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Authenticity)에 관한 세가지 역설
연기력, 취약성, 성공과 실패
진정성(Authenticity)의 정의는 자기 자신에게 진실함 True to oneself이다. 진정성은 자신의 내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자신의 주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같은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심도 있는 진정성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모두 장본인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을 때이다. 진정성은 장본인이 주장한다고 생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본인이 주장하는 진정성에 대한 가설이 구성원에 의해 마음 속에서 검증되었을 때를 의미한다.
진정성
가설을 구성하는 내용은 다양할 수 있으나 최고의 진정성은 자신의 삶의 존재 목적에 대한 가설과 자신의 아픔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대하는 긍휼감에 대한 가설이 가장 중요한 가설이다. 통상 두 가설에서 진정성이 입증된 사람들에게는 자질구레하게 다른 가설의 검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그냥 진정성이 입증된 사람들이라는 명예가 주어진다.
진정성이 검증된 사람들은 품성이 있는 사람이다. 품성을 가진 사람들 주변에는 이 품성의 향기를 맡고 품성의 열매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찾아온다. 성공이란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찾아오는 환류에 의해 측정된다.
진정성에 대한 첫 번째 역설:
진정성도 연기할 수 있다.
진정성의 정의는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같은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정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검증은 또 다른 문제다. 진정성의 가장 중심 증거인 목적과 긍휼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을 시점에서는 개인적 이득을 위해 존재목적과 긍휼감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기꾼들은 모두 이런 연기자들이다. 오랫동안 연기가 발각되지 않을수록 얻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진정성이 없는 사람들이 더욱 리더십 스킬을 동원해 연기력에 집중한다. 목적과 긍휼에 대한 진정성을 검증 받기 위해 측은하게 애쓰는 것이 아니라 연기에 사활을 건 사람을 진성리더와 구별해서 유사리더라고 부른다. 유사리더는 자신의 연기 수준이 고도화되면 스스로가 연기자임를 잊는다.
진정성에 대한 두 번째 역설: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진정성의 한 축은 존재목적에 대한 진정성이지만 다른 한 축은 고통과 아픔에 대한 긍휼감이다. 자신의 아픈 모습을 인정하고 진실로 받아들이는 취약성(vulnerability)를 통해 긍휼감이 검증된다. 사람 간 신뢰도 상대를 믿기 때문에 자신이 손해 볼 개연성을 받아들이는 정도이다. 모든 사람들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면 신뢰는 없다. 손해 볼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손해 볼 것도 없지만 손해 볼 개연성이 가장 큰 리더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취약성을 인정하고 자신을 내놓을 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책임감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 때문에 생긴 손해를 감당하려는 용기가 책임감이다. 책임감도 아픔을 감내하려는 긍휼감의 문제다. 책임감을 통해 아픔을 받아들이는 진정성이 입증되면 리더의 신뢰는 복리로 환산된다.
진정성에 대한 세 번째 역설:
성공은 성공이 아니다.
진정성에 기반한 성공은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해 진심으로 약속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존재목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을 보이면 지켜보는 구성원 마음 속에 측은지심(긍휼)이 발동되어 목적을 구성원들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목적이 구성원들 마음에 긍휼감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긍휼감의 토양 위에 목적이 밀알로 심어지기까지 많은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검증과정은 세속적 용어로 고난과 시련을 넘어서 실패다. 이런 실패로 점철된 검증과정 없이 목적에 대한 약속이 구성원 마음에 진실된 약속으로 이입되지 않는다.
이런 고난과 시련을 통과해서 성공에 이르는 길도 있을 수 있고 유전자 복권과 같은 복권을 타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공하는 길도 있을 수 있다. 전자가 거지로 태어났지만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해서 왕으로 삶을 종결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왕으로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유전자 복권이 주는 혜택을 건물주처럼 탕진하다 결국 죽는 순간 낡은 가격이 빠진 건물 빼고는 남겨줄 것이 없는 시나리오다. 두 시나리오를 비교해보면 성공과 실패의 평균 빈돗수는 같다. 실패를 앞세워 성공에 도달하는 우상향 그래프인지 성공을 앞세워 덧없이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삶을 종결하는 우하향 그래프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공과 실패의 빈도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배열해 죽는 순간까지 우상향의 그래프를 만들 수 있는지가 성공의 관건이다.
아무리 태어나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어도 사람들은 이런 성공을 통해 삶을 어떻게 마무리 했는지 결론을 중심으로 성공을 평가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가 생전에 많은 일을 했음에도 사람들 마음 속에 성공자로 부활되기 어려운 이유는 결말을 독재자의 삶으로 종결했기 때문이다. 삶의 기숭전결 스토리는 모두 결론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기억된다. 마무리인 노년이 불행하면 젊었을 때 아무리 승승장구했어도 했어도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다.
진성리더는 큰 유전자 복권없이 개천에서 태어났어도 어느 날 목적에 대해 각성하여 자신을 리더로 일으켜 세우고 목적에 대한 진정성을 소구해서 삶의 개입이 끝나는 순간에는 목적에서 약속한 상태를 정산해서 유산으로 남기고 원하면 언제든지 세상을 훌훌 떠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 자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