, 감옥, 정신병원에서 특히 갑질이 만연할 수 있는 이유이다. 병원은 다른 조직섬들과는 달리 전문성이라는 담장 하나를 더 두르고 있어서 더 고도의 갑질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이다.

세상은 급격하게 모든 것이 열려져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일반사회에서 사건으로 터져서 파헤쳐지기전에 병원 스스로 먼저 갑질을 근절하는 행동을 통해 환자경험을 살려내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이런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대형병원이라 하더라도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형병원들의 환자경험을 평가해서 이들의 의료등급을 분류하려는 노력을 심평원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도 대단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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