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관점은 두 가지다. 수목형 세상과 리좀형 세상이다.

수목형 세상이란 숲을 구성하는 나무처럼 각 나무는 독립적인 뿌리와 줄기와 잎을 가지고 다른 나무들과 영양분과 물을 위해 경쟁한다. 이 경쟁에서 살아 남은 나무들이 숲을 형성한다. 이 숲의 암묵적 규칙은 칼린 지브란이 오래 전에 언급했던 "큰 참나무 밑에서는 다른 참나무가 자랄 수 없다"이다. 수목형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힘 센 대상 밑에 들어가 이들의 생존에 들러리를 서주고 이들이 세운 라인 안에서 정치적으로 보호 받는 협동(cooperation)이다.

리좀형 생태계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숲인 유타주의 판도 사시나무 숲을 모형으로 한다. 판도 사시나무 숲의 모든 나무들은 한 뿌리를 공유한다. 환경에 의해서 특정한 사시나무가 어려움을 겪으면 뿌리를 통해서 영양분을 전달해 이 나무가 살아나도록 돕는다. 리좀형 생태계를 움직이는 원리는 협동이 아니라 협업(collaboration)이다. 가장 힘 센 큰 나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숲의 생존과 번성이라는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같은 운명을 가진 운명공동체임을 각성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바에 헌신한다. 정치적 협동이 힘센 것을 중심으로 질서가 조직되는 피라밋 구조를 만들지만 공동운명을 실현하기 위해 작동하는 리좀 생태계의 협업은 모두가 주인이 되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든다.

최근 번성하는 숲에 대한 연구는 리좀형 뿌리를 구축하지 못한 전형적인 수목형 숲도 뿌리와 뿌리 사이를 곰팡이나 버섯 숙주가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필요한 탄소를 공급해주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결국 숲도 지속가능성을 누리기 위해 수목형에서 리좀형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평소 즐겨 읽는 시에도 삶의 본질은 정치적 협동체(Cooperatives)가 아닌 공동운명을 존재목적으로 가슴에 품고 사는 협업체(Collaboratives)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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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옆에서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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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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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제비 꽃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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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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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만들려면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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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 하나와 벌 한마리만 있으면

초원을 만들 수 있다.

토끼풀 하나와 벌 한마리

그리고 꿈이 있으면.

벌들이 별로 없으면,

꿈 혼자서도 초원을 만들 수 있다.

To make a prairie (1755)

Emily Dickinson

1830 –1886

To make a prairie it takes a clover and one bee,

One clover, and a bee.

And revery.

The revery alone will do,

If bees are f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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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국화는 한송이 민들레이기도 꽃의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다. 생명이 깃든 것을 살리기 위해 살아 있는 모든 주체는 협업체로 나선다. 이들을 움직이는 원리는 운명공동체인 숲과 초원을 위한 협업이다. 이들이 머금고 사는 꿈은 같이 잘 살고 같이 번성하는 공진화의 꿈이다. 협동 운운하는 사람들이 이런 순수하고 장대한 꿈을 알리가 없다. 협동체들이 꾸는 꿈은 자신을 왕으로 모시는 거대한 카르텔 왕국이다.

종교에서도 연기설을 주장하는 불교가 외형적으로도 가장 협업을 위한 운명 공동체에 근접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티벳 불교의 성자 달라이 라마는 작은 곤충 조차도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각성이 있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한다 (Even tiny insects survive by mutual cooperation based on an innate recognition of their interconnectedness)고 설파한다. 노장 사상도 왕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백성이 온전한 만물의 주인으로 생생지락하는 운명공동체를 제시했다. 기독교의 제 1 준칙도 더 아픈 사람들에 대한 긍휼의 사랑이다. 더 아픈 사람에 대한 긍휼의 사랑은 설사 숲이 수목형 숲이라 해도 곰팡이나 버섯균과 같은 역할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게 돕는다.

자연주의자 작가 존 뮤어(John Muir)는 오래 전부터 세상은 협업을 통한 공동 운명체로 엮어 있음을 설파했다. 천문학자 세이건은 뜬금없이 애플 파이를 만들고 싶다면 일단 사과나무 등과 같이 우주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If you wish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you must first invent the universe)고 설파한다. 사소한 것도 공동 운명체인 우주의 도움 없이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로마 시대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도 가정했던 생각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만물이 서로 얽혀 하나의 질서 정연한 우주를 이룬다고 가정한다. 어느 하나도 다른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모두가 신성한 연결 고리를 통해 통합되어 있다는 통찰로, 고대 철학자로는 드물게 우주 만물의 상호 연결성을 인식했다(“All things are woven together and the common bond is sacred, and scarcely one thing is foreign to another, for they have been arranged together in their places and together make the same ordered Universe.)

우리가 운명공동체인 이유는 유전자 복권이 잘 설명한다. 태어남이 결정되는 유전자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은 실제 일등 복권에 당첨되기보다 어렵다. 우리 모두는 유전자 복권을 타고 세상에 태어난 행운아다. 우리의 조상 중 한 분의 데이트 약속이 어겨졌어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다. 조상의 조상이 우리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사용한 수 많은 정자가 난자에 의해서 선택 받지 못했어도 우리는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다. 이런 세대와 시간을 초월해 엄청난 확률로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도록 우주가 나서서 도운 것은 운명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이런 행운에 더해 머리 외모 재능 부를 가진 부모 밑에 태어난 것은 이중삼중의 유전자 복권에 당첨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왜 그런 행운을 부여받았는지를 묻지 않고 제 잘난 맛에 산다. 배은망덕한 일이다. 이런 유전자 복권 당첨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협동을 내세워가며 카르텔 세력이 된다. 지구 운명공동체의 내놓은 자식들이다.

태어나서 같은 시대의 시절인연을 향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절대절명의 운명 공동체이다. 세상에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행운을 누린 우리는 엄청난 행운아들이다. 13세기 페르시아 시인이 서술하듯이 우리는 각자는 바다의 한 방울의 물이 아니라 한 방울의 물 속에 담긴 바다 전체다(You are not a drop in the ocean. You are the entire ocean in a drop).

이렇게 운명을 공유한 우리가 우리의 존재이유를 잊고 서로를 무시해가며 적으로 생각하고 험담하고 폄하하고 차별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 카르텔을 만들어 질서를 어지럽혀가며 앤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것은 인류에 대한 자살폭탄 행위다. 본인이 자살폭탄의 장본인이면서 남들을 호수의 달그림자를 보고 달을 잡으러 물 위를 달린다고 비난하는 광인이다.

매사에 협동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을 조심하자. 이들은 모두 손에 왕 자를 숨긴 사람들이다. 이들 협동체가 꿈 꾸는 세상은 자신을 왕으로 모시는 카르텔 왕국이다.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