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자들은 동물들도 생존을 위한 협동 과정에서 인간세계와 비슷한 결과물들을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협동을 예로 들어 인간의 진화와 동물의 진화를 동일시한다. 진화론자들이 대표적 협동의 사례로 드는 것이 가우디 성당과 비슷한 모습으로 쌓아 올린 개미집이다.

문제는 이런 가우디 성당을 닮은 개미집을 똑 같은 개미들이 모여 다시 만들라고 주문하면 개미들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인간들은 가우디 성당의 설계도를 입수하면 같은 성당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이 세운 가우디 성당을 세우기 위해 누군가는 먼저 설계도를 만들었다. 설계도라는 초월적 제삼의 실체를 만들 수 있는 인간만이 인간세상을 동물로부터 독립적으로 공진화하도록 만들었다.

각자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제삼의 실체>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협업이 가능하고 협업이 가능해야 인류가 문화를 만든 것처럼 미래를 만들어낸다. 동물도 각자의 생존을 위해 협동할 수 있고 오랫동안 협동한 결과로 가우디 성당과 비슷한 개미집을 만들 수 있지만 인간만이 <제삼의 실체>에 미래를 투영하여 협업한다. 인간만이 선도적으로 만들어낸 제삼의 실체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협업을 통해 미래를 창조한다.

진화론자들은 협업(Collaboration)과 협동(Cooperation)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협동이란 각자의 이해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각자가 소유한 여유자원을 이용해서 서로 돕는 행위를 의미한다. 협동을 움직이는 근원적 동기는 각자의 이해관심을 충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심을 총족시킬 수 없다면 자발적으로 나서서 상대를 도와줄 이유가 없다.

협업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언어와 상징으로 제삼의 실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할 수 있는 것도 인간만 가능하다. 이 미래에 대한 약속의 실체를 믿고 여기에 실현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옷을 입혀 놓은 것이 비전이다. 각자 구성원을 떠나 존재하는 제 삼의 실체인 비전을 믿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여해서 이 비전을 실현 시키는 모습이 협업이다. 협업이 가능한 것은 제 삼의 실체인 비전의 실체를 믿고 이 비전이 모든 가능한 활동을 최적화 하는 방식으로 조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미래에 대해 말과 언어와 상징으로 약속하고 이 약속에 실체를 부여해서 실체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이 바로 협동과 구별되는 인간의 협업능력이다.

인간만 협업을 통해 모두가 공진화할 수 있는 미래의 플랫폼을 만든다. 인간만이 공동목적에 대한 약속을 제삼의 실체로 만들어낸다. 이 공동 목적의 이 약속을 실현시키기 위해 참여자가 고유하게 기여하는 것만 협업이다. 협동은 서로간 직접적인 교류를 전제로 하지만 협업에서 사람 대 사람 간의 직접적 교류는 이차적이다. 일차적 교류는구성원과 제 삼의 실체로 창조된 공동목적과의 교류다. 협업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는 목적에 대한 교류에 비해 부차적이다. 협업하기 위해 참여자들이 누구인지를 사전적으로 친밀하게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협동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해 협동하지만 인간은 생존을 넘어 번성을 위해 협업을 하고 협업을 통해 협동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협업을 통해 미래를 실현하고 이 실현된 미래에 대한 긍정적 체험을 통해 개인간 신뢰와 협동을 발전시킨다. 인간들은 성공적인 협업의 결과를 통해 협동을 만들어낸다.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지 못한 협동은 모두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정치적 질서를 재생한다. 동물 세계나 자연 세계처럼 힘의 불균형이 존재할 경우 가장 우선 시 되는 협동의 형태는 가장 힘 센 동물의 생존을 극대화 시키는 협동의 피라미드가 출현한다. 인간 세계에서도 피라밋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은 가장 힘 센 사람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쪽으로 협동과 협동이 조직된 것이다.

상징과 언어를 통해 제 삼의 추상적 실체를 만들어내고 이 추상적 실체에 대한 믿음을 통해 현실적 실체의 지위로 만들어내는 인간만이 협업을 할 수 있고 인간의 협업능력이 지금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문명을 만들어내는 순간 자연 선택에서 벗어나 문화에 대한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받아가며 문명을 진화시켜왔다. 제삼의 실체를 매개로 협업하고 협업의 성공을 통해 협동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동물의 협동할 수 있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를 공유할 수 있는 혈족이라는 범주 안에서다. 동물과 식물 세계에서 다른 혈족이 서로 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두 혈족의 생존에 대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지 생존 이상의 목적에 대한 제삼의 실체가 이들을 조율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만이 진화를 초월해 공진화하는 미래를 제삼의 실체로 상정하고 의도적으로 협업해 실현해낸다. 협업을 통한 공진화라는 인간세상의 창조원리를 진화론의 협동과 각자도생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인간의 능력을 지독하게 동물수준으로 폄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