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머스는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정의나 공정성 때문이 아니라 정당성 위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어떤 체제가 정당성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정권이 무너진다고 본다.

정당성 위기에 처하게 되면 나오는 질문이 정체성 질문이다. 이게 나라냐?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정치냐? 등 촛불 혁명 때 우리 국민 모두가 직접 경험한 질문이다. 정당성은 어떤 체제가 존재하는 이유인 목적을 제대로 관리하고 여기서 기대하는 결과를 산출하고 있는지의 문제다.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 자기질문이 생긴다는 것은 체제가 이런 목적을 실현하고 있지 못한다고 의문을 공론하하는 작업이다.

어떤 체제가 존재하는 목적을 x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의 관리를 맡은 정권이 이 x라는 존재이유와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던지 이 존재이유를 실현시킬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질 때 정당성의 위기가 찾아온다. 이런 정당성 위기는 어떤 정권이든 보편적이고 시시각각으로 찾아오는데 문제다. 핵심은 이런 위기를 제대로 관리해서 국민들의 자기정체성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지에 따라 정권의 운명이 결정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는 댓가로 세금을 냈는데 이 약속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는 믿음이 퍼기지 시작하면 정당성의 위기가 찾아온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이유도 세월호 사태가 벌어져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국가의 정체성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 이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국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서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한 정체성 질문을 던졌다. 이게 국가냐? 이 사람이 대통령이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현정권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정당성 위기다. 이 위기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과거 정당성 위기에 대한 질문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통합당으로 정권이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제 삼의 당으로 권력기반이 흩어질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현 정권이 내세운 정치철학이 공정성과 정의다. 기회는 공정하게 배분되고 과정은 투명하게 관리되고 결과는 정의롭게 사용하겠다는 공약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정의와 정당성은 다른 문제다. 정당성의 기반이 무너지면 아무리 정의롭고 공평하게 나라를 관리해도 사람들은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두환 정권도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아무도 전두환 정권이 했던 일을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쿠테타에 의해 정권이 세워져 존재의 정당성이 없는 정권이 정의와 공정을 내세워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마스크에 대한 문제는 공정성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현재 국면에서는 공정성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 문제는 지금 정권이 위기를 관리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에 정당성에 대한 간접질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국가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번 정당성 위기로 결국 시진핑의 권력기반은 무너질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코로나 사태를 관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능력을 의심해 탄핵을 주장하는 숫자가 146만에 이르렀다.

모든 정당성의 위기는 존재이유를 잊고 지낸 형벌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존재하는 이유를 실현하는 국가다운 국가를 실현시키는 일보다 정쟁에 휘말려 이 이유를 잊을 때 결국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 시작하고 결국 무너진다. 기업도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정체성 질문을 잊고 돈버는 것을 목적으로 생각할 때 종업원과 고객의 열의가 떨어져 결국 무너진다. 사실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도 정통 기독교가 신앙의 존재이유를 실현하지 못하고 대형화에 집중하고 승계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는 동안 종교의 존재이유를 상실했고 이 상실한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신천지와 같은 유사종교가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지금의 사태를 촉발했다. 종교를 가지지 못한 국민들도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자신이 존재이유를 생존으로 등치시켜놓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화를 키웠다. 대한민국이 자살율 1위 국가라는 오명이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각성하고 실현하는 삶을 상실한 증거다. 사회학자 듈껭에 따르면 자살은 사회가 존재이유를 제시하지 못할 때 생기는 병리현상이다.

국가도 존재이유를 잃고, 기업도 마찬가지고, 종교집단도 존재이유를 잃어버렸다. 일반인들도 이런 국가와 제도적으로 산성화 된 환경 속에서 살아남다보니 존재이유를 같이 잃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국가, 기업, 종교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당성 위기다. 나라전체가 자신의 존재이유인 목적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해야할 시점이다. 존재이유가 복원되어 이를 실현하는 차별적 존재로서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이 뚫린 구멍을 통해 지금과 같은 천재는 항상 인재로 전환되어 우리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자살율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존재이유에 대한 문제는 영원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