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표식인 의식에 삶의 목적이 상실된 상태를 혼(얼) 빠진 상태로 규정한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혼이 빠지면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혼 빠진 사람들은 이런 잘못된 지각에 기반해 각종 이상한 행동에 몰두하기 시작한다고 경고한다.

대한민국은 혼 빠진 사람들이 여기 저기 난동을 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느 날부터 국민 각자가 나름의 호신용 무기를 준비해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각자도생을 위한 호신용 무기에 의존해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나라나 사회가 더 이상 이런 불안을 이길 수 있는 울타리가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어떻게 하다 지금과 같은 각자도생 사회로 전락했을까?

개인들이 혼이 빠져 정신없이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혼 빠진 사람들이 사회의 운영과 관련한 권력과 지위와 돈을 장악하고 있으면 사회도 혼 빠진 사회로 전락한다. 이들이 혼 빠진 상태를 정상으로 규정하면 사회적 환경도 그렇게 변화한다. 혼 빠진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혼이 있는 사람들이 혼 빠진 사람들에게 혼 빠진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혼 빠진 사람들이 구성한 사회적 환경의 압력이 거세지면 혼이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생물학적 삶은 곤경을 겪게 된다. 이 곤경이 강해지면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 남기 위해 유전압이 거세지고 결국 유전 압력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겨 결국 유전적으로도 혼빠짐을 지지하는 유전자의 구성이 정상적 유전자로 유전되기 시작한다. 유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모든 개인들이 혼 빠진 개인이 된다. 완전한 비정상이 완전한 정상으로 규정된다. 이처럼 리더라고 명명된 강력한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된 혼 빠짐이 사회 전체로 전염되고 전이되면 사회는 적자생존이 유일한 규범이 되는 동물왕국으로 전락한다.

동물의 왕국은 각자도생의 사회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도 최소한 유전자가 공유되는 가족에서는 서로 생존을 위해 가장 힘센 우두머리를 정점으로 서로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참극이 벌어진다. 각자도생의 먹이 사슬 정점에 있는 사자는 먹이가 풍부할 때는 같이 모여서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게 살기도 하지만 개인의 생존이 위협 받는 상황에 도달하면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협동의 원리도 무너지고 혼자만 살아남자는 각자도생의 원리에 따른다.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의 유전자에 따라 숫사자는 자신의 자식을 잡아 먹는다. 혼빠진 사회는 생존의 위기를 만나면 그나마 친족끼리 모여 사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협동의 원리를 무너트리고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규범으로 삼는 사회로 전락한다.

심지어 동물들도 같이 모여 살기 위해 따르는 협동조차도 무너져 각자도생의 규범만이 살아 있는 사회는 더 이상 사회가 아니다.

퍼듀대학의 진화생물학자 William Muir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유일한 원리가 될 경우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 지를 시뮬레이션 하는 실험을 했다. 소위 수퍼치킨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나름의 사회인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닭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그냥 평범한 닭들의 집합이고 다른 한 그룹은 수퍼치킨 그룹이다. 수퍼치킨 그룹은 각 닭장에서 가장 알을 많이 낳는 닭을 선발해 구성했다. 닭들에게 생산성은 알의 갯수로 쉽게 추정되기 때문에 닭을 대상으로 생산성에 대한 실험을 기획한 것이다. 무어 교수는 이들이 6세대간의 진화과정을 지켜보았다. 닭의 1세대는 대개 6개월로 알려져 있다. 수퍼치킨 그룹의 닭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가장 뛰어난 개체만을 골라서 번식시켰다. 6세대가 지난 후 실험 결과는 어떠했을까?

평범한 닭들의 집단은 그냥 평범했다. 알도 잘 낳고 닭들도 대부분 건강했다. 문제는 수퍼치킨 집단이다. 이 집단의 닭들은 마지막 6세대에 이르러서는 최고로 힘이 쎈 닭 세마리만 남기고 다 사망했다. 그냥 닭들에게 알려진 pecking order(모이를 쪼아먹는 순위)에 따라 질서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힘 센 닭들이 비교적 약한 닭들을 죄다 쪼아서 죽여버렸다.

오래전에 사회가 작동되는 원리를 파악해서 사회계약론을 완성한 루소는 인간의 조상들이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지금의 인류가 가능하게 한 사회의 원형을 발전시켰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류가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한 사회를 만들어낸 기원은 모여서 협동을 해가며 적자생존을 위해 동물과 경쟁을 해가며 사냥을 하던 낮이 아니라 밤에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인류의 조상들은 어느 날부터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빙둘러 앉아서 서로를 지켜주는 울타리를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서 서로의 등을 적과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어가며 낮에 얻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더불어 오늘 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울타리를 중심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자 모여 앉았던 사람들은 공동의 운명을 상징하는 모닥불을 어떻게 지키고 키워 더 나은 내일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등을 지켜주던 울타리가 심리적 안정감을 체험하게 했고 심리적 안정감이 각자도생을 떠나 사회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이것을 전수시켜 지금의 인류를 만들어냈다.

울타리는 진화론이 주장하는 자연선택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하는 불행을 성공적으로 차단한 최고의 발명품이다. 처음 인간이 의존했던 울타리는 생물학적 DNA가 작동되는 혈연 등의 생물학적 울타리 였다. 하지만 인간은 혈연적 친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미래에 대한 서약을 통해 만든 가치와 사명의 울타리를 만들어냈다. 혈연적 울타리를 넘어서는 사명과 가치의 울타리가 구축되자 자연선택 및 진화론과는 독립적으로 인간들이 주체가 되는 공동체의 공진화를 위한 운동장이 만들어졌다.

낮에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동물과 경쟁하고 협동하지만 밤이 되어 피워 놓은 모닥불은 인간에게 협업이라는 위대한 사회 구성의 원리를 선물했다. 인간은 불을 기술적으로 발전시켜 증기기관, 반도체와 같은 발명품을 만들었지만 불은 밤에 모인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게 해주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결해주는 문화적 화두를 담은 제 삼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다. 불은 기술적 진보도 만들었지만 인간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낸 원천이다.

한 마디로 불은 원시 부족이 공유한 공동의 운명을 상징했다. 불이 상징하는 공동 운명을 약속으로 전개하고 이 약속을 협업으로 실현켜 울타리 안을 채울 수 있는 문화도 만들고 기술도 만들어냈다.

불을 통해 기술과 문화를 만들어낸 인간의 방식은 협동(Cooperation)이 아니라 협업(Collaboration)이다. 협업이란 자신들의 존재를 떠나 존재하는 제 3의 실체인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고 이 실체를 실현하기 동물 수준에서도 가능한 협동을 넘어서는 힘이다.

협업과는 달리 협동에는 서로간 개인 이득만 존재하고 공동의 목적이 없다. 진화론자들은 자연과 동물에서 발견되는 협동의 원형을 들어가며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지만 이것은 진화론자들의 학문적 왜곡일 뿐이다. 동물은 자신의 종족보전이라는 단일한 의도를 가지고 이기적으로 협동하지만 인간은 의도를 미래의 한 곳으로 집중시켜 공동의 의도를 만들 수 있다. 협동은 인간 뿐 아니라 자연 동물에서도 보편적 현상이다.

인간에게 협업이 전제되지 못한 협동은 힘 센 대상을 중심으로 정치적 거래일 뿐이다. 이런 협업이 없는 협동은 동물수준의 약육강식의 세상을 재현한다. 인간 조직에서도 협업이 없이 협동의 원리만 가동되고 있다면 이 조직은 이미 조직정치로 갈기 갈기 찢어진 조직이다. 협동은 개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전략이기 때문에 항상 그 대상이 많이 가진 권력자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서로의 이득을 챙기기 위한 협동은 협상과 권력투쟁을 재생산한다. 협동이 만들어낸 사회적 거버넌스가 피라밋 계층제다.

우리 사회가 혼 빠진 각자도생의 사회로 전락한 것은 루소가 이야기한 사회를 처음 만든 조상들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울타리를 통한 심리적 유대와 모닥불이 상징하는 공동운명체인 인간의 미래를 숭고하게 만들어주는 공유된 목적 및 철학과 이 목적과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만이 협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울타리도 무너지고 사회의 울타리도 무너지고 심지어 가족의 울타리도 무너진 지금 우리가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삼단봉 등 호신용 도구로 중 무장하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고 노심초사해가며 각자도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지독한 근시였던 골리앗이 두려움에 떨며 중무장하고 사방팔방에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자신 있으면 자신에게 덤벼보라고 소리치고 있는 형국이다. 저주의 춤판이다.

같이 모여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협동도 무너지고 골리앗 방식의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은 그나마 있던 울타리도 모두 부숴가며 종착역를 향해 달리는 탈주한 설국열차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해체가 가속화되었다는 징조다. 의식에서 목적이 사라진 혼(얼)빠진 삶에 대한 니체의 경고와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가르쳐 준 공동 운명체로서의 사회를 만든 인간의 숭고함을 잊고 지낸 댓가를 치루고 있는 셈이다. 혼과 정신이 제대로 된 리더가 사라진 나라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