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11-14 20:47
[N.Learning] 날지 못하는 오리들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6,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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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Guru People's 의 이창준박사가 쓴 글을 전제한 것인데 평소에 내가 교육을 통해서 강조하는 점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조건적 역량을 기르기 위해 spoon feeding의 교육방식에 길들여져 있는데 이런 교육이 대학교육의 창의성을 망살시키는 지름길일 것이다. 이창준박사의 더 많은 글을 보기 위해선 다음 사이트를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http://leadershippathfinder.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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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버드인가? 쿨버드인가?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책에서 한 가지 흥미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늦가을 한 무리의 야생오리들이 혹한을 피해 남쪽으로 날아가다가 한 농가의 연못에 머무르게 되었다. 농부는 이 오리들이 너무 예쁘고 귀여운 나머지 매일 같이 먹이를 주고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오리들은 편안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해 봄이 되어 철이 바뀌자 오리들은 다시 북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상하게도 어떤 오리들은 날아가지 않고 연못에 머물렀다. 알고보니 그 중 몇몇의 오리들은 살이 너무 찌고 몸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날 수조차 없게 되었고, 또 어떤 오리들은 먹이가 주는 달콤한 유혹 때문에 농부의 연못에 그냥 머무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들은 결국 야생오리로서의 자신들의 본성을 내팽겨치고 말았다.

주어진 상황 속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해 버린 채 본성을 잃어버린 오리를 쿨버드(cool brid)라 하고,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날아올라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낸 오리를 핫버드(hot bird)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학습에 관한 한 현재의 체제에 순응한 채 그저 먹이를 기다리는, 열정과 에너지를 소진한 불행한 쿨버드가 되어 버린 인상이다.

한번은 세미나장에서 만난 한 학습자가 한 참 강의가 진행되는 중에 손을 번쩍 들었다. 무슨 질문이 있나 싶어 이야기 해보라고 했더니 작은 목소리로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화장실에 가는 것 마저 강사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 철저히 길들여진 쿨버드가 넘쳐난다.

황당함은 또 있다. 내가 문제해결을 위한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학습자들은 열띤 토론을 하며 자신들끼리 답을 찾아내느라 애를 쓰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워크샵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말을 시작하자 갑자기 사람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토론하고 정리했던 자료를 모두 한 쪽에 제쳐놓더니 내 이야기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짓다가 다시 겸연쩍은 듯이 자료를 꺼내놓았다. 선생님은 언제나 정답을 제공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찾은 답은 단지 예행연습이었을 뿐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교육훈련들은 사람들을 철저히 쿨버드로 훈련시킨다. 먹기 좋은 음식에 길들여진 학습자들은 더 이상 불편을 감수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학습의 욕구도 누군가 찾아주지 않으면 안 되고, 동기도 누군가가 부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교육의 장면에서 보면 교육훈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반 강제적으로 강의장까지 끌려온다. 학습의 욕구는 회사가 정해준 것이니 구태여 자신이 학습에 대한 동기를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를 지속시키는 각종 엔터테인먼트를 연출한다. 스트레칭, 동요 부르기,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와 게임, 그리고 재미있는 강사의 원맨쇼가 펼쳐진다. 학습의 내용은 이미 잘 설계되고 구조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저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같은 스푼피딩(spoon-feeding)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태여 학습을 위한 번거로운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그래서 그렇게 길들여진 날지 않는 오리들은 끝없이 투정한다.

“좋은 기법이 없을까요?”,

“좋은 툴은 없나요?”

“관련된 좋은 케이스를 보여주시죠.”

“실제적인 방법과 대안을 보여주세요.”

“좀 쉬었다 하죠”

“재미있는건 없나요?”

시시한 투정에서부터 무턱대고 잘 만들어진 기법과 사례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00하는 방법’, ‘00하는 비법’에 대한 책과 세미나들이 넘쳐나는 것은 이 스푼피딩의 진열장들이다.

학습이 부단한 회의와 질문의 과정을 통해서, 몸으로 부딪쳐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라는 것을 생략한 채 편리한 방식으로 손쉽게 해답을 얻으려는 편의주의는 배움의 노고가 가르쳐주는 참 기쁨을 없애버렸다. 그러니 이유도 원인도, 그 배경도 이해하지 않고 답을 구하고, 정해진 답을 달달 외워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 공부고 학습이라고 믿는 것이다.

비법과 요령, 구체적 사례는 단지 상황특수적 지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찾아 헤매는 일들은 거짓학습이다. 그것은 새로운 상황과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또다시 그 요령과 답을 찾아야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혜는 보편적 지식의 기반위에서 상황특수적인 유용성을 얻어낸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 스타일, 요령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와 원칙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삶의 상황이 요구하는 생생한 학습의 욕구로부터 스스로 찾고 얻어낼 때만이 삶의 지혜로 전환될 뿐이다. 요령과 기법을 손쉽게 배우려고 하는 한 우리는 얻어먹는 일에 길들여진 쿨버드가 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개척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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