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가정의 달’은 ‘사랑의 달’이란 말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사랑을 매개로 한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날들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며, 아이가 자라 교육을 받고, 성년이 되는 인간 삶의 순환,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핵심에는 남녀의 로맨틱한 사랑이 있다. 남녀의 사랑이 없다면 삶의 순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많은 문학작품, 시, 영화, 드라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최근의 과학적 결과들은 뇌의 신경세포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호르몬 및 신경전달물질이 신경세포들과 복잡하게 상호작용해 인간의 감정을 조절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전혀 로맨틱하지 않지만 사랑은 뇌에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조절되는 생화학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온몸으로 퍼지는 편두통/ 이성을 흐리게 하며/ 시야를 가리는 찬란한 얼룩./ 진정한 사랑의 증세는/ 몸이 여위고, 질투를 하고,/ 늦은 새벽을 맞이하는 것./ 예감과 악몽 또한 사랑의 증상./ 노크 소리에 귀 기울이고/ 무언가 징표를 기다리는….’ 영국 시인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사랑의 증세’라는 시의 일부다. 시인은 병에 걸린 환자의 증세를 열거하듯 아주 과학적으로 사랑의 고통을 열거하고 있다. 이런 사랑의 증세는 NGF라는 신경세포 성장인자와 테스토스테론·에스트로겐 등의 호르몬 및 도파민(dopamine)·세로토닌(serotonin)·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 물질이 뇌에서 상호작용한 결과다. 특히 3초 만에 반한다는 초기 사랑의 끌림 단계에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세로토닌이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매우 높고 세로토닌이 매우 낮다. 이들 호르몬과 신경전달 물질의 농도 변화에 의한 증상이 바로 황홀경, 식욕 및 수면욕 감퇴, 대상에 대한 강박, 심장박동 증가 등 상사병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 럿거스대 인류학자 헬렌 피셔 박사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서 활성화된 부분을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자기공명영상촬영)로 측정하여 VTA(Ventral Tegmental Area)의 도파민을 만드는 세포들이 매우 활성화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부분은 코카인 등 마약류를 흡입했을 때 활성화되는 것과 같은 부분으로 사랑이 강력한 갈망·집착 등의 중독증세가 있다고 설명한다.
JTBC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한 장면도파민은 인지, 학습, 운동 능력 등에 중요하다고 알려진 신경전달 물질이다. 행복감이나 만족감 같은 쾌감을 전달하는데, 많이 분비되면 모험적이고 쉽게 흥분하게 된다. 과다 분비되면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부족하면 파킨슨병의 원인이 되고 우울증이 나타난다. 초콜릿이나 담배·술 등은 도파민을 일시적으로 높여줘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반복하면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 또 포만감을 느끼게 하므로 도파민이 분비되면 식욕이 감퇴한다. 노르에피네프린은 도파민으로부터 만들어지는데 심장박동을 증가시키고 혈압을 높인다. 반면 세로토닌은 잠, 식욕, 기분 조절에 매우 중요한 신경전달 물질인데 부족하면 불면증과 식욕 부진, 강박증 등이 나타난다. 요가나 명상 등 평안한 상태에 있을 때는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 물질은 평소엔 뉴런의 말단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신경전달 신호가 오면 뉴런 밖으로 분비되고 인근의 뉴런을 자극해 신호를 전달하고 다시 재흡수돼 다음 자극이 올 때 반응할 수 있도록 재활용된다. 우울증이나 강박증 환자는 대체로 세로토닌의 농도가 낮기 때문에 농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작(prozac)처럼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막는 약들을 치료에 사용한다. 그러나 약물로 오랜 기간 세로토닌을 높게 유지하면 도파민이 낮아지고 사랑의 감정을 갖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인간사에서 사랑의 불행은 지속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신체의 어떠한 신경전달 반응도 연속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이다. 사랑에 빠진 상태는 몸의 항상성이 깨진 매우 불균형적인 상태다. 사랑의 증세인 스트레스, 불면, 식욕감퇴, 강박 등이 계속되면 개체의 생존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보통 신경전달 물질에 의한 사랑의 유통기간은 1년~1년 반 정도라고 알려진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인간의 사랑을 폄하하거나 인간이 단지 물질반응의 합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오래 참고 친절하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 모든 것을 견디어 내는 사랑은 신경전달 물질에 의한 몸의 반응이 다 없어진 후에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bc5012@you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