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잃고 헤매는 광란의 나라
요원한 독립과 광복
현대철학의 창시자 니체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순간 온갖 멍청한 짓에 몰두하기 시작한다"고 경고했다. 이런 니체의 경고가 요즈음은 우리에게 내리는 천둥 번개 같은 경고로 들린다.
공공선을
지향하는 존재목적을 잃고 살다 보면 갖가지 유혹에 노출된다. 어떤 유혹은 너무 매력적이고 고혹적이어서 거부하기 힘들다. 이런 유혹에 따라서 살게되면 본격적인 삶의 탈로(Derailment)가 시작된다. 탈로란 자신 삶의 사명이자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철로를 벗어나서 유혹과 욕심이 시키는대로 엉뚱한 곳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탈선한 기차를 상상해보라. 궤도를 벗어나 달리기 때문에 아마도 미친듯이 널 뛰다가 어느 순간 충돌하던지 멈추게 되는 비극을 목격할 것이다. 사명과 목적으로 부터의 탈로는 우리가 처할 운명을 예고한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목적과 사명을 잃고 궤도를 벗어나 탈로하고 있다. 많은 자칭 타칭 지도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지금 생생하게 목격되고 있는 현상들이다. 국가군국주의자들은 국가의 존재이유가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가의 존재이유는 국민이다. 국가가 설사 주권과 영토를 빼앗겼다 하더라도 국민이 살아서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면 영토와 주권은 언젠 가는 복원된다. 그렇지만 국민이 정체성의 혼이 빼앗겨 국민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주권, 영토, 군대, 국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건국 시점이 3.1 절인지, 45년 815 해방인지, 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시점인지 논쟁의 본질은 국가가 주인인지 아니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지 문제다. 3.1운동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주권을 빼앗겼다는 것을 각성했고, 이 정신을 이어받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이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이 해방된 것이다. 반공을 기치로 삼는 국가군국주의자들은 공산주의 북한을 배제한 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하겠지만 국가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건국절은 엄연히 3.1운동 정신에 따라 설립된 상해 임시정부다.
심지어 세종도 국가가 아닌 국민을 국가의 존재이유로 삼았다. 세종은 민유방본(民惟邦本), 즉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는 '민본정신'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국가는 국민들이 생생지락하며 살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다. 아무리 수단으로 국가가 중요해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수단이 수단으로서의 목적과 사명을 다할 때는 그 모습을 인의적으로 들러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망치라는 수단이 못을 제대로 박고 있을 때는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망치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수단으로 기능을 못하고 손등을 찍거나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무기로 전용될 때이다. 본래의 존재목적과 사명을 잃고 자신을 드러내는 국가는 국민들에게 망치같은 살인무기다.
국가로 부터 사명을 위임받은 해병대가 사명과 목적을 상실하자 채상병의 불운한 사고가 목격되었다. 늦었지만 사명과 목적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려던 박종훈 대령은 항명 수괴로 몰려서 지금까지 곤혹스러운 모멸감을 겪고 있다. 국가 언론의 자유를 주관하는 방통위가 사명을 잃자 국민들에게 입틀막, 귀틀막, 몸틀막을 강제하는 무기로 전락했다. 국민의 안녕을 최일선에서 책임지던 경찰관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를 중독시킬 수 있는 분량의 마약 유통책과 운반책을 잡아내자 누군가가 나타나서 외압을 행사했다. 국가망신이라는 국가군국주의자의 생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사명을 위임받고 국민의 인권을 지키려는 권익위 직원이 사명을 수행할 수 없는 외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비극을 목격했다.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고 국가의 현질서를 위해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국가군국주의 검사의 복사판 논리를 가진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하는 폭거도 등장했다. 장본인은 구테타처럼 일본의 찬달로 대한민국이 지배되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므로 대한민국 국민을 일본신민이라고 주장한다. 몸이 지배당했으니 정신도 지배당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뉴라이트 논쟁을 떠나 일제 국가 군국주의자들의 망령에 사로잡힌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지명한 것이다. 국가의 탈을 쓴 사람들이 나서서 국민들의 주권과 독립에 대한 자존심을 공개적으로 짓밟고 있다. 감사원도 마찬가지다. 감사원의 사명이 공무원들이 사명에 따라서 제대로 일해야 되는지를 감사해야 하는 마당에 사명에 따라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골라서 괴롭히는 국가의 망치질을 자행하고 있다. 사명을 잃고 정권의 사냥개가 되어 국민을 괴롭히는 검찰의 폭력은 오래 전부터 국민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국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잃고 무기로 전용되어 국민과 공무원들을 괴롭히다 드러난 이런 갑질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국민의 공동체인 국가를 위해서 국민도 헌신해야 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맞지만 이런 헌신은 국가가 국민들의 생생지락이라는 수단의 본질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 때 요구할 수 있는 헌신이다. 국가와 국민이 충돌할 때 국가의 존재이유는 국민의 생생지락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생생지락을 위한 수단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생지락을 위하는 운동장이자 플랫폼으로의 사명과 목적을 잃었을 때 국가는 국민에게는 갑질의 주체이고 좌파 우파를 떠나 사명을 위해 일하는 많은 공무원들에게 자괴감의 원천이다. 이런 무기로 변신한 잘못된 국가에 헌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국가군국주의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한 것은 맞지만 정신적으로 여전히 일제의 망령으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전체주의의 대마왕 일본을 지배하던 군국주의 망령들이 대한민국 뉴라이트와 국가전체주의자들의 혼에 들어와 가스라이팅을 일삼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들 망령에 의해 신탁통치 되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죽음의 운명으로 치닫는 설국열차다. 이번 광복절은 설국열차에서 뛰어내려 정신적으로도 일제에서 완전히 독립한 국가의 혼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독립만세를 부르는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헌신해야 할 대상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국가의 존재이유를 세우고 국가를 생생지락을 위한 운명 공동체로 세우기 위해 땀을 흘리는 우리의 이웃인 국민들에게 헌신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제대로 된 헌신이 생생지락하는 국가를 자연스럽게 가져올 뿐이다. 생생지락하는 국가는 이런 헌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그냥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했던 니체는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조언한다.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들만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고 조언도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니체와 비슷한 조언을 주셨다. "리더가 내세운 세운 목적이 그른 것이라면 언제든지 실패할 것이요, 세운 목적이 옳은 것이라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