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처럼 큰 귀를 가진 우리 임금님은 귀머거리?
입보다 귀를 더 높은 위치에 두어라
-탈무드-
임금님은 한 왕국에서 누구보다 막강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임금님 철권통치하에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임금님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임금님이 듣기 좋아하는 스토리로 반드시 필터링하고 프래이밍해서 전달하는 소통의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또한 임금님께서 하는 말에 대해서는 어떤 신하도 토를 달면 안 되고 반드시 최고의 찬사로 긍정적 피드백만을 연출해야 한다. 항상 최고의 찬사로 긍정적 피드백만을 받게 되면 임금님은 자신이 하는 말은 항상 신의 말씀처럼 옭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일단 이런 믿음에 갇히면 본능적으로 임금님은 귀머거리로 전락한다.
귀머거리 장애는 말은 할 수 있지만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음성이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생긴다. 귀머거리 장애는 말을 못하는 것에서 생긴 장애가 아니라 말하는 기능에 비해 듣는 기능이 퇴화되어 생긴 장애이다. 귀머거리 장애를 가진 분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를 못하기 때문에 상식적인 귀를 가진 사람들은 이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임금님께서 하는 말들에 대해 부정적 피드백이 끊어지면 어느 시점에서는 임금님을 귀머거리의 장애를 갖게 만든다. 임금님은 자신이 하는 말은 항상 옭바르다고 믿고 있으므로 본능적으로 듣기보다는 주로 말을 하는데 더 시간을 쏟게 된고 이런 상황이 더 심화되면 듣는 귀의 기능이 점점 퇴화되어 귀머거리가 된다.
귀머거리 임금님을 가진 왕국에서 임금님의 귀는 겉보기에는 당나귀 귀처럼 크지만 귀머거리여서 듣지 못한다는 뒷담화가 무성하게 난무하나 이 진실을 누구도 전달하기 싫어한다. 누가 고양이에게 방울을 달 것인가? 임금님은 귀머거리라는 불편한 진실은 왕국 밖에서 임금님의 권력과 전혀 상관이 없는 힘없는 백성들 사이에서만 뒷담화로 무성하게 돌고 돈다.
요즈음 폭풍처럼 번지고 있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는 바로 귀머거리 임금님을 가진 백성들의 소통을 위한 한풀이다. 유신정권시절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언로가 꽉 막힌 상황에서 임금님이 귀머거리이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알고 있던 젊은이들의 이 사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소통의 유일한 통로는 대자보였다. 이점에서 SNS의 강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대자보가 등장하는 것은 아주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건강한 나라는 정보가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물 흐르듯이 흐를 수 있는 나라임에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는 소통을 방해하는 혈전이 점점 축적되어 소통의 혈관이 완전히 막히고 결국 뇌졸증으로 쓰러지게 될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은 소통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힘 있는 사람들이 다 귀머거리가 되어 대화를 통한 소통이 막힐 경우 사람들은 갈등과 폭력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소통을 달성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갈등과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갈등과 폭력은 다 소통이 안 될 때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의존하는 소통의 방식이다. 결국 갈등과 폭력은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힘있는 사람들은 이 갈등과 폭력의 원인 제공자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조차도 깨달지 못한다.
한 때 역사의 총아로 등장했다가 역사의 패전국들으로 전락한 국가들은 다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폭거로 쓰러진 뼈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