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민주화란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공동으로 설정한 목적에 대해 자신의 고유한 역량으로 기여하여 집단성과를 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조직의 구성원이 총 N명이라면 N명 모두가 리더가 되는 상태다. 리더십이 민주화된 상태에서 전통적 리더는 N-1명의 구성원들이 모두가 나머지 구성원들을 향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정자가 되거나 이들이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운동장을 설계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리더십의 민주화는 지금까지 알려진 리더십 중 가장 집단적으로 성숙도에 도달한 단계다.

리더십이 민주화되었다는 것은 노자가 인용한 요순시대의 백성들처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하고 먹고 쉬는 무의지치(無爲之治)가 달성된 것이다. 무의지치는 백성들이 모두가 주인이 되어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지도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모를 정도로 리더십을 잘 발휘하는 상태이다. 요순임금이 나라를 이런 운동장으로 설계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순시대처럼 리더십이 민주화될 정도로 성숙된다면 리더십이라는 용어자체가 사라지는 세상이 된다.

사람들은 협동(cooperation)과 협업(collaboration)을 구별하지 않고 쓰지만 안타깝게도 협동은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역행하는 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한 개념이다. 조직을 정치 집단으로 만드는 주범이 될 수 있다. 반면 협업은 리더십의 민주화 상태를 만들어내는 끌개이다. 역설적으로 조직에서 협동에 대한 강요는 조직을 힘 있는 리더 중심으로 정치화해서 구성원 간 신뢰와 화합을 해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 협업을 통해 얻어진 성과에 대한 공정한 배분은 참여자들을 다음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자발적 협동만이 조직의 신뢰와 화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왜 그럴까?

협동이란 자신의 이해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유자원을 이용해서 서로 돕는 행위를 의미한다. 협동을 움직이는 근원적 동기는 자신의 이해관심을 충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심을 총족시킬 수 없다면 자발적으로 나서서 돕지는 않는다. 자신의 이득과 상관없이 상대를 돕는 행위는 자선이지 협동은 아니다.

협동이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은 시장이다. 내가 쌀을 많이 가지고 있고 상대가 채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여분의 쌀과 채소를 거래해서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태를 만들려는 욕심이 생길 것이다. 그냥 거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얼마의 쌀을 얼마의 채소로 바꿀 것인지 흥정을 해야 한다. 흥정이 깨진다면 자신의 욕구를 총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거래를 통해서 자신의 이해관심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매점매석을 통해 자신이 가진 쌀이나 채소의 가격을 부풀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결국 협동이라는 이름을 내걸지만 협동을 성립시키기 위한 흥정과정에 품질에 대해 속이는 일도 생기고 지배력을 늘리기 위한 각종 정치가 개입한다. 이런 협동을 실현시키기 위해 경험해야 하는 갈등과 불신과 정서적 소진이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반드시 써야 하는 거래비용이다. 협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흥정을 위한 정치와 거래비용이 소요된다.

조직 내에서의 거래도 마찬가지다. 한 조직이 비슷한 처지와 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면 이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돕는 협동행위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은 처지가 다르고 파워나 직책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직구성원들 사이에 권한의 차이가 있을 때 권한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협동은 조직을 정치조직으로 갈기갈기 찢어놓는 원흉이다.

조직 내에서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이 서로 협동할 경우 당연히 힘 있는 사람은 조금 영향력을 행사해주는 댓가로 힘없는 사람에게 많은 다른 것을 요구할 것이다. 아니면 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 평소에 많은 것을 해주었을 개연성이 높다. 다수의 구성원이 존재하는 조직에서 개인의 이해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인 협동의 메카니즘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대신 상대의 이해관심을 얼마나 들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성원들간 일련의 정치적 협상에서 합의가 성립되어야 한다. 조직은 정치적 협상 시장으로 전락되고 결국 파워에 따라 구성원 각자 협동의 가격이 정해진다. 조직은 완벽한 정치적 협상의 시장으로 전락한다.

힘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누가 더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이런 협동의 불균형이 서열화된다. 힘없는 사람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결국 자연스럽게 조직은 힘 있는 리더 중심으로 라인과 사일로가 만들어진다. 힘께나 있는 리더로부터 조그마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해야 하는 집단은 철저히 외집단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장동에 동원된 전관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모두 협동의 메커니즘에 따라 동원된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거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협동에 대한 거래비용이 뇌물로 제공된다. 이들 정치적 협동에서는 힘에 따라 뇌물가격이 결정된다. 공동의 선한 목적에 의해 개인의 탐욕이 제어되지 못하는 모든 협동은 조직을 부패와 정치의 온상으로 만드는 주범이다.

조직에서 신뢰와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협동이 아니라 협업이다. 협업은 공동의 운명을 구성하는 제 3의 매개체인 사명과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경우를 의미한다.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과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사명과 목적을 매개로 서로 교류하고 팀으로 일한다. 협업에서 최고의 리더자리는 서로가 약속한 목적과 가치에 의해 대체된다. 구성원들의 행동은 목적과 가치에 따라서 제어되지 리더의 정치력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는다. 실제 고전적 의미의 리더는 구성원들이 전문성을 기반으로 리더로 뛸 수 있도록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한다. 이들은 서번트 리더십을 통해 모든 참여구성원을 리더로 육성한다.

이 목적과 사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성공체험의 공유는 서로에 대해서 굳건한 신뢰와 화합의 파트너십을 형성한다. 이 파트너십도 결국은 사명을 실현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지 파트너십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협업의 성공이 서로간 파트너십인 자발적 협동의 기반을 만든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존재목적에 대해 믿음이 없는 조직에서 협동은 치명적 독이된다. 이런 조직에서 협동은 시대에 역행하는 리더십 원리를 만들어낸다. 조직을 힘 있는 리더 중심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존재목적에 대해 믿음이 있는 조직만 협업의 메카니즘을 동원하고 이 협업의 메카니즘이 모든 구성원들을 리더로 성숙시킨다. 협업이 제대로 실현되는 조직에서는 리더십에 대해 굳이 운운할 필요가 없다. 협업자체가 모든 참여자들의 리더십의 민주화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