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 Natural Learning > 영화 <1947 보스톤>에 대한 소회 국뽕의 또 다른 차원들

이 영화는 강제규가 감독을 맡았으며,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 김상호가 공동주연을 맡았다. 1947년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해서 2시간 25분 39초로 우승했던 서윤복의 출전기를 영화로 그렸다.

보스톤 마라톤은 런던 마라톤, 로테르담 마라톤, 뉴욕 마라톤과 함께 세계 4대 마라톤으로 꼽힌다. 보스톤 마라톤은 미국 보스톤에서 매년 4월에 개최된다. 1775년 4월 19일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이 보스톤을 공격하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은 4월 19일을 애국자의 날로 정해 행사를 벌였는데 보스톤 마라톤 대회는 그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미국의 4월 19일은 민중들이 제국이나 국가의 압제에 대항에 자발적으로 봉기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3.1 만세운동이나 동학운동에 버금가는 날이다.

1897년에 1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올림픽 마라톤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 되었다. 서윤복이 1947년 51회 대회에서 우승했고, 1950년 54회 떄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철이 1~3위로 입상했다. 2001년 이봉주가 2시간 9분 43초로 우승해서 케냐의 11연패를 저지했다. 결국 한국이 3차례의 보스톤 우승 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마라톤 강국임을 알려준 대회이자 한국이 미군정에 속해있는 많은 나라 중 하나가 아니라 독립한 국가임을 알려준 대회다.

영화의 장면에도 나오는데 서윤복은 실제 직장이 있는 동대문 철공소에서 집이 있는 서대문 녹번동까지 전차를 이용해서 달리기를 연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전차 운전사에게 가방을 맡기고 그 전차를 따라서 전차 종점인 서대문 영천까지 달린 후 가방을 찾아서 무악재를 넘어 녹번동까지 출퇴근 길을 이용해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 당시 전차의 속도는 시속 7K 정도지만 매일 왕복 50리가 넘는 길을 마라톤 연습 루트로 삼은 셈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강제규 감독의 주특기인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장수상회>, <마이웨이> 등에서 선보였던 국뽕질에 시달릴 것같아서 굳이 나서서 보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영화가 예매가 안되어 울며 겨자먹기로 본 영화다. <1947년 보스톤> 영화는 이런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준 차원이 다른 국뽕 영화였다.

조직이나 국가에 구성원이 몰입하는(조직뽕이나 국뽕이 드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국가가 자신이 기여하는 것에 비해 국민들에게 경제적으로나 복지에서 엄청난 혜택을 주기 때문에 생긴 국뽕이다. 학문적 용어로 계산적 국뽕(Calculative Commitment)이다.

예를 들어 2023년의 대한민국은 경제적 문화적 선진국이라는 인상이 심어져서 해외를 여행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에 대해서 환대해주는 성향이 늘었다. 본인이 1980년대 말에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면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교육을 받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는 이들조차도 내가 North Korea인지 South Korea인지를 반드시 물었다. North Korea나 South Korea나 거기서 거기라는 암묵적 가정이 묻어 있는 기분 나쁜 질문이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나에게 최소한의 계산적 국뽕조차 유인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고 K Pop 등이 알려져 선진국 대우를 받는다. 이에 맞춰 여권만 가지고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 숫자인 여권 파워도 2-3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해외를 여행하다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알게 하는 것이 더 이득일 경우 이에 대한 보답으로 국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해외 여행을 안 하는 경우 내가 낸 세금보다 국가가 해주는 복지나 안전의 혜택이 더 클 경우도 계산적 국뽕에 물든다. 이런 이기적 국뽕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과 손해에 대한 계산을 통해 형성된다. 자신이 세금을 너무 많이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계산적 국뽕에 물들 개연성이 적다. 국가가 최소한 국민의 생명조차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이태원 참사, 오송참사, 해병대 사건 당사자, 자살 사건에 마음 아파하는 동료 선생님들은 이런 계산적 국봉에 절대적 피해자들이다. 이들이 계산적 국뽕에 물들여질 이유가 없다

또 다른 국뽕(Commitment to the nation)은 의무적 국뽕(Obligatory Commitment)이다. 이 국뽕은 국가가 있어야 국민도 있기 때문에 국민이라면 국가에 충성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국뽕은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가 동원하는 국뽕이다. 국민에 비해 국가가 더 우선시 되고 국민이라면 국가와 국익에 충성해야 된다는 논리가 만든 국뽕이다. 이런 국뽕은 전체주의 국가였던 나찌 독일, 중국 문화혁명, 소련의 독제공산주의, 북한의 주체사상, 일본국왕 전체주의 등에 함축되어 있었다. 이런 전체주의 지도자들은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우상화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전두환 정권시절에 이런 강요된 의무적 국뽕에 가장 시달렸다. 지금도 국민보다는 국가와 국익을 더 앞세우는 정치지도자들은 이런 의무적 강요된 국뽕을 불사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셈이다. 이들은 국가 위에 국민을 세운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국민 위에 국가를 세운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체주의 국뽕에 빠져 있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인권이나 생명은 부차적인 것으로 경시된다. 이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은 국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마지막 국뽕은 <1947년 보스톤>에서 보여준 손기정, 서윤복 등이 보여준 자발적 국뽕(Affective/volutary Commitment)이다. 국가가 이들에게 해준 것은 없어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가에 대한 애정과 짝사랑을 자신의 가슴 속에 품고 산다. 국가의 영광을 위해 마라톤을 해야한다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어도 자발적으로 주인으로 일어서는 마라톤을 하던지 독립운동을 하던지 시민운동을 한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독립군으로 활동했거나, 3.1 운동에 참여했거나, 4.19에 참여 했거나 했다면 아마도 이들을 일으켜 세웠던 것은 자발적 국뽕 때문이다.

헌법에도 다른 국뽕을 제외하고 이들 국뽕만 언급하는 이유는 국가가 많이 해준 것에 대해 계산해서 한 국뽕을 한 것도 아니고 의무반 강제반 동원된 전체주의 국뽕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순수한 짝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국가의 주인으로 자신들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자발적 국뽕만이 독립을 위한 가장 순수한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온 나라에 이슈가 되는 뉴라이트의 근간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자신과 가족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면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주어야 한다는 계산적 국뽕주의(Calculative Commitment)다. 일본이 미개한 조선을 무너트리고 근대화 시키는 시혜를 베풀었으니 조선인도 일본에 충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나라의 주인이 바뀌면 이전 나라를 버리고 다시 바뀐 나라에 충성한다. 이들과 이들 가족은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대한민국보다 근대화의 시혜를 베푼 일본과 군정과 육이오 전쟁에서 시혜를 베푼 미국에 국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오직 자신과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변절로 점철된 오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DNA를 가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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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를 일깨운 케네디 대통령은 1917년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시민들에게 "국가가 무엇을 해주기 전에 시민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도록 촉구했다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케네디 취임연설을 놓고 국가 전체주의자들은 액면 그대로 자신의 입장인 의무적 국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언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케네디가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국가도 국민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국가의 의무를 다할 것이니 국민들도 국가에 대한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의무도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취지다.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강제적 국뽕과 해주고 생생내는 계산적 국봉을 포기할테니 시민들도 국가의 주인으로 나서서 자발적 국뽕으로 국가의 면모를 세워 달라는 취지다.

국가 지도자의 책무는 미래를 추동하는 다양한 이념을 살려 이들이 공동운명을 개척하는 주인으로 협업할 수 있도록 플랫폼이자 운동장을 설계해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47년 보스톤>은 최근 뉴라이트 세례를 받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영화다. 뉴라이트가 생각하는 계산적이고 변절적인 국뽕과, 의무적(전체주의) 국뽕을 넘어 차원이 다른 차원의 자발적 국뽕도 있다는 것을 이들도 알았으면 한다. 국가는 계산적, 의무적 국뽕을 넘어 국민이 스스로 주인으로 일어서는 자발적 국뽕으로 일으설 때 시민국가로 번성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