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2-06 10:51
[Carpe Diem] 전설적 이야기꾼의 슬픈 이야기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2,587  
친한 친구 한 명이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대학도 졸업하고 군생활도 마친 86년 늦가을에 존경하던 선생님의 소개로 만났다. 만나서 88년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저녁이면 거의 매일 만나서 술을 먹었다. 만나서 시대적 절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소설에해서도 이야기하고 신에대해서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들은 장르를 망라하지 않았다. 보기드문 늦깍이 친구였다. 친구는 가난한 고학생이었고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내가 거의 술값을 책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평 한 마디 없이 끊임없이 술을 샀다. 이유는 타고난 시인이자 이야기 꾼이었던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다. 내가 산 술들은 말하자면 이야기 값이었다.

어느 날은 친구가 밤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자고 찾아왔다. 친구는 그때도 역시 돈이 없었고 여행을 떠나고 싶었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술이든 밥이던 나오는 나에게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도 돈이 없었다. 주머니를 달달 털어보니 이천팔백원정도 나왔다. 그 당시에는 크레딧카드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다. 둘이 살 수 있는 완행왕복표를 계산해보니 옥천까지 갔다 올 수 있었다. 우리는 옥천까지 표를 끊고 남은 돈으로 소주를 샀다. 그 날 밤도 친구로부터 평생듣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진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끊임없이 술을 사고 친구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줬다. 나는 술을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술을 절대로 마다하지 않았다.

88년에 유학을 떠나서 박사를 끝내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96년에 한국으로 귀국해 있는데 연락이 끊겼던 친구로부터 10여년만에 연락이 왔다. 자신이 충분히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지금부터 평생 술값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횡재했다고 생각했다. 공짜로 이야기도 듣고 술도 얻어먹고. 지금부터는 본전을 충분이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이 친구말고 나에게 평생 술과 밥을 사기로 약속한 친구가 또 한 명 있어서 실제로 충분히 밥과 술을 사고 있어서 이 두 친구를 번갈아 이용하면 평생 술값 밥값 걱정하지 않았다 되겠다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친구가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실제로 술을 얻어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서 소식이 끊어졌다. 친구는 10여년이 다시 지난 작년 여름에 다시 나타났다. 역시 약속대로 이때도 술은 친구가 샀다. 

이때도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몰랐던 것같다. 

몇일전 친구후배로부터 친구가 오늘 내일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친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배웅하기 위해서 병원으로 친구를 찾아 갔지만 이미 의식이 없는 친구에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다 돌아왔다. 결국 몇일을 버티지 못하고 친구는 갔다. 

결국 친구는 나에게 두 번밖에 술을 못사고 세상을 떠났다.

천부적 이야기꾼이었던 친구는 죽는 순간까지 소설을 쓰고 있었다. 결국 친구는 유고작으로 소설을 남겼다. 아마 이 소설은 지인들이 출판해줄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내가 등장할까 궁금해진다. 등장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탁월한 이야기 꾼 하나가 세상을 떳다. 친구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많은 지인과 친구들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줬다. 지인들은 한결같이 고인이 자신이 가진 것을 한없이 베플기만 한 삶을 살다 갔다고 증언했다. 사람좋은 탁월한 이야기 꾼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나와 만나지 못하는사이에 나모르게 남들에게 그렇게 많이 베풀었나보다.

퍼즐을 맞춰보니 하나님은 곁에 진솔한 이야기꾼이 한 명이 필요했나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2013.2.1일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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