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1: 자녀는 부모가 거울이다.

가설 2: 부모는 자녀가 거울이다.

가설 1은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라기 때문에 자식이 어떻게 성장했는 지를 보면 보모를 알 수 있다는 가설이다. 가설 1은 부모가 아이의 스승으로 아이 성장의 주도권을 가진다는 가설이다.

가설 2는 정반대다. 오히려 부모는 자식을 보고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가설이다. 자식을 봐가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가설이다. 가설 2는 아이가 부모의 스승이라고 보는 가설이다.

가설 1은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한 공직 후보자가 주장해서 유명해진 가설이다. 가설 1은 자식에 대한 동일성 가설이다. 자식이 잘 성장했다면 동일성의 주체인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람이고 자식이 잘 못 성장했으면 동질성의 주체인 부모가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라는 가설이다. 부모는 잘되거나 잘못되거나 자식의 성장에 무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이 가설을 주장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식이 번듯하게 잘 성장했을 때는 이 가설을 주장할 개연성이 있지만 자식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경우는 이 가설을 회피할 개연성이 높다. 회피하지 않아도 자식을 번듯하게 키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도구로 이용될 개연성도 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후보자도 4년 전에 이 발언으로 자식 농사를 망친 부모를 비난했을 때는 자신의 자식이 가진 문제가 불거질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식의 학폭 문제가 밝혀진 지금 후보자는 본인이 그 당시 좀 참지 못하고 왜 이런 말을 해서 지금 문제가 된 자식의 부메랑으로 뭇매를 맞고 있을까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가설 2는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부모들이 주장하는 가설이다. 최근에 학회에서는 진성부모를 열망하는 분들이 모여 이 가설에 기반해 "아이는 부모의 스승이다(가제)"의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가설 2는 자녀는 부모가 가진 욕망이나 열망을 채우기 위해 유전적 동질성으로 포획된 포획물이 아니라 주체적 타자라는 입장이다. 자녀를 독립된 타자로 생각하고 자녀가 가진 고통을 자녀가 딛고 스스로 일어서게 도와주는 과정에서 자녀에게 가르쳐 주는 것보다 부모는 자녀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입장이다.

가설 2는 집에 장애아가 있거나 남들이 모르는 아픈 손가락이 있는 부모들을 보면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런 집의 부모는 다른 집의 부모보다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픔에 대한 긍휼의 크기도 크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못했겠지만 어느 순간 자녀가 자신이 개입해서 해결할 수 없는 고유한 아픔을 가지고 있고 이 아픔은 자녀가 스스로 감내해가야 하고, 최소한의 근력을 만들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유전자를 넘겨주었지만 자식은 이런 유전적 동질성으로 포획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설 2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자녀들은 부모가 성장하던 시기와는 다른 시기와 다른 장소에서 성장한다. 극단적으로 장애아나 타고난 망나니가 아니라도 모든 아이는 부모가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고통을 아이가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삶의 주체적 근력이 형성되지 않는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야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개입해줄 수 있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자녀가 독립적인 주체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가설 2는 우리 학회 부모의 가설이기도 하지만 타자철학의 대부인 레비나스와 분석심리학의 대부 융의 가설이기도 하다. 레비나스는 아이는 부모가 성공 모형으로 삼는 모범생이라는 틀에 영원히 포획될 수 없는 타자라고 규정하고 포획하려는 시도를 하면 할 수록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망가진다고 설명한다. 융은 부모가 아이를 자신이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삶"이라는 그늘을 극복해줄 수 있는 대리인이자 영웅으로 생각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식과 부모와의 비극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가설 1은 소위 대한민국에서 자식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이 주장하고 싶은 가설이다. 부모 스스로도 유전자 복권(머리, 재능, 외모, 건강, 부유한 부모)의 행운을 받고 태어난 부모들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부모 자식 관계에 진화론적 가설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들을 제외하고는 진실이 성립하지 않는 틀린 가설이다.

가설 2는 어떨까?

이 가설을 시도한 부모들의 표본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서 아직 검증까지는 힘들지만 이 가설을 믿고 검증해보려는 부모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 사교육과 의대 열풍도 사그러질 것이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의 근원적 혁신을 요구하는 부모의 운동도 시작될 것이다.

가설 2가 검증된다면 대한민국에서 유전자 복권을 탄 상위 1%를 제외한 사람들도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려는 욕망이 생길 것이다. 결혼과 아이를 기피하는 이유는 가설 1의 근거인 결혼과 아이가 가져오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가설 1이 기각되고 가설 2가 검증되어 진리로 받아들여 진다면 새로운 대한민국에 신생아들이 넘쳐나는 뉴노멀이 전개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유전자 복권이나 재력이 없어도 아이를 잘 길러낼 수 있다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제거되어 인구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