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7-30 12:02
[N.Learning] 프로스트의 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사회 선진시민에 대한 정의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1,165  
프로스트의 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사회
선진시민에 대한 정의
1977년 비평형 열역학에서 소산구조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리야 로마노비치 프리고진(Ilya Romanovich Prigogine)이 주창한 경계의 역설(paradox of boundary)이란 평소 통용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하고 보편적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의 내재적 경계를 정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고 자기 조직화를 위한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원리다. 프리고진은 분자구조를 가지는 모든 존재는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경계>가 내재화되어 있을 때만 자기조직화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밝혔다.
국가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이 경계 내에서 참여자들이 목적을 세우고 자기조직화가 가능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경계가 없는 도시는 자족적으로 진화할 방법이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경계가 없다면 적절한 활동 범위와 이 활동의 수혜자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 몸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기관들이나 분자들이 이 경계의 범위 내에서 자기조직화 하는 방식으로 신진대사를 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성장 시키거나 축소한다. 모든 번성하는 주체의 공통점은 자기 행동을 내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이고 엄격한 경계를 내재화해 의미 있는 질서와 삶의 에너지를 만든다는 점이다.
경계는 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경계도 있지만 인간 행동의 기준들을 자율적으로 내재화해서 행동 경계를 정하는 내재적 경계도 있다. 행동의 경계를 정하는 내재화된 경계의 성격에 따라 허용되는 자율과 자유의 범위가 결정된다. 내재화된 자율적 경계로 질서가 조직되는 사회가 선진 시민사회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경계로 법, 상식, 가치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법의 경계는 사회질서의 가장 널널한 기준이고 그 안에 더 엄격한 울타리는 상식의 울타리이다. 최고로 엄격한 경계는 상식의 울타리를 넘어 가치와 철학의 울타리다. 가장 널널한 기준인 법의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경찰과 감시 비용이 국가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후진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의 기준을 지키고 상당수의 사람이 상식의 울타리를 지키며 사는 사회는 중진국이다. 상식의 울타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법에 위배되지 않아도 자신이 결정이 상대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면 이해충돌의 방지를 위해서 자제하며 사는 경우다. 상식의 기준이 지켜지지 않으면 모든 계약 자체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거래비용이 급등한다. 이런 사회는 권력을 가진 카르텔과 전관예우 세력 등의 핵심 내집단과 연줄이 없으면 거래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는 거래비용이 일반 생산비용보다 더 큰 고비용 사회가 된다. 이런 비효율적 사회에서 상식을 지켜가며 사는 서민일수록 살기가 팍팍하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같은 중진국이 겪는 고통이다.
많은 사람들이 법을 지키고, 상식에 따라 이해충돌을 위배하지 않고 살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상식의 울타리 안에 자신만의 가치기준을 설정하고 산다면 선진국이다. 선진국이란 가치기준을 내재적 질서의 준거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를 의미한다.
법, 상식의 경계를 넘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는 가치기준을 설정하고 산다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치기준을 선택하지 않고 편하게 살았을 때 생기는 기회비용 손실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의 울타리를 가진 사람들이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만들어낸 더 나은 미래를 통해 더 높은 곳에 더 공의로운 운동장이 만들어진 사회가 선진국이다. 부모로부터 유전자 복권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들도 공의 운동장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주인으로 생생지락해가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프리고진이 예언한 선진 시민 사회의 모습은 대부분의 구성원이 가치의 기준을 설정하고 질서를 자기조직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다.
명품백 뇌물 사건에 대한 판단에 많은 국민들이 비난이 치솟자 인권위원회가 자신들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해명을 내놓았다. 상식 기준을 지키는 이해충돌의 소지는 있지만 규제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무혐위를 내렸다는 해명이다. 이런 판결과 해명은 선진국을 열망하며 세 가지 울타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가치의 기준을 수호하라고 만들어 놓은 인권위가 앞장서서 국민의 수준을 가장 낮은 수준인 법 아래로 끌어내린 역사적 사건이다.
문득 인권위 위원들은 자유와 미래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즐겨 읽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스트는 이 시를 법의 울타리를 초월하고, 상식이 규제하는 이해충돌의 울타리도 초월한 사람들 앞에 놓여있는 미래를 위한 선택지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지었다. 법의 경계도 넘어서고 상식의 경계도 넘어선 사람들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는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만들어낸 미래다. 미래는 법도 초월하고 상식도 초월한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잃을 수 있는 현재의 기회비용을 희생해 만들어낸 운동장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정도의 수준의 국가를 만들어낸 것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자신의 기회비용을 희생해가며 가지 않아야 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진성리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 기술자나 카르텔의 대명사 전관 엘리트가 간 길이 아닌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진성리더가 전해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해충돌을 어겨가며 자신들 이득을 챙기는 카르텔 세력과 법을 어기고도 처벌 받지 않는 방법을 아는 법 기술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가치 울타리가 무너져 나라가 직전의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가지 않은 길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여서 두 길을 모두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오래도록 서서 한 길이 덤불 사이로 굽어지는 곳까지
멀리, 저 멀리까지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길로 나아갔습니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더 나은 길처럼 보였습니다.
풀이 무성하고 닳지 않은 길이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두 길은 똑같이 닳을 것입니다.
까맣게 디딘 자국 하나 없는 낙엽 아래로
두 길은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아, 다른 길은 후일을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길이란 길과 이어져 있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겠죠.
까마득한 예전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로 나아갔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프로스트의 시를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진성리더다.
진성리더가 많아지는 선진 시민 사회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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