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은 조직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구성원에게 기대하는 바를 말한다. 직무는 조직이 기본적으로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표준화 시킨 것이다. 역할은 사람 중심으로 해야할 일을 규정한 것인 반면 직무는 일 중심으로 해야할 일을 규정한 것이다. 직무라면 누가 직무를 담당하던지 같은 결과를 산출해야 한다.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조직이 처한 맥락을 읽고 이 맥락에 따라 기대하는 바를 그때 그때 설정해야 하므로 누가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따라 기여하는 바가 크게 달라진다.

리더십을 이야기 할 때 리더십 역할을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리더십 직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도 리더십에서는 직무에 대한 구체적 기술이 없어도 리더에게 기대하는 바들이 있으면 이 역할을 맡은 사람이 책임지고 수행해주어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장이라는 직책은 리더십 역할이라기보다는 누가 과정을 맡던 과장으로 반드시 해야 할 정해진 직무를 말하기 때문에 과장으로서 정해진 직무만 수행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직무는 해야 할 일을 시스템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고 역할은 해야 할 일을 사람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다.

문제는 경영환경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정 시점에서 시스템의 요구에 따라 직무를 정해놓고 이에 따라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할 때 정해놓은 직무는 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시스템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구멍을 사람들이 나서서 해결해주어야 한다. 변화의 시기에는 직무를 넘어서 조직을 살려내는데 해야 할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된다. 변화하는 환경에 놓여진 조직이 모든 것을 직무로 해결하려 한다면 큰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 선진기업에서는 직무급이나 직능급에 대한 논쟁을 벗어나 역할창안(role crafting)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는 이유이다.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들이 정해진다면 역할창안(role crafting)은 이 일들을 조정해 자신이 해야할 역할에 대한 대본을 스스로 써나갈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것이다. 역할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전체를 살려내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역할이 제대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이 역할에 전체의 생존과 번영에 자신이 어떤 역할로 기여할 수 있는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전체의 모습이 담겨 있지 못한 역할은 역할로서의 존재의미가 없는 것이다. 역할창안(role crafting)을 시행하는 기업들에서 쓰는 방법은 조직의 목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장님이 내 역할을 수행한다면 내 역할을 어떻게 창안할 것인지를 그려내도록 독려한다. 또한 조직의 존재이유에 해당되는 End User인 고객이 내가 하는 일에 어떤 기대를 한다고 생각할 때 지금의 내 역할들은 어떻게 다르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역할에서의 전제조건은 조직전체의 생존과 번영이다. 따라서 고객의 기대가 바뀌면 나의 역할도 바뀐다. 팀의 경우에는 팀원들이 서로 역할들을 쓰고 이 역할들을 팀원들과 협의해서 자신의 역할들을 조정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사장과 고객에 대한 역지사지의 철학을 통해 조직이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가게 해야 할 것인지의 역할을 스스로 쓰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역할에는 우리의 개념이 전제되어 있는 반면 한 시점에서 일을 최적화해 직무는 사람들에게 할당되는 순간 직무경계가 설정되어 전체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