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로봇과의 공존은 가능할 것인가?
인간을 한없이 게으르게 만드는 로봇의 유혹은 물밀듯 쏟아진다. 이들은 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더 큰 비전과 철학이 없이는 이들과 공존하는 것 자체가 버거운 일이 되어 간다.
일자리 문제, 저출산 문제, 경제발전 등의 문제를 이 거대한 로봇 군단의 출현을 무시하고 논의 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로봇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너무 안일하다.
우리 집에 '알렉사'와 '누구'가 동시에 들어왔다.
아마존의 음성인식스피커인 '알렉사'는 영어만 알아듣고, SKT의 '누구'는 우리말만 알아듣기에
별다른 혼란없이 이 둘을 시때없이 불러재끼며 노래도 듣고, 뉴스도 듣고, 날씨도 알아보고 한다.
이 친구들 때문에 TV는 그 이전보다 잠자고 있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
아마 리모콘 찾는 시간보다 '알렉사'를 부르는게 더 편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 친구들에게 며칠동안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더니
이제는 알아서 내가 듣기 좋아하는 류의 노래를 틀어준다.
아마 머지 않아 내가 선택하는 일은 없어질 것 같다.
그냥 틀어주는 대로 즐기면 되니까.
기술발달은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은 게으르고 점점 의존적이 되어간다.
감성은 무뎌지고, 의식은 혼미해진다.
운전자의 경우도
네비게이터를 셋팅하지 않고는 출발조차 하지 않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어쩌다 네비와 생각이 다른 경우 네비가 시키는 대로 간다.
기계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지금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많은 노예들에게 의존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주지 않는
'자존적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하지 못하고
돈을 벌어서 어떤 것이 나를 위해 일을 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의존적 삶'이다.
'의존적 삶'의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영혼의 파괴다.
우리가 어렵게 번 돈으로 소비하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행복에 쓰거나
아니면 행복을 위한 그 무엇에 소비하는 것이다.
행복은 관계 그리고 경험에서 오는 것이지
노예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음악이 나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지 '알렉사'가 틀어주어서 더 즐거운 것이 아니다.
추억 속의 'Hotel California'는 죽을 때까지 듣고 있겠지만
'알렉사'는 아마 머지 않은 장래에 창고에 처박혀 쓰레기통으로 가야할지 모른다.
밤잠 안자고 돈을 벌어 헬스클럽 회원권을 산다. 트레이닝복도 사고,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차를 타고 왔다갔다 시간을 소비한다.
한 시간을 걷기 위해 투자된 비용은 엄청나다.
이 모든 것이 그냥 걸으면 되는 일이다.
EU에서 인공지능 로봇을 전자인간(Electronic Personhood)라 정의하고
'로봇시민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내용을 좀 살펴보면 인간에게 절대 복종하게 프로그램되어야 하고
'킬 스위치'를 장착하고 있어야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로봇의 공포를 사전에 막아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로봇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은 삶을 사는 길 뿐이다.
필요한 조력자 그 이상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 자존적 삶의 주인공만이
로봇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로봇의 주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