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은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이 오래전에 붕괴되어 있었음에도 이를 방관해온 국가, 학교, 학부모, 시민들의 문제로 읽힌다. 교권이라는 고상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이미 교실은 교사 스스로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인권의 벽도 무너진 전쟁터다. 무너진 교실에 시도 때도 없이 민원을 핑계로 쳐들어오는 부모의 갑질로 문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끼치는 학습권 침해도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가 자신의 교육 철학에 기반해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기 위해 행사해야 하는 최소한의 훈육도 행사할 수 없다. 이런 무너진 교실에서 생계를 위해 교실을 지켜야 했던 초임 교사의 자괴감은 아마도 모든 교사들이 공동으로 느끼는 자괴감일 것이다.

서초 고등학교 정순신 아들의 사건 등 이런 초유의 부모 갑질 사건들은 교육의 특구인 강남을 진원지로 한다. 강남에서 사건이 터지면 이 사건이 다시 강남의 교육을 모방하는 전국의 교육 특구로 퍼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보기에는 강남이 학력 경쟁을 통해 중산층의 최정점에 도달한 신특권층 부모들 즉 승자들이 모여서 자녀에게 자신의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다시 치열하게 순위 다툼을 경쟁하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에 몰두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이 자녀에게 신특권층의 기득권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들끼리 과열 경쟁하다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신특권층 부모들 사이에 학교를 싸움터로 삼아서 벌이는 지위의 세습 경쟁이 불러 온 결과다.

대한민국에서 신특권층이란 오직 공부와 시험을 통해 지금의 지위에 이른 판사, 검사, 변호사, 법조계, 회계사, 의사, 고위 공무원, 전문 경영인 등을 포괄한 세력이다. 이들은 재벌처럼 물려줄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경제력을 동원한 학벌 경쟁을 통해 자신의 계층을 물려주어야 하는 불확실성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강남이었던 셈이다. 자녀의 성적으로 이런 제한된 파이를 나눠 먹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신특권층이 자녀가 자연계라면 의대로 인문계라면 법전원으로 진학시키는 학벌의 통로를 이원화 시켰다. 이들의 열망을 채워주기 위해 모든 것이 특화된 강남은 치킨 게임 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이들 신특권층 부모들에게 교실은 자신들이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제압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전쟁터다. 아이 문제로 학교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는 이들이 학교에 개입하여 신특권층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천금의 기회였다. 결국 이들은 자기 아이의 민원이란 이름으로 발을 들여놓지만 일단 발을 들어 놓은 이상 지켜본다는 명목으로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절대로 발을 빼지 않는다. 이들의 숨겨진 의도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원을 가장한 부모의 갑질이다.

이번 사건은 변화가 상수가 된 초뷰카 시대에도 신자유주의가 신봉하는 경쟁을 앞세워 신특권층이 교실을 장악한 결과다. 시대착오적 학벌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과 계층을 물려주려는 무모한 시도가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상처다. 자신들은 인정하지 않고 극구 부인하겠지만 이런 피 말리는 경쟁을 통해 가장 상처를 많이 받고 이 상처를 숨기고 사는 장본인은 신특권층이다.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가진 특권과 권한을 이용한 갑질은 교실을 넘어 사회 전반을 오염시킬 것이다. 갑질은 권력이나 위세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약자에게 외재화시켜 상대를 가시로 찌르는 현상이다. 힘 있는 사람이 숨기고 있는 상처가 원흉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새로운 치료와 치유의 장을 개척한 스캇 팩(Scott Peck)은 병이란 우리가 태어나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많은 마음의 문제들이 몸에 남긴 흔적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마음의 상처가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들이 누적되고 자라나서 암이나 우울증 등의 병으로 발현된다고 본다. 특히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던 트라우마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 잊혀지면 몸에 상처의 흔적을 남기고 이 상처의 흔적이 씨앗이 되어 몸에 뿌리를 내리면 암이나 우울증으로 전환된다고 본다. 암은 트라우마가 몸에 남긴 상처이고 우울증은 트라우마가 전두엽의 시냅스에 남긴 상처다.

내 개인적 의견이지만 소위 강남특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신특권층은 신자유주의 학벌 경쟁 속에서 승자로 보이지만 이 승리의 이면에는 해결하지 못한 더 많은 문제와 경쟁과정에서 치유받지 못한 상처의 상흔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스캇 팩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쌓여 병으로 도졌을 때 시행하는 외과수술과 약물치료는 치료(Cure)라고 하고 마음의 흔적까지 전체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을 치유(Heal)이라고 규정한다.

성적으로 소수의 승자를 만들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학교는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다. 신자유주의의 경쟁이 기승을 부리고 지나간 자리는 승자조차도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서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실제 이런 문제해결을 하지 못해 생긴 상처들이 누적되어 신체적 병으로 도지면 상처를 치유가 아닌 치료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사람을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아픔과 고통을 산출하는 고장난 기계로 보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고장난 기계는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항상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이다.

치유는 자신을 문제를 산출하는 고장난 기계로 규정하지 않고 고통을 해결해서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는 열망을 간직한 인간으로 볼 때 발현된다. 온전한 치유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상처받고 아파 누워 있는 자신의 성인아이를 다윗으로 일으켜 세워 유전자 복권에 기대어 쉽게 살고 있는 내면의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세상에 대한 개입이 종결되는 죽음의 순간에 세상에 약속한 존재목적을 깨달고 이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다윗을 키워낸 사람들만 치유를 경험한다.

이번 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사고는 국민들에게 깊은 마음 속 트라우마를 남겼다. 문제를 신자유주의 식으로 정의하는 국가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많은 외과적 수술이 시도될 것이다. 트라우마를 외과적 시스템의 문제로 규정하고 메스를 들이대고, 법을 정비하고, 책임자들을 잘라내는 치료가 감행될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쯤되면 치료가 끝난 것으로 규정하고 문제를 종결할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인간의 고통에 대한 치유의 관점이 사라진 신자유주의 사고체계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더 큰 재앙이 예고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자유는 시장 경쟁이 혁신을 통해 고장난 기계를 고쳐줄 것이라는 신석기 시대의 믿음을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고통을 주체적으로 이겨내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시켜 다윗으로 길러낸 사람들만이 공통으로 누리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다.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것은 인간을 고장난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온전하게 규정하고 성장하게 하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다. 신자유주의 자유는 가진 소수를 위한 차가운 자유라면 윤리적 주체로서의 자유는 전체 공동체를 위한 따뜻한 자유다.

국가의 자유 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갑질 공화국이 될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지 못하고 허세를 부려가며 권력과 결탁한 신특권 카르텔 세력이 돈과 위세를 과시하여 자녀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넘겨주려는 갑질의 쓰나미가 교실을 넘어 나라를 삼킬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특권 카르텔 세력의 부모와 학교와의 싸움이다. 사건의 주인공처럼 알려진 자녀는 알고 보면 이들 부모가 감염시킨 치킨 게임 바이러스의 숙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