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불편한 진실:
하나님은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이기적인 인간들이 세상을 다 망칠 것에 대해 고민하다 기가 막힌 발상을 해낸다.
남녀에게 한시적으로 눈에 콩깍지를 씌워 놓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눈에 콩깍지를 씌워 사랑에 빠지게 하고 사랑을 핑계로 결혼을 하게 하고 결혼을 핑계로 자식을 갖게 만든 것이다. 자식을 갖고 가정이 정착될 때 즈음 해서 콩깍지가 벗겨져도 혹은 사람들이 콩깍지가 콩깍지였다는 것을 알아 차려도 이미 늦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미 자식과 가정에 메인 몸이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콩깍지가 지속되는 시간은 최대 3년을 넘지 않는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런 신의 계책을 간파하고 쉽게 결혼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가정을 안착 시킨 사람들은 신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더 큰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고민하며 살게 된다.
모든 문제는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 사람들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방식에서 파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콩깍지가 씌어 있을 때의 달콤했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끊임없이 다른 상대를 찾아 일탈을 시도한다. 이런 일탈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일반적인 대응방식은 사랑했던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으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사람들의 면 면을 보면 연애 시절에는 정말 죽고 못 살던 사이였던 경우가 태반이다.
어떻든지 같이 살기로 마음을 먹었더라도 더 큰 장애가 기다린다. 이제는 같이 살기로 작정을 하고 상대의 성격을 자신에 맞추어 고쳐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다른 성격이 눈에 가시로 드러나서 생활하는데 지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성격을 고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결국은 포기하지만 상대의 성격을 자신의 성격에 맞도록 고치는 노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론은 한 가지이다. 이혼이다. 이혼하는 사람들은 법정에서 대부분 성격 차이 때문에 이혼한다고 자신을 합리화 하지만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성격을 상대에게 강요하다가 이 작업에 실패한 것이다.
요즈음 결혼 날을 잡아 놓고 인사하러 오는 커플들에게 내가 항상 물어보는 말이 있다. 3년 시한의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에도 두 사람이 굳이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지이다. 대부분의 답은 태어난 자식들의 불행해질까 봐 두렵기 때문에 같이 살기 싫어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답한다. 자식의 불행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더 불행한 일이다. 자식의 불행은 적절한 이유가 아니다. 자식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자신들만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결혼을 자신들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으므로 더 심각하게 고려해보라고 충고한다.
두 사람이 가진 성격의 차이도 심지어 자식의 문제도 이겨 낼 수 있는 두 사람이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이 무작정 결혼부터 한다면 결혼은 행복의 발전소라기 보다는 불행의 씨앗이다.
이 이유에 대한 믿음의 유무에 따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마주 달려오는 기차와 같은 삶이 될 수도 있고 서로 손을 잡고 한 방향의 같은 목적지를 여행하는 동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4장)
하나님은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이기적인 인간들이 세상을 다 망칠 것에 대해 고민하다 기가 막힌 발상을 해낸다.
남녀에게 한시적으로 눈에 콩깍지를 씌워 놓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눈에 콩깍지를 씌워 사랑에 빠지게 하고 사랑을 핑계로 결혼을 하게 하고 결혼을 핑계로 자식을 갖게 만든 것이다. 자식을 갖고 가정이 정착될 때 즈음 해서 콩깍지가 벗겨져도 혹은 사람들이 콩깍지가 콩깍지였다는 것을 알아 차려도 이미 늦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미 자식과 가정에 메인 몸이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콩깍지가 지속되는 시간은 최대 3년을 넘지 않는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런 신의 계책을 간파하고 쉽게 결혼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가정을 안착 시킨 사람들은 신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더 큰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고민하며 살게 된다.
모든 문제는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 사람들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방식에서 파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콩깍지가 씌어 있을 때의 달콤했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끊임없이 다른 상대를 찾아 일탈을 시도한다. 이런 일탈을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일반적인 대응방식은 사랑했던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으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다.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사람들의 면 면을 보면 연애 시절에는 정말 죽고 못 살던 사이였던 경우가 태반이다.
어떻든지 같이 살기로 마음을 먹었더라도 더 큰 장애가 기다린다. 이제는 같이 살기로 작정을 하고 상대의 성격을 자신에 맞추어 고쳐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다른 성격이 눈에 가시로 드러나서 생활하는데 지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의 성격을 고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결국은 포기하지만 상대의 성격을 자신의 성격에 맞도록 고치는 노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결론은 한 가지이다. 이혼이다. 이혼하는 사람들은 법정에서 대부분 성격 차이 때문에 이혼한다고 자신을 합리화 하지만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성격을 상대에게 강요하다가 이 작업에 실패한 것이다.
요즈음 결혼 날을 잡아 놓고 인사하러 오는 커플들에게 내가 항상 물어보는 말이 있다. 3년 시한의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에도 두 사람이 굳이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지이다. 대부분의 답은 태어난 자식들의 불행해질까 봐 두렵기 때문에 같이 살기 싫어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답한다. 자식의 불행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더 불행한 일이다. 자식의 불행은 적절한 이유가 아니다. 자식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자신들만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결혼을 자신들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으므로 더 심각하게 고려해보라고 충고한다.
두 사람이 가진 성격의 차이도 심지어 자식의 문제도 이겨 낼 수 있는 두 사람이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이 무작정 결혼부터 한다면 결혼은 행복의 발전소라기 보다는 불행의 씨앗이다.
이 이유에 대한 믿음의 유무에 따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마주 달려오는 기차와 같은 삶이 될 수도 있고 서로 손을 잡고 한 방향의 같은 목적지를 여행하는 동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