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감옥에 갇혔을 때 생기는 불행들:
마음 속 지남철이 떨림을 멈추다
이만희 신천지 교주가 나라를 흔들더니 지금은 전광훈 목사라는 분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또 다시 나라를 들끌게 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과학과 맞짱 떠가며 싸우는 성직자들도 경계하지만 성직자라는 분들이 종교를 정치의 시녀로 만드는 경우를 만들면 더 분개한다. 결국 성직자가 앞장서 종교의 지위를 과학 아래나 정치 아래로 낮추는 배교행위에 앞장서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어떻게 이런 배교자로 전락하는 것일까?
제대로 된 믿음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게 하는 통찰력의 눈을 제공한다. 우리는 세상을 실제 눈으로도 보지만 숨어 있는 보물같은 세상은 믿음의 눈을 개안했을 때 비로소 보인다. 제대로 된 비전이란 나안으로는 보지 못하는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되는 체험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이유는 이처럼 세상에 비전을 제시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장님의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뿐 아니라 우리에게 정통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반 종교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좋은 믿음의 눈으로 보지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제대로된 비전을 제공해주었고 이것이 이 종교가 정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 믿음의 눈도 세상이 진화하는 속도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할 때 생긴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한 때 이 믿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사이비 종교의 감옥으로 전락한다. 이 감옥에 갇히는 순간 변화하는 세상은 위험한 세상이니 감옥이라도 감옥 안에서 지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자신을 설득한다.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보수는 진보를 이길 수 없다. 보수는 과거의 믿음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탄생한다. 골수보수보다는 숫자가 적어도 진보 중에도 사이비가 탄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보가 보수에게 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왔다는 것은 진보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광훈 목사같은 분은 목회자로써 하나님의 믿음을 시대에 맞춰 진화시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종교를 보수정치의 시녀로 만드는 이중분절의 우를 범하고 있다. 이분에게 연상되는 이미지는 이미 세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스스로 넘어진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다시 욕하며 침을 뱉고 있는 형국이다.
믿음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제대로 진화시킬 때는 통찰력의 기반이지만 시대를 이끌지 못하고 시대에 이끌려나갈 때는 감옥으로 변하는 양날의 칼이다.
믿음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이 부활한다면 현 시대의 성직자들에게 먼저 다음과 같이 충고할 것이다. "내가 살던 시대는 변화가 아닌 질서가 상수인 시대였다. 믿음을 만들고 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덕목인 시대였다. 하지만 너희들의 시대는 변화가 상수인 시대이다. 변화가 상수인 시대에는 믿음을 만드는 것 이상 더 중요한 책무가 있다. 시대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아픔과 고통으로 힘든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믿음을 지속적으로 공진화시켜 제대로 된 비전의 눈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책무이다."
요즈음 종교인들이나 소위 독실한 신자로 알려진 분들 중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특히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믿음의 통찰력을 상실하고 믿음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자기 믿음의 감옥에 갇히게 된 경우로 보인다. 성직자의 믿음이 생장하지 못하고 죽어 있을 때 이 성직자는 배교자가 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기독교의 쇠퇴는 이 공진화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결과이다.
믿음은 살아 있는 나침반일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 나침반이 떨림을 멈췄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믿음이다. 이 죽은 믿음을 맹신한다는 것은 자신을 맹인으로 만들어 믿음의 감옥에 가두는 배교의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다음은 신영복 교수가 소개해서 유명해진 민영규시인의 지남철이라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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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철
민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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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가에게 지니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