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기업들에 대해 네거티브 규제를 하는지 파지티브 규제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많다. 네거티브 규제는 필수적인 몇가지를 빼고 나머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규제이다. 파지티브 규제는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못하게 하는 규제이다. 당연히 혁신이 일어나려면 규제가 파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기업가들의 수준이다. 기업가들이 탐욕스러워서 이들의 모든 것을 법으로 일일이 정해 놓고 감시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이런 사회에 네거티브 규제를 허락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 된다.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혁신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기업가들의 의식수준이 법과 상식을 넘어 내면적이고 자발적 행동 수준에서 스스로 규제하는 가치를 지키는 고도의 성숙 수준을 보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평소 남이 보고 있지 않을 때는 법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이해충돌 행동을 일삼는 기업인이 모든 규제를 풀어달라는 네거티브 규제를 주장한다면 자신이 고양이인데 생선을 달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네거티브 규제는 일단 참여자의 자율에 맡겨가며 모두를 풀어주고 문제가 되는 케이스가 생기면 사후적으로 다시 법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참여자의 자율에 믿고 맞길 수 있는 법과 상식을 넘는 시민의식이 성숙된 사회에서 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네거티브 규제를 허용하는 시민국가에서는 혹시나 이런 허점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징벌적 처벌 제도를 도입한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유전무죄로 대부분 석방된 재벌총수들에 대한 기억이 살아 있는 한 네거티브 규제를 허락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에 이들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아마도 종신형으로 지금도 감옥에 있을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를 보다 잘 이해하고 실행 가능하게 만들려면 경계의 역설을 이해해야 한다.

경계의 역설(paradox of boundary)이란 평소 통용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의 경계를 정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자기 조직화를 위한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원리다.

1977년 비평형 열역학에서 소산구조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리야 로마노비치 프리고진(Ilya Romanovich Prigogine: 1917년 1월 25일 - 2003년 3월 28일)는 모든 분자구조를 가지는 것은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경계>가 내재화되어 있을 때만 자기조직화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국가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이 경계 내에서 참여자들이 목적을 세우고 자기조직화가 가능하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경계가 없는 도시는 자족적으로 진화할 방법이 없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경계가 없다면 적절한 활동범위와 이 활동의 수혜자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 몸도 경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기관들이나 분자들이 이 경계의 범위 내에서 자기조직화 하는 방식으로 신진대사를 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키거나 축소시킨다.

물리적 경계도 있지만 인간은 행동의 기준들을 자율적으로 내재화해서 행동경계를 정한다. 행동의 경계가 어떻게 내재화되는 지에 따라 허용되는 자율과 자유의 범위가 결정된다. 사회적 책임(CSR)의 피라미드를 제시한 Carroll에 따르면 인간 행동의 경계는 법이 허용한 경계, 상식이 통하는 윤리적 경계, 자발적으로 정한 가치의 경계가 있다.

법의 경계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가장 낮은 수준의 최소한의 경계다. 신뢰의 잔고가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침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행동들을 법으로 다 정해 놓은 것이다. 윤리적 경계는 당연히 법을 저촉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법에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침해를 줄 개연성이 있는 행동들을 하지 않는 것의 상식이 통용되는 경계이다. 자발적 가치의 경계는 윤리와 상식을 지키는 기준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도움이 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자신의 행동경계를 자발적 가치경계 수준에서 제어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윤리적으로 침해를 가하는 행동이나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사회가 문명화된 수준은 시민들의 행동이 법에 의해서 규제되는지, 상식과 윤리에 의해 규제되는지, 아니면 자발적 가치에 의해서 규제되는지에 달려 있다.

김구선생이 천명한 문화강국이란 바로 대부분 시민들의 행동이 법과 윤리를 넘어 자발적 가치에 의해 대부분 행동이 조직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캐롤의 기준에 따르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된 사회는 가장 미개한 시민사회이다.

지금이라도 한국사회에 네거티브 혁신의 토대가 마련이 되려면 사사건건 법의 규제로 자신의 밥그릇을 먼저 챙기는 공무원들도 탓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충돌이라는 상식적 윤리를 넘어 고객과 사회를 위해 창출해야 하는 가치로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기업가들의 시민의식의 성숙도 탓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네거티브 규제를 반대하는 이유도 기업가들의 이런 모랄해저드의 문제가 해결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징벌적 처벌과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기업가들의 시민의식이 성숙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계의 역설이란 스스로 탐욕으로 경계를 확장하려고 노력하면 사회는 더 엄격한 기준으로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반면 스스로 내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행동 자유를 허용하는 원리다.

법에 의해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는 성숙도가 가장 낮은 사회다. 법이 없어도 남에게 이해충돌로 해를 끼치지 않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더 성숙한 사회다. 김구 선생이 이야기하는 문화강국은 법과 상식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법과 상식을 넘어 자신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가치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규제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보면 가치와 상식의 규제는 고사하고 가장 초보적인 법적 규제조차 통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장관과 대법원장 후보로 추천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수준은 최소한의 초보적 수준인 법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법기준도 통과하지 못하는 법기술자들이 모여 정치를 하고 있으니 정치에서 가치는 고사하고 상식도 작동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