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럼에 참여했다가 나름 매스컴에 유명 인사로 알려진 뇌인지과학 박사가 뇌는 움직이는 생물체에만 존재하고 움직임이 멈추면 무뇌가 된다는 주장을 마치 과학적인 주장처럼 제시하는 것을 보고 놀랬다. 말미잘을 예로 들었는데 말미잘이 자신의 서식처를 옮겨 다닐 때는 뇌가 생성되어 있다가 최적의 서식지를 발견하고 정착하면 뇌가 필요 없어서 자신의 뇌를 먹는다고 설명했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유사과학적 주장이다. 말미잘이나 해파리, 산호 같은 자포동물은 뇌가 없다. 단지 몸에 분산된 신경망이 주변 자극에 반응해 움직임을 조정하는 학습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망 네트워크가 마치 블록체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말미잘 연구의 초점도 뇌라는 중앙조절시스템이 없는 경우에도 하부 신경망이 연합해서 뇌가 있는 다른 생물처럼 학습하는 것이 가능한 지다.

인간의 뇌의 핵심은 (1) 공포와 두려움을 관장하는 편도체, 감각정보의 중앙통제소인 시상,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호르몬의 통제소인 시상하부로 구성된 파충류의 뇌, (2) 통제된 학습과 정제된 정서를 관장하는 해마와 대상회로 둘러 쌓인 번연계, (3) 파충류의 뇌와 번연계를 둘러 쌓아가며 더 넓은 울타리를 제공하는 전전두엽을 중심으로 한 대뇌피질로 구성된다. 인간의 행동, 정서, 태도는 이들 세 가지 뇌 층의 기능들을 연결해주는 신경망인 시냅스의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 시냅스로 만들어진 두뇌의 지도를 정신모형이라고 부른다. 말미잘이 환경에 적응해서 살 수 있는 이유는 중앙통제 장치로 모아진 뇌는 없지만 시냅스의 연결망이라는 지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를 가지고 있는 한 모든 생명체는 물리적인 뇌는 없어도 넓은 의미의 뇌를 작동시키는 셈이다.

뇌의 시냅스 신경망을 구성하는 노드 숫자는 어렸을 때 무수히 많다.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없는 신경망을 가지치기 하는 프루닝 과정을 통해 신경망 지도가 완성된다. 어느 정도 시냅스 신경망 지도가 완성되는 20대를 지나면 뇌의 본격적 배반이 시작된다.

뇌신경가소성(Neuroplaciticity) 가설은 시냅스 지도가 20대 이후에도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뇌가소성 가설은 죽을 때까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지 그냥 세상이 변화하면 저절로 쉽게 바뀐다는 주장은 아니다. 신경가소성 가설이 나온 이유도 가지치기를 통해 신경망 지도를 처음 만들 때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일단 만들어진 시냅스 지도를 바꾸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신경가소성에 따라 뇌의 신경망 지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자신의 신경망 뇌지도를 바꾸지 못한다. 뇌지도를 세상에 맞춰 변화시키지 못하면 에너지가 제대로 유입되지 못해 결국 쇠퇴하기 시작하고 종착역은 사망이다.

뇌지도가 일단 만들어지면 뇌는 자신이 상상적 체험과 실제적 체험을 구별 못한다는 스스로의 약점을 이용해서 뇌지도를 바꾸기보다는 만들어진 뇌지도에 맞춰서 세상이 변화한다는 식으로 가상현실 세계를 만든다. 이 가상현실을 현실이라고 믿으라고 우리를 설득해 우리를 가상현실이라는 감옥에 가둔다. 뇌의 이런 배반으로 인간은 이 구성적 가상현실에 갇혀 살다가 유입되는 에너지가 없어서 결국 사망한다. 성인의 뇌는 뇌가소성을 부인하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한다.

한번 지도를 만든 뇌는 자신의 시냅스 신경지도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잘 안다. 이런 고통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도 뇌는 좋은 머리를 총동원해가며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아서 뇌지도 작업을 해태한다. 뇌의 배신이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은 뇌의 본능적 태만을 제압하고 고통과 희생을 통해서라도 뇌지도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급격히 바뀐 사람을 볼 때 사람들은 이 사람이 죽을 때가 되었다고 예언하기도 한다.

결론은 사람들은 바뀔 수 있지만 변화에 성공한다는 것은 게으르지만 똑똑한 뇌와 싸워 뇌의 신경지도를 바꾸는 문제여서 엄청난 고통과 희생이 요구된다. 쇼펜하우어는 생의 본질을 고통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뇌과학의 입장에서 이 고통은 살기 위해 지도작업을 멈추지 않고 뇌가소성을 죽을 때까지 실현해야 하는 고통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만의 정신모형 지도를 해상도 높은 지도로 바꾸지 못하면 더 큰 고통인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죽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모형 지도를 바꾸는 고통을 죽을 때까지 감내해가며 살아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삶을 고통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은 결국 뇌와 싸워서 뇌가소성을 실현했다는 뜻이다. 번성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뇌 지도 작업을 할 수 있는 근력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공한 리더와 실패한 리더를 오랫동안 만나고 인터뷰하고 연구해온 입장에서 리더를 뇌과학적 입장에서 다시 정의한다면 리더란 뇌가소성과 싸워 이긴 사람들이다. 게으르지만 바뀌어야 할 때마다 바꾸지 말아야 할 세련된 이유를 마련해 자신을 설득하는 게으르지만 똑똑한 뇌와 싸워 이긴 것이다. 리더 중 리더인 진성리더는 시냅스 정신모형의 지도를 바꾸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바꾼 자신의 정신모형을 지렛대로 삼아서 남들의 정신모형의 지도도 바꾼 사람이다.

이런 진성리더가 자신의 뇌 신경가소성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정신모형의 지도를 만들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지도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나침반(Moral Compass)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침반은 길을 잃었을 때 생기는 상상적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근원적 자신감을 제공한다. 진성리더는 내면의 나침반의 도움을 받아 세상이 변화하면 길 잃은 지점을 찾아 시냅스 신경망 지도를 다시 유연하게 그려내는 뛰어난 지도술사다.

나침반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과 자신의 삶이 최적화된 지도를 준비해 번성하는 삶을 누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