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지락(生生之樂)이란 말은 백성(生)들이 하루 하루 생업을 사는(生) 즐거음을 노래한다(樂) 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정치 교과서로 읽히던 서경(書經)의 '반경'(盤庚) 편에 처음 나온다.

모두가 공인하는 조선의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은 생생지락을 국가의 존재목적으로 자주 인용했다. 공식적으로는 한글을 창제했던 즈음인 1444년 7월 25일 자에 내린 교지에 등장한다(세종실록 재위 26년).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을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농사짓는 일은 의식의 근원으로서 왕의 정치에서 우선적으로 힘써야 할 것이다. 오직 그 일 만은 백성 살리는 소명에 관계되는 까닭에, 천하 사람들이 지극한 노고를 마다치 않고 왕을 섬기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 세종이 재위했던 당시 백성들이 모여서 생생지락을 찬미하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같다. 세종이 약속한 국가의 존재이유인 목적과 사명이 실현되어 백성들도 마음 놓고 생업의 즐거움을 마음껏 노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은 '생생지락'과 함께 지금의 용어로 번역하면 군주의 리더십인 '적솔력(迪率力)'을 강조했다. 적솔력은 지도자가 생생지락에 앞장서서 먼저 희생하고 먼저 모범을 보이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의미한다.

"위에 있는 사람이 성심으로 지도하고 이끌지 않는다면,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농사에 전념하면서 그 생업에 즐거워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세종이 서거하자 세종이 약속했던 생생지락이라는 국가의 사명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인 적솔력은 사라졌다. 생생지락의 사명이 세종 후대 왕인 단종, 문종, 세조를 통해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국가의 사명과 목적이 사라지자 조선은 남인북인 노론소론 등 정쟁과 정파의 이념 논쟁으로 다시 갈기 갈기 찢어졌다. 사명과 목적이 사라진 곳에는 자신들의 집단적 이득에 눈이 어두운 파당과 정치세력의 힘겨루기만 남는다. 갈기갈기 찢어진 조선에는 백성들의 노랫소리가 사라졌다. 결국 노랫소리가 신음소리로 바뀐다. 결국 일제에 나라의 주권을 수탈당하는 비운의 민족이 된다.

국가든 사회든 조직이든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과 약속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사명은 생생지락의 노래를 만들기 위한 화성악이다. 화성악은 각자의 생각과 이념들을 모아서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알고리즘이다. 존재목적의 울타리 안에서 각자는 다양한 소리를 더해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 간다. 화음에 맞춰 구성원들은 춤을 추고 생생지락과 경업낙군의 노래를 부른다.

사명과 목적이 사라진 국가와 사회와 조직은 화성악에서 화음의 기반인 다양성이 사라지고 하나의 목소리만 존재한다. 이 목소리를 듣기 싫은 다른 정파는 다른 목소리를 높인다. 화성악을 기반으로 화음과 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비명 소리가 만들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이기기 위해 소리를 높이다가 결국 모든 악기의 줄이 끊어진다. 노래를 잃은 비통한 나라, 사회, 조직이 된다.

조선은 나라의 존재이유를 살려 생생지락을 만들던 화성악 악보를 무시하고 정쟁에 빠져 살다가 멸망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영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23년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조선말기 정쟁으로 무너져 한일합방을 당했던 일제의 악몽을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국가의 존재이유인 화성악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철 지난 뉴라이트 매카시즘인가? 우리 일반 시민들은 제발 하루라도 시끄러운 정쟁에서 해방되어 생업을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