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돈이 들어 있는 지갑을 발견했다는 가정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체화하고 있는 윤리적 수준을 상상적으로 실험해보자. 지갑에 대한 반응은 세 가지일 것이다.

가장 윤리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은 일단 지갑에 들어 있는 돈에 욕심이 있어서 돈을 빼고 지갑을 휴지통에 버리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법을 어기는 선택지다. 둘째의 선택지는 이것보다 나은 윤리적 선택지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지갑을 탈취하는 것은 법에 어굿나고 언젠가는 밝혀질 수 있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상식을 지키기 위해 그냥 놔두고 가는 경우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행동하는 사람은 지갑을 주인에게 찾아주려는 시도를 하다 분쟁에 휘말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아애 지갑을 못 본듯이 외면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마지막 가장 높은 윤리적 선택지는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을 고통을 생각해서 파출소에 가져다 주는 것이다. 좀 귀찮은 일이라도 상식선에서 요구되는 것보다 한 걸음 스스로 더 걸어가서 지갑을 잃고 고생할 사람을 생각해가며 사는 방식이다.

장표에서 보여지고 있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의 수준은 세 개의 선택지와 일치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선택지는 법을 어기는지 어기지 않는지의 선택지다. 둘째의 수준은 누가 보거나 감시하지 않아도 법을 어기지 않고 상식선에서 사는 선택지이다. 마지막 선택지는 자신만의 가치기준을 세우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남들을 위해 한 걸음 더 가 주는 선택지다.

한 나라가 시민 국가인지는 마지막 선택지에 의해서 행동하는 시민들의 지배적 숫자에 의해서 결정된다. 법과 탈법의 경계선에서 질서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치안중심 국가도 있을 수 있고, 상식의 울타리 안에서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식 국가일수도 있다. 법과 상식을 넘어서 인간과 공동체가 중시하는 가치를 세우고 그 가치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의 질서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이끄는 국가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 울타리를 윤리적 기준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은 국가가 시민국가다.

한 국가의 수준을 결정하는 끌개(Attractor)는 나라의 지도자가 추구하고 삶에서 구현하는 윤리적 수준에 의해서 정의된다. 나라의 지도자가 가장 높은 수준의 시민국가를 선언했지만 실제 삶은 이 높은 윤리적 언덕에서 미끄러져 상식의 울타리에 기대어 살 수도 있고, 어떤 지도자는 더 미끄러져서 법과 탈법의 울타리에서 기대어 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알려진 지도자의 수준은 나머지 국민들을 위한 윤리적 수준을 위한 표준으로 작용한다. 나라의 지도자가 욕을 달고 산다면 그 나라의 미래 시민인 어린이들에게 욕하지 말라는 기준을 세워 가르칠 방법이 없다.

시민국가는 법 바깥세상과 법의 세상을 구별해주는 법의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의 경계 훨씬 안쪽 상식의 울타리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한다. 법보다 더 높은 윤리적 기준이 통용되는 세상은 법없이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의 세상이다. 이 상식의 세상보다 더 높은 기준은 상식에 맞춰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 뿐 아니라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가도 지켜야 할 것을 지켜가며 소신껏 사는 지도자들이 있는 가치의 세상이다. 법의 경계는 물리적 해악과 폭력에서 비교적 안전한 세상을 위한 울타리이고, 상식의 경계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세상을 위한 울타리이고, 가치의 경계는 공동체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안전하게 실험해볼 수 있는 미래의 울타리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선출되기 전에는 가치의 울타리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다가 이들의 실제 삶이 상식의 울타리에서도 떨어져내려 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국가적 비극이 시작된다.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지도자도 이렇게 연기하며 사는데 평범한 우리가 시민국가의 울타리를 지켜야 할 이유와 희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법조인 지도자들이 상상하는 시민국가와 일반국민이 상상하는 시민국가의 수준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적으로 법조인들이 상식과 정의를 내세워가며 국가의 지도자로 나서는 것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쌓아온 법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가장 높은 시민국가를 열망하는 나라를 법과 탈법의 경계에 머무르는 초보적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윤리적 수준이 가장 높은 수준인 가치의 울타리에서 상식의 울타리로 상식의 울타리에서 법과 탈법의 울타리로 미끄러져 내리며 하락할 수록 나라를 경영하는데 감시비용이 치솟는다. 모든 일에서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야하고 이들이 법적 정의를 내세워 감시와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동안 나라의 미래를 위한 행보는 멈춰선다. 경제적 부에서는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북한과 같은 초보적 감시사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치솟는 감시비용 때문에 윤리적 가치기준 안에서 미래를 건설하는 투자비용을 마련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윤리적 기준이 법 망을 뚫는지 못 뚫는지에 맞춰져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 만나고 상대해 온 사람들이 주로 범법자여서 모든 사람을 잠재적 범법자로 규정한다. 신뢰가 고갈된다.

미래에 대한 신뢰와 희망은 사라지고 나라는 서서히 쇠락한다. 지도자가 상식을 지키지 못해 모든 국민들을 감시하는데 총력을 쏟는 북한이나 윤리적 가치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잃어버린 30년으로 고생하는 이웃 나라의 사례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PS: 초우량기업이 만들어지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헤매는 기업이나 기술을 앞세워 상식적 수준에서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초우량기업이 될 방법은 없다. 초유량기업은 기업이 존재해야만하는 이유를 자신의 고유한 가치기준으로 세우고 구성원들이 이 울타리 안에서 활동해가며 미래를 미리 만들어낸 기업을 지칭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재무적 자금이 있어도 명료한 가치의 울타리로 마련한 운동장이 없는 기업이 초우량기업이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