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모멘토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이다. 내용은 1945년 미국에서 처음 원자탄을 만들어낸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이자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관한 전기를 담았다.
오펜하이머는 이론 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을 결합해 원자탄을 만들어내지만 실제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감하고 다음 프로젝트인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반대했다. 이런 행보가 마침 미국 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내는 매카시 광풍의 레이더에 걸려 결국 희생양이 된다. 오펜하이머가 근무했던 연구소의 책임자였던 루이스 스트로스가 메카시즘의 총대를 메고 오펜하이머를 공산주의 첩자로 몰아 세운다. 청문회에 소환되어 무참하게 마녀사냥을 당한다.
캠브리지 대학과 괴팅켄 대학에서 이론물리학과 양자역학을 공부를 끝내고 오펜하이머가 미국으로 들어와 처음 교수 생활을 시작한 곳이 미국의 칼텍과 버클리다. 여기서 만난 연인이었던 진 태틀록과 나중에 결혼하게 된 캐서린은 나중에 탈퇴했지만 그 당시에는 입당한 미 공산주의자였다. 교수였던 오펜하이머 역시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 당시 분위기 때문에 공산당에 가입한 친구들과 간헐적으로 교류한다. 당시 버클리의 분위기가 사회주의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분위기 였다. 공산주의자로 분류된 대부분이 젊었을 때 단순 가담한 정도이지 심각한 공산주의자나 간첩은 아니었다. 메카시즘 마녀사냥은 이들 캘리포니아 버클리 연관자들이 졸업하고 평범하고 조용히 살 경우는 그냥 놔두지만 오펜하이머처럼 원자탄을 개발하거나 국가와 관련된 명성을 날릴 경우는 반드시 청문회에 소환해서 사상 검증을 받았다.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다.
1954년 원자력협회의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도 오펜하이머는 이런 간첩혐의에 대해 누구보다 미국을 사랑한 물리학자였고 미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맨하탄 계획을 총괄했고 미국을 사랑했기 때문에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메카시즘 청문회에서 메카시즘 옹호자들은 오펜하이머를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다는 사실과 과거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소련의 스파이로 몰아 세운다.
메카시는 위스컨신 주 출신 상원의원으로 "중국을 공산당에게 빼앗긴 것은 미국 내부의 공산주의자들 때문이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205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발언으로 그 당시 고조되는 냉전의 투사를 자처했다. 이런 매카시즘은 1950년 한국동란이 발생하고 로젠버그 부부 간첩사건이 발생하면서 광풍이 된다. 매카시가 등장한 1년 동안 공개 청문회에 소환된 인물이 214명이고 비공개 청문회에는 395명이 소환되어 간첩 혐의로 사상 검증을 받았다. 청문회 소환되어 간첩 심사를 받은 유명 인물들이 거의 하루에 1-2명이니 기록에 남지 않고 간첩 혐의로 소환되어 축출된 사람들의 수는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메카시즘 신봉자였던 해리 트루먼 정권이 물러나고 아이젠하우어 정부가 들어서자 메카시즘이 가공의 간첩 만들기로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결국 퇴조하기 시작했다. 매카시즘은 중국의 문화혁명에 버금가는 미국의 반공산주의 문화운동으로 미국에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금도 잊혀 질만하면 메카시의 유령들이 부활해서 가공의 간첩과 스파이를 만들어 나라를 흔들지만 이제는 가십 수준이다.
아인쉬타인이 앞장선 양자물리학이 미국에 전파되어 맨하탄 계획으로 이어지고 맨하탄 계획이 원자폭탄 성공 실험인 트리티니 실험을 통해 결국은 핵폭탄과 수소폭탄 제조로 이어지는 역사적 과정도 놀라웠지만 영화 서두에 도입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인용이 더욱 놀라왔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 받았다."
과학의 진화는 이론과 에너지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불의 진화다. 양자역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에너지 덩어리이고 이 에너지 덩어리들이 서로에게 파동을 주고 받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불과 불의 파동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집약시켜 누구는 인류를 파괴하는 원자탄이나 수소폭탄을 만들지만 누구는 인류에 이익이 되는 반도체와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인류를 파괴 시키는 발명이 많아질수록 바위 감옥에 갇혀 고통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사면은 점점 불가능해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에 대통령은 815 축사를 통해 러시아, 중국, 북한 연대를 지지하는 공산주의지만 진보좌파의 옷을 입은 유사 좌파 카르텔 세력을 색출해서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신메카시즘을 부활시키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21세기 초뷰카 세상에 조선시대 갓을 쓴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대한민국 국민에게 훈계하고 있는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강력히 보시기를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냉전 시대 이념의 선봉장 국가를 넘어 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띠도 없이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자, 오송 희생자, 초등학교 선생님, 해병대 채수근 상병 등등 이들의 인권과 생명이다. 오펜하이머는 국가를 위해서 일했지만 메카시즘에 장악된 국가는 국가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오펜하이머의 인권을 짓밟았다. 마찬가지다. 국가가 매준 안전띠를 믿고 있다가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국가를 믿고 국가에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면 지켜야 할 것은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매카시즘류의 초국가가 아니라 국민 밑에서 국민 개개인이 생명과 인권을 누려가며 생생지락할 수 있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울타리와 플랫폼으로서의 국가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믿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평범한 국민의 생명과 인권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모든 담론에 국가를 내세우지만 국민의 생명과 인권에는 눈을 감는 허구적이고 철 지난 국가지상주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밑에서 울타리가 되고 플랫폼이 되어 봉사하는 국가가 실현되어 정작 평범하게 사는 국민 개개인은 국가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가 가장 진보적인 국가다. 노자가 이상 국가로 생각했던 국가의 모습이다. 이상 국가까지는 아니어도 국가의 개념을 거꾸로 돌리는 역주행 시도는 절대적으로 멈춰야 한다.
불을 인간에게 훔쳐준 죄로 바위 속에 갇혀 고통을 받고 있는 프로메데우스를 우리의 힘으로 사면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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