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기자
soochan@chosun.com2010년 10월 25일
조선경제
어스(Linda Myers·56) 전 SK그룹 상무(당시 글로벌인재관리실장)는 국내 대기업에 영입된 최초의 외국인 여성 임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전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컨설팅회사), 아스트라제네카(제약회사) 등에서 인력 관리를 담당했었다. SK그룹은 2008년 1월 그녀를 영입했고, 그녀는 지난 4월 말까지 SK에서 일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해본 느낌은?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처음 SK에서 'SK 맨십(manship)'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 글로벌 기업들은 남성만 지칭하는 '맨십' 대신 남녀를 포괄하는 '시티즌십(citizenship)'이라는 말을 쓴다. 우리 직원 가운데는 여성이 많다. 그래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SK 시티즌십'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했다. 남성 임원 가운데는 '그게 뭐 대수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차츰 변화하더라. 그렇다. 사소한 변화다.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다."
―또 다른 것은?
"SK에서는 금요일 오전에 임원들을 상대로 외부 초청 강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강사진이 모두 남자였다. 미국인 교수나 경영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SK에 여성 임원과 팀장이 많으니 이들의 역할 모델이 될 여성 강사를 초청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작년 12월 우주비행사인 이소연씨가 여성 강사로는 처음 강의를 했다. 그 뒤로도 1년에 2번이나 분기에 한 번꼴로 여성 강사 초청 강의를 제안했지만, 이소연씨를 끝으로 여성은 없었다. SK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렸다. "
그녀는 "SK는 미국 기업과 비교해도 아주 훌륭한 육아시설을 갖춘 점은 장점"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성 직원을 위한 자기 계발 프로그램이 없어서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비서들이 자기 계발을 하는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지난 3월 SK의 여성 임원 5명과 모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런 공식적인 여성 임원 모임이 SK 역사상 처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기자의 다음 질문을 막아서더니 말을 쏟아냈다.
"삼성·LG·현대에 물어봐야 한다. '당신네 여성 임원들은 어디 있느냐'고. 모든 건 숫자가 말해준다. 직원이 50명인 회사에서 여성 부사장이 1명이라면 괜찮다. 여성 임원이 10명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SK처럼 직원이 3만5000명인 회사에 여성 임원이 5명이라니. 도대체 여성 직원들은 어디 갔나."
―여성 임원이 늘어나면 기업에 어떤 점이 좋은가.
"불확실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수다. 관리직에 여성이 배치되면 3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생각의 다양성, 둘째 감정의 다양성, 셋째 기술의 다양성이다. 물론 이 말이 '남자는 절대 여자처럼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회의실에 모두 남자만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방에서는 다른 생각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