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8-22 22:05
[N.Learning] 명성교회 세습이 왜 반성경적인가?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2,093  

교회세습이 왜 반 성경적일까?
명성교회 사태를 지켜보며

500년 역사를 가진 개신교가 번성한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자인 DNA에 대비되는 믿음의 유전자 MEME를 성공적으로 진화시겼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기독교를 전파시키는 임무를 맡기기 전에 시험을 보게 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유전자와 생물학적 유전자가 서로 갈등할 때 이들 중 어떤 쪽을 택하는지 알아보는 시험을 치르게 한 것이다. 생물학적 유전자는 종족보존을 지상명령으로 삼고 사는 이기적 유전자이다. 반면 밈은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 언약을 전파하는 이타적 믿음의 유전자이다. 하나님은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명명하고 이들에게 말씀의 전파 임무를 맡겼다.

최초의 시험은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얻은 자식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통해서 치뤄졌다. 백세에 얻은 귀한 이삭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통해서 자손을 번성시킬 씨앗이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번제의 재물로 바치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생물학적 DNA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인 MEME를 이긴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해보였다. 이 시험을 통과함으써 아브라함은 믿음과 언약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 사이에 믿음과 유전자에 대한 무수한 시험이 치뤄졌지만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시험은 예수을 통해서 였다. 예수을 통해 세상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바치는 시험을 치루게 한다. 예수가 자신의 생물학적 DNA를 죽이고 정말로 하나님 언약의 아들이 될 것인지를 시험한 것이다. 이 시험에서 예수는 자신의 생물학적 유전자가 사라지는 십자가 앞에서의 죽음에 직면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유전자를 선택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를 삼일만에 부활시킴으로써 예수는 하나님 언약에 대한 믿음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예수가 설파하는 기독교가 생물학적 유전자에 대항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밈을 가진 언약에 대한 믿음의 종교라는 것을 증명했다.

문제는 이 믿음의 종교도 시대적 상황에 맞게 자신을 진화시킬 수 있는지에 따라 종교로써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개신교는 500년 전 중세의 카톨릭이 시대적 상황에 역행해가는 현상에 반기를 들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함에 의해 새롭게 전개될 종교로 진화하는데 성공했다. 베버는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서 루터에 의해 개혁된 기독교가 자본주의에 어떤 친화성을 가지고 진화에 성공했는지를 잘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상황이다. 19세기 20세기를 걸쳐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태동시키고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기독교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고 기독교의 신흥국이었던 한국에서 조차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더 심각하게 일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시대적 울림을 창출하는 진화에 실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가 진화에 실패해 기독교의 믿음에 스스로 갇혀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화에 실패했다는 여러 증거가 있겠지만 가장 치명적인 증거는 믿음의 종교 기독교가 언약과 믿음 Meme을 진화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자식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생물학적 DNA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성교회 같은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라는 사람이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믿음은 사라지고 자신이 만든 DNA의 우수성만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 자신이 직분을 내려놓은 후에도 천년 만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숨겨온 잘못을 아직 회계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지던지 명백히 교회를 사유화하는 전략이다. 사유화는 교회내에서 예수를 팔아 예수를 처형하는 제사장들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누가보기에도 교회를 사유화하는 전략임에도 담임목사는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언약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물려받을 수 없는 개척교회라도 물려주는 것처럼 정당화시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이런 사유화 행위를 통해 예수를 빌라도에게 바치는 기독교의 언약의 믿음을 져버리는 이단적 행동에 대해 직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횡을 저지르는 목회자들 장로 직분자들에게 침묵하는 평신도들은 더 큰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품성으로 내재화시켜 진실하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Authentic 평신도들이라면 이런 일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평신도들도 믿음을 진화시키지 못하고 믿음의 감옥에 갇힌 것으로 보인다. 언약과 믿음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에게 돌을 던지는 방관자로 나서기로 작정한 것이다.

믿음의 진화는 믿음이 세상에 공감, 공유, 공생, 공정, 공명의 메시지를 만들어갈 때 제대로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스토리텔링이 지금 이 세상에 어떤 공감과 공명을 만들고 있는지, 스토리가 세상과 공유는 되고 있는지, 세상의 변화와 같이 발전해가는지, 약자에게 특히 공정한 세상을 이야기하는지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해서 믿음을 진화시켜야 할 것이다. 믿음이 씨앗이라면 세상은 이 씨앗이 발아되는 토양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겨자씨가 토양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썩어야하는 자기희생과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믿음은 고사당한다.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는데 온 신경을 쓰는 동안에 기독교의 믿음은 자신의 목소리를 성경적으로 포장하여 배타적이고 일반적으로 전달하는 공명없는 메아리로 전락했다. 자기욕망이 성경적으로 포장되어 절대로 썩지 않게 만든 것이다. 자기반성과 공명을 통해 세상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다. 공명과 소통이 끊어진 믿음이 진화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든 것이다.

명성교회의 장로라는 분이 JTBC에 나와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교회 안에서는 세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70% 넘으니 자신들의 세습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했다. 이들 70%가 어떤 동원과정을 통해서 도출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분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욕먹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같다. 교회가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은 세상인 것이다. 세상에 뿌리를 내려 공명을 창출하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세상과의 단절은 이단이 걸어온 역사다.

대형교회 목회자 세습에 대해 평신도들의 목소리가 아쉽다.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에 빌라도에게 예수를 바친 빌라도 법정을 재현하는 일에 제사장과 장로가 앞장선다 하더라도 명성교회 평신도들은 예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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