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조용한 시골에서 산책도 하고 트래킹도 하면서 지내다 보니 내 삶 중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지 언제부터 행복해지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행복으로부터 멀어 진 것인 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어렸을 때 매일같이 시골에서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들로 강으로 산으로 돌아 다녀가면서 놀 때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놀 때는 가장 창의적으로 재미 있게 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항상 리더였다. 내 삶의 주인과 내 삶의 객체가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는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극치인 bliss를 느꼈던 것 같다.

공부도 하고 박사도 하고 학문적 기여도 하고 사회 경제적 지위가 축적되어가면서부터는 점점 행복의 정점 (bliss)에서 멀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포기하면 찾아올 것 같은 불안 때문에 오히려 이런 외재적인 것들을 축적하는데 더 몰입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으로는 더 나아졌지만 행복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졌다.

소크라테스에서 러셀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행복을 연구한 모든 철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는 행복은 어떤 축적된 명성이나 부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런 나의 존재를 인정해줄 때에 얻어진다는 것이다. 행복은 결국 삶의 주인공으로서 내재적 자아와 이 주인공의 명령을 집행하는 외재적 자아가 통합되어질 경우 얻을 수 있는 경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외재적 자아를 통해서 얻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즉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린이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답은 아니라는 쪽이다. 어린이의 삶을 가장 비슷하게 구현해 내기 위해 모든 것을 리셋하고 시골로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원적 처방은 아니다..

불행의 근원은 자신 삶의 주인공인 내면적 주체적 자아가 세상에 적응하고 경쟁해서 이겨야 된다는 세상의 논리에 설득 당한 외재적 자아에 밀려 둘 사이가 분절되기 시작한 것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하인이었던 외재적 자아가 세상의 논리를 교묘하게 빌려서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오히려 원래 주인을 착취하고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행해졌다는 것이다. 비극은 나의 삶에서 주인과 손님이 서로 바뀐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주체적 주인공으로서의 삶의 복원은 지금까지 삶을 모두 포기하고 어린이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회복되지 않는다. 세상의 주인공으로서의 삶의 목적을 복원하고 이 목적을 통해서 내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세상이 더 낫게 바꿔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삶 즉 사명이 있는 삶을 복원하는 것을 통해서만 행복의 복원도 가능해진다.

자신의 주체적 삶이 없는 즉 사명이 없는 삶은 아무리 큰 사회적 성취를 얻어도 노예의 삶에서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세상의 명령에 따라 사는 머슴이 주인 노릇을 하고 주인은 오히려 머슴으로 전락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복원하는 지가 행복의 열쇠일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세 가지 과정을 제안하고 싶다.

머슴으로 전락한 내면적 자신은 이미 성인 아이로 퇴화되었다. 남들에게 보이기 조차도 부끄러운 상태이고 어떤 때에는 존재감조차도 확인하기 힘든 상태이고 가끔 술에 만취하면 과거 이야기를 들먹이며 난동을 부리지만 평소에는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외재적 자아가 잘 통제하고 있기 대문에 사람들에게는 이런 추악한 모습이 보여지지는 않는다.

첫째, 이 성인 아이가 내는 내면의 울음 소리에 가끔은 귀를 내어주라는 것이다. 성인 아이에게 세상이 가르쳐준 대본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자기 말만 반복하지 말고 성인 아이가 웅얼거리며 하는 말이라도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절대로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이 성인 아이가 그간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 empathy를 가지고 그냥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용서해주고 허그해 주는 힐링의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 성인 아이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근원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 성인 아이를 성인아이의 입장에서 구해내는 compassion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empathy는 상대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허그해 주는 차원이라면 compassion은 이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 해서 같이 해결해내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둘은 차원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성인아이로 기형화된 자기 자신을 구해내는 작업인 self compassion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 대해서 compassion을 가지고 대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자신의 성인아이를 구해낸 self compassion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인 아이 문제를 이해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자기 자식을 자신의 성인 아이로 전가 시켜서 이 아이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워가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더 괴롭힘을 가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Compassion에 기반한 사랑과 compassion이 결여된 사랑은 서로 다른 무서운 결과를 산출한다

영어 표현에 smother라는 표현이 있는데 뜻은 산소 공급을 끊어서 질식시킨다는 의미이다. 공교롭게도 엄마를 뜻하는 Mother가 어원이다. 어머니들이 자신이 성인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성인아이의 문제를 무의적으로 자식에게 전가시키는 현상은 자식에게 산소공급을 해주는 탯줄을 끊은 현상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얼마 전에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나향욱정책기획관 이야기 중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의 문제가 자기 자식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다라는 말은 일견 일리가 있다. 나 기획관처럼 어른들 대부분이 self compassion을 잃은 상태였다면 사람으로서의 동정심은 보일지 모르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국면에선 분명 남의 자식 이야기로 결론내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이 자신의 자식에게는 compassion을 보였을까? 술먹고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난동을 부린 정도의 추악한 성인아이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내 대답은 회의적이다. 이분의 삶도 겉으로 보이는 번지름함과는 달리 불행에 찌든 삶을 살고 있었을 확율이 더 크다. 불행을 벗어나기 위해 잘 못된 방식으로 몸부림치다가 더 큰 불행을 더 자초한 것이다.

행복의 복원은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사명을 복원하고 이 사명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 주인이 사명을 구현하기 위해서 외재적인 자아를 통합시킬 수 있을 때 니체가 말하는 남들의 노예로 사는 낙타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남을 괴롭히는 사자의 상태도 벗어나고, 삶을 놀이로 보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의 상태 bliss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아직 미숙하지만 내 삶의 사명을 복원하고 이것에 기반해서 삶의 주체성을 찾아나가는 힐링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