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Governance)란 조직이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결정된 내용을 누가 어떻게 집행하는지의 방식을 규정하고 규율하는 것을 말한다.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각각의 과정에서 어떤 주체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가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모든 조직은 자신들이 풀어야 할 고유한 문제에 대한 정의와 문제해결 방식을 가지고 있다.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명시적으로 정의된 것은 거버넌스라고 하고 묵시적으로 정의된 것은 문화라고 부른다.

물론 거버넌스에 지배주주의 지분구조가 중요하지만 지분구조로 거버넌스를 이해하는 시도는 코끼리가 장님을 만지고 코끼리에 대해 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신주자유주의 시대의 지배적 거버넌스와 지금과 같은 위기와 변화가 상수가 된 초뷰카 시대의 거버넌스는 다르다. 시대에 맞는 거버넌스를 채용하거나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은 회사가 시대적 지평 속에 토굴을 파고 싱크홀이 되어 사라지고 있음을 예측하는 중요한 변수다. 제대로 된 거버넌스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그 회사가 시대의 지평에서 비즈니스를 해도 되는 제대로 된 기업인지가 인준된다. 이 인준에 따라 고객을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존재해도 된다는 정당성의 라이센스를 발급해준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경기가 붐을 일으켜 양적 성장이 가능한 시대였다. 경영진의 책무는 구성원들을 정해진 전략에 정렬시켜 일사분란하게 동원할 수 있는지였다. 이 당시 경영진들은 정열에 방해되는 생각을 종업원들이 회사 안으로 가져오지 못하도록 "몸만 가져와서 시키는대로 일하라"고 주문했다. 실행을 위해 종업원을 동기화시키는 방식은 그레이하운드 토너먼트 경주방식이었다. 앞에다 목표를 달성하면 가져갈 수 있는 고기의 샘플을 달아 놓고 무한경주를 시키는 방식이다. 경주에서 뒤쳐지거나 달리지 못하면 가차 없이 해고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의 심리적 계약은 회사의 비전에 맞춰 구성원의 비전을 어떻게 정렬시키는지였다. 회사의 성장이 구성원의 성장을 결정한다고 가정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경기가 좋았다. 성장 공간이 있어서 큰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여기에 멋진 옷을 입혀서 비전이라고 제시하고 종업원을 여기에 일사불란하게 정렬시키기만 하면 성장과 성과의 과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심리적 계약에는 회사에 충성하던지 못하겠으면 회사를 떠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절이 싫으면 무조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가 L자 불경기로 심화되어 기업의 우선 과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속가능성으로 바뀌었고 한편으로는 AI와 로봇기술이 고도화되어 전문가 인력이 대체가능성을 앞두고 있는 초뷰카 시대이다. 초뷰카 시대의 기업환경은 한 마디로 기술적 진보를 통한 가능성과 생존에 대한 의문이 동전의 양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거버넌스는 리더가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거나 다른 잘하는 회사를 벤치마킹해서라도 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시대에는 지속가능한 생존의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가 나와서 먼저 답을 구성해내고 이 구성된 답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게 설득할 수 있다면 이것이 답이 되는 세상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거버넌스가 답을 정하는 리더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집행하는 피라미드 형태라면 답이 정해지지 않은 초뷰카 시대 거버넌스는 역피라미드 형인 플랫폼 거버넌스다. 플랫폼 거버넌스에서는 미래의 답에 해당하는 공유된 목적과 공유된 가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고객에게 소구하는지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라진다. 회사가 제안한 목적과 가치는 고객이 가진 고통과 아픔을 왜 자신들이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는지 이것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해결해주겠는지에 대한 제안이다.

초뷰카 시대 회사는 고객에게 약속한 공유된 목적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 운동장을 만들고 종업원은 약속한 목적과 가치를 실현시키는 운동장의 주전 선수로 임명한다. 회사의 경영진은 운동장을 구성원들이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설계해준다. 경영진의 역할은 선수들이 잘 뛸 수 있게 뒤에서 응원해주거나, 운동장 안에 정치적 토굴이 있으면 선수들이 뛰다 넘어지지 않도록 메워주거나, 회사가 약속한 목적과 가치를 통해 운동장의 울타리를 고쳐주는 사람이다. 물론 도출한 성과가 있으면 이에 대해 사후적으로 공정하게 정산해주는지 감리 역할도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풍미하던 피라미드 가버넌스가 초뷰카 시대 플랫폼 거버넌스로 전환되는 것에 맞춰 글로벌 우량기업들은 발 빠르게 심리적 계약을 수정했다.

이들은 MZ 세대에게 더 이상 회사의 비전과 너희의 비전을 정렬시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회사의 성장이 너희의 성장이다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너희의 성장을 통해 회사를 성장시켜 달라고 주문한다. 구체적으로 회사가 제공한 플랫폼을 이용해서 너희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보여달라고 주문한다.

회사 성장을 위해 직원을 도구로 삼는 것을 넘어서 직원 성장을 위해 회사가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 계약이다. 새로운 심리적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구성원들은 플랫폼이 돌아가는 원칙과 여기서 선수로 뛰기 위해 기본적으로 훈련해야 할 전문적 기술들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또한 플랫폼 지평에서 요구되는 것을 넘어서 회사가 제공한 가치와 목적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존재우위를 구현할 수 있는 가치와 목적을 세우고 이것을 실현시킬 것을 요구한다. 회사는 구성원들이 고유성을 가지고 실현시킨 성공을 모듈화 해서 다른 모듈과 레벨링 하거나 서로 엮어서 더 높은 곳에 플랫폼을 공진화시킨다.

플랫폼 거버넌스가 돌아가는 이유는 종업원들이 회사의 운동장에서 회사가 정한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전문 주전선수로 서로 협업하며 일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거버넌스 구조가 열림, 연결, 공유, 협업이라는 시대적 지평을 반영한 가장 민주적 거버넌스다. 피라미드 거버넌스는 아무리 투명하게 운영해도 민주적이 될 수 없다.

플랫폼 거버넌스가 돌아가기 위해서 회사와 구성원은 목적과 가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공유된 가치와 믿음이 없는 신자유주의 시대 피라미드 거버넌스에 따라 경영하는 회사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면 회사에 수없이 많은 사공이나 사기꾼들을 끌어들여 회사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거나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풍지박산 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카카오의 모습이다.

이런 플랫폼 거버넌스를 운용하는 회사에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피라미드 거버넌스를 이용한다. 문제가 루틴한 문제이거나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할 때는 리더가 나서서 일사분란하게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구조를 병행해서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