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세계행복의 날에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 2024 (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한국은 주관적 행복지수(Subjective Well-being)을 평가한 지수에서 10점 만점에 6.058점을 기록하여 143개 평가국 중 52위를 기록했다.

2012년에서 시작해서 올해 12번째 보고서가 출간되었다. 행복지수는 최근 3년 평균으로 산출된다. 올해 보고서에도 핀란드가 7.7점으로 7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네델란드, 노르웨이등 북유럽 국가가 수년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제시한 새로운 사실은 상위를 차지하는 국가와 가장 하위를 차지한 국가들은 국가 내 표준편차가 적다는 점이다. 상위국가는 국민 대부분이 행복을 느끼고 있고 하위국가는 국민 대부분이 불행을 느끼고 있었다.

상위 국가는 이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면 행복 복권을 탄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국가에 태어난 행운으로 행복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높은 팬트 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하위국가는 팬트하우스까지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이 계단 뿐이어서 대부분 사람들이 평생 운신의 폭이 없는 지하 토굴에서의 불행한 삶을 살도록 운명지워진다.

대한민국은 국민간 편차가 큰 나라에 속한다. 아주 행복한 사람들과 아주 불행한 사람들 사이에 행복과 불행의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다. 소득수준에서는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지속가능한 국가로 발전하려면 행복의 격차를 줄이는 데 국가, 정계, 학계가 협업해야 한다.

행복지수는 지난 3년치의 주관적 행복지수(subjective well-being) (지금 삶이 최상이다를 10점 -- 지금 삶이 최악이다 0점)를 평균한 값으로 산출하지만 보고서에는 긍정정서 (Positive Affect) (사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고 소풍과 같다)와 부정정서 (Negative Affect) (사는 것이 두렵고 힘들고 무섭다) 변수도 조사되어 있다.

전 세계 시민들에게 주관적 행복, 긍정정서, 부정정서 모두에서 일관되게 영향을 미치는 두 변수는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와 주인으로서의 선택권(Freedom to make life choices)다.

사회적 지지는 동료, 가족, 상사 등 자신과 관련해 중요한 사회적 타자들이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정도로 이 점수가 높을수록 자신은 사회에서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크다. 사회적 지지는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감이다. 만연한 개인주의가 복병이다. 개인주의가 극복 되고 사회적 유대가 회복될수록 이 값이 높아진다. 결국 최근 우리가 극심하게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AGI와 알고리즘에 의한 초개인주의의 가속화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자신이 어디에도 속해 있지 못하고 사막의 모래알로 전락하고 있다는 고립감 때문이다.

다른 한 변수는 자신이 주인으로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주인됨이다. 주인됨 점수가 높아지면 자신의 삶이 최상이라고 평가하는 주관적 행복도 늘어나고, 자신의 미래가 소풍 가는 기분이라고 느끼는 긍적적 정서도 늘어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의를 나타내는 부정적 정서도 줄어든다. 이것도 초개인주의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 변수다. AGI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들이 모두 파악되고 삶이 조정되어 결국 삶의 선택권을 잃어버린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다.

세계행복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복원이 되어 각자가 이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으로 대우 받는다는 느낌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공동체가 구성원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고 주인이 스스로 삶의 목적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운동장 및 플랫폼을 제공할 때 최고의 행복감이 생성된다. 무너진 공동체와 삶의 주인으로 선택권을 빼앗기고 있는 현 상태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두 주범이다.

수 년 간 지속가능하게 행복한 나라들은 이들 국가를 지탱해주는 삶의 터전인 운동장이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하게 균열이 없이 건설되어 있다.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높고 더 평평한 곳에 더 균열이 없도록 건설된 공의 운동장(The playground of righteousness)에서 지속가능한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다.

이런 선진 국가들의 공의의 운동장에 비해 지금 한국 국민이 살고 있는 운동장은 여기저기 각종 카르텔로 토굴이 넘쳐 나고 심지어는 균열이 보일 뿐 아니라 운동장 높낮이의 편차가 커서 사람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니다. 시장의 무한경쟁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와 각자도생의 진화론이 추동하는 삶을 추구해온 대한민국이 자초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이 상태로 계속 안녕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면 북한이나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처럼 굶어 죽지는 않을 행운은 타고 났지만 평생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불행도 타고 난 셈이다.

지금 근원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현재의 행복은 고사하고 미래에도 안녕하지 못한 국가가 된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이런 근원적 변화를 이끌어낼 대리인들을 제대로 선출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는 기대해볼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