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2-26 07:27
글쓴이 :
윤정구
 조회 : 3,327
|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3026366&ref=N [1562] |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4]
지난해 초만 해도 정부는 하반기로 가면서 경제가 점점 회복될 것이라 낙관하며 지난해 4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전분기 대비 1%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4분기 성장률이 정부 예상치의 절반도 안 되는 0.4%에 그치면서 5분기 연속 0%대 성장을 기록해, 말 그대로 ‘저성장의 충격’이 우리 경제를 덮친 것이다.정부는 올해는 다를 것이라며 또 다시 성장률 회복을 장담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전편인 「최악의 경제 불황,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에서 밝힌 것처럼 2015년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 인구구조가 우리 경제에 매우 치명적인 위협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적으로 경제성장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 타격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빠르고 손쉬운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인류 역사는 이제까지 놀라운 기술 혁명을 경험하며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혁신은 계속될 것이며 이에 따라 생산성도 끝없이 치솟아 오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 발전이 항상 끝없이 이뤄져 왔던 것은 아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전 세계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빠르게 둔화되면서 세계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The Conference Board)는 ‘총요소생산성(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증가 속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해마다 세계적으로 1.0%씩 증가했던 총요소생산성은 2007년 이후 5년 동안 0.6% 증가하는데 그쳤고, 2013년에는 오히려 0.1%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퍼런스 보드는 “이제 빠르고 손쉬운 성장의 시대는 끝났는지 모른다”며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2013년 12월,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전직 미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 (Lawrence Summers) 전 하버드 대학 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칼럼을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하였다. 이 같은 비관적인 전망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프린스턴대 교수가 동조하면서 저성장이 가져올 우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로 빠르게 번져나갔다.혁신이 정체된 시기가 도래했다 1957년 미국 보잉사는 최고 시속 1,010km인 경이적인 여객기 ‘B-707’기를 발표하였다. 1백 년 전에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었던 증기기관차가 시속 30km로 달렸던 것에 비하면 무려 30배나 더 빨라진 가히 혁명이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인류의 이동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와 달리 인류가 상업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속도는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시속 1,000km라는 한계에 묶여 있다. 최근에는 음속의 4배로 날아다닐 수 있는 ‘성층권 여객기’에 대한 구상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경제성 문제 뿐만 아니라 오존층 파괴라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개발회사조차 3~40년 후에나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이대로 간다면 1957년에 돌파한 상업용 여객기의 최고 시속인 1,000km대를 뛰어넘는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이처럼 특정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이 등장해 과거의 기술을 대체하지 못하면 생산성 향상 속도는 급격히 정체된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이런 정체 상황을 여러 번 겪어 왔고, 그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철도나 전기처럼 놀라운 기술 혁신이 일어나 주었기 때문이다. 대략 50년에서 60년을 주기로 일어난 이러한 기술 혁신의 물결에 따라 인류는 거대한 호황과 불황을 반복적으로 겪어온 것이다.가장 미약했던 다섯번째 ‘혁신의 물결’마저 끝났다이 같은 장기적인 경기순환을 처음 발견한 것은 구소련의 우파 경제학자인 니콜라이 콘트라티에프(Nikolai Kondratiev)였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파동을 발견하였을 뿐, 그 파동의 명확한 이유는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의 발견에 영감을 얻은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증기기관이나 철도, 전기 등 중요한 기술 혁신과 장기적인 경기 파동이 겹치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혁신의 관점에서 경제 성장의 순환을 설명한 이후 ‘장기파동 이론’이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인류가 경험한 마지막 다섯번째 파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통신 혁명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은 그 이전의 파동과 달리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지는 못하였다. 198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성장이론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 교수는 “여기저기서 컴퓨터 시대가 온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You can see the computer age everywhere but in the productivity statistics.)”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처럼 정보통신에 대한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생산성 패러독스(Productivity Paradox)’라고 불렀다.그 뒤 많은 경제학자들이 솔로우의 생산성 패러독스가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도전했지만, 아직도 정보통신 혁명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는 명확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장하준 케임브릿지대 교수는 그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 혁명이 세탁기보다도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2012년 미국의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1990년대 인터넷 기술 혁신이 모두 신화에 불과한 것이며, 앞으로 이 미약한 혁신마저 사라져 경제성장은 더욱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현재 태동(胎動) 단계에 들어간 혁신적인 기술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3D 프린팅이나 생명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 로봇공학 등이 모두 잠재적으로 여섯번째 거대한 혁신의 물결을 이끌 수 있는 후보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혁신의 물결이 과거 다섯 차례의 혁신과 같은 방식으로 찾아온다면, 여섯번째 혁신의 물결은 빨라도 2030년대에나 가능할 것이다. 만일 이전보다 혁신의 보급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가정해도 지금 태동단계의 기술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려면 앞으로 10여 년은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소한 2020년대 중반까지는 기술 혁신의 암흑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또한 급속도로 악화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우리 경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빠른 추격자’ 전략의 종말 그 동안 우리나라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성공한 기술이나 제품을 신속히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 덕분이었다. 이 같은 추격 전략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신속하게 대규모 물량 공급을 할 수 있는 대기업 집단에 매우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은 ‘빠른 추격자’ 전략에 놀라울 정도로 특화된 장점을 갖고 있어 지금까지 고속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이런 추격 전략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선도 국가가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선도 국가의 기술혁신 속도가 늦어지면 더 싼 가격으로 무장한 후발 추격자에게 따라잡혀 ‘가장 빠른 추격자’의 지위를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이 시작된 것도 선도 기업의 기술 혁신이 정체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따라서 이 같은 추격을 따돌리려면 결국 우리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빠른 추격자’에 특화되어 있는 재벌 중심의 우리 경제가 갑자기 혁신의 주체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혁신의 주체가 되려면 미국처럼 신규 창업 기업이 기존 대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경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미 ‘대담한 경제’ 6편인 「 한국서 창업은 왜 위험한 도박이 되었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경제 구조는 그런 창업 환경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앞으로도 우리가 공정하고 혁신적인 창업환경을 만들지 않고 대기업만 밀어주는 과거의 추격 전략만을 고집한다면 우리 경제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20년대 후반에 여섯 번째 물결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는 철저하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1990년대 정보통신 혁명에 동참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우리 경제도 변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시대가 지금 눈앞에 와 있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3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83%가 한국 경제에 ‘구조적 장기 불황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은 더욱 심각하다. 전경련이 지난해 11월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8명 중 무려 90%가 ‘구조적 장기침체’나 ‘디플레이션의 공포’ 같은 우울하고 부정적인 단어를 올해의 키워드로 꼽았다.
본 기자가 3년 전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라는 제목의 책을 냈을 때만 해도 우리 경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대기업과 경제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한국의 구조적인 장기 불황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떤 상태이기에 이렇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일까? 경제 위기론은 언제나 있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이번 장기 불황의 위험성이 예사롭지 않다.
피터 드러커가 경제를 내다보는 열쇠, ‘인구’
우리나라에 구조적 장기불황을 몰고 오게 될 근본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우선 그 첫 번째로 일본과 유럽을 저성장의 늪에 빠뜨린 ‘인구’ 문제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인구’는 한 나라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만큼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인데, 유독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은 그 중요성과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반해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전 뉴욕 대학 교수는 “인구 통계의 변화는 정확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인구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인구에 대한 통찰’을 토대로 그는 종종 놀라운 경제 예측을 하였다.
1997년 유로화 통합이 눈앞에 다가오자 MIT대학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석학인 레스터 서로우(Lester Thurow) 교수는 유럽이 곧 미국을 능가하는 슈퍼파워(Superpower)로 떠오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해들은 피터 드러커 교수는 유럽이 슈퍼파워가 되기는커녕 조만간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는 고령화와 저출산이 가속화되면 일을 할 청년들이 줄어들어 노인 부양부담이 커질 것이고, 이로 인해 청년들이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소득(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게 되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러한 인구 감소 현상의 가속화는 거대한 유럽 경제마저 깊은 불황의 늪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유럽 경제를 집어 삼킨 ‘일본화’의 공포
인구 구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지표가 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생산가능인구는 노동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비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경제의 기둥이 된다. 이 때문에 한 나라에서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늘어날 때는 강력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면 대부분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어왔다.
이런 현상이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1991년부터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은 1989년부터 경제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한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이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경기 부양책을 써도 좀처럼 장기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자,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일본인들만의 독특한 국민성이나 일본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찾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더 이상 어느 나라도 일본을 조롱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일본처럼 어떠한 경기부양책으로도 경제를 되살리지 못하는 심각한 경제 불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경기 불황이 닥쳐온 시기가 묘하게도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하락한 시점과 일치한다. 스페인과 영국은 2007년부터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줄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듬해부터 극심한 경기 불황이 찾아왔다.
유로화(Euro)라는 단일 화폐로 묶여 있는 유로존(Eurozone) 전체를 보면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2011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다시 추락(더블딥, Double-dip)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연상시키는 극심한 경기 불황이 유럽 경제 전체를 휩쓸기 시작하자, 세계 언론들은 ‘일본화(Japanization)’의 공포가 유럽을 삼키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제를 노리는 ‘침묵의 살인자’
‘채권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투자전문가 빌 그로스(Bill Gross)는 “앞으로 수년간 무인도에 갇혀 단 한 가지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인구변화 정보를 택할 것이다.”라며 인구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인구 고령화가 각국의 경제성장률을 조용히 잠식해가는 '침묵의 살인자(Silent Growth Killer)'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과연 우리나라는 일본화의 공포에 빠진 유럽과 달리 이 ‘침묵의 살인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 비중은 1966년 53%에서 2012년 73%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높아져왔다. 그 덕분에 이제까지 빠른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2013년부터 주춤하던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내년부터는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8년이 되면 ‘인구절벽’이라고 부를 만큼 세계 역사상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빠르게 줄어든 전례가 없기 때문에 어떤 충격이 올지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화’의 충격,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을 기록하는 2015년은 우리 경제에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2015년 이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 구조는 송두리째 바뀌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부양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경제성장 속도가 급속히 둔화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내수시장의 성장도 정체된다. 이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면 청년들의 경제 기반이 더욱 악화되고, 이는 다시 저출산을 가속화시켜 인구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자산시장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려는 은퇴자에 비해 자산을 사들이는 청년층의 인구가 줄어들면, 자산 가격이 계속 유지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고령화에 철저히 대비했던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라에서 생산가능인구 비중의 감소와 동시에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 현상을 겪었다. 앞으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이러한 자산가격 하락을 빚으로 틀어막으려는 시도를 했던 나라는 자산가격이 더욱 큰 폭으로 하락해 결국 경제시스템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
그러나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극심한 위기나 장기불황에 빠져든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남유럽 국가들이 ‘일본화’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와 독일, 미국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충격을 완화해 나가고 있다.
먼저 프랑스는 출산율이 2.47을 기록했던 1970년부터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의 총력을 가족 복지 투자에 쏟아 출산율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독일은 아동과 청년에 대한 강력한 투자를 통해 그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소비 기반을 만들어 미래 경제의 버팀목을 강화하였다. 또한, 미국은 몰려드는 전 세계 인재들을 받아들여 생산성을 높이고 소비 기반을 확충함으로써 2007년 이후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불러온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성공적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일본화’의 충격을 이겨낸 나라는 아직까지 한 나라도 찾을 수 없다.
이렇게 세계 각국이 미래를 위한 생산가능인구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곧 눈앞에 닥칠 ‘일본화’ 현상에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로 떨어질 때까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제대로 노력 한 번 하지 않은 나라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더구나 우리는 미국처럼 해외의 최고 인재가 자진해서 우리나라 국민이 되겠다고 몰려들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판국에 경제 관료나 정치인들은 청년에 대한 ‘투자’를 단순한 ‘비용’으로 치부하고 포퓰리즘(Populism)으로 매도하며 철저히 외면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일본화’의 충격을 피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구나 앞으로 소개하겠지만 우리 경제의 앞길에는 일본화 충격에 못지않은 다른 위험 요소들까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앞으로 ‘대담한 경제’는 총 6편의 특별편을 통해 곧 우리에게 닥쳐올 최악의 장기 불황을 철저히 분석하고, 장기 불황의 위협 속에서 우리 자신을 구할 대안을 모색해 볼 것이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2
지난달 9일 KAIST 미래전략대학원 주최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발제를 맡은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바라는 미래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23%에 불과한 반면, ‘붕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응답이 무려 42%나 나와서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청중의 상당수였던 60대 이상 세대들은 이러한 청년들의 생각에 대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붕괴를 바라는 우리 청년들. 그 충격적인 대답을 접하는 기성세대들은 너무나 참담하고 우리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 청년들이 여전히 ‘새로운 시작’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이 아직은 식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비록 지금은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과 열악한 비정규직의 현실에 시달리고 있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일 우리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게 되면, 우리 경제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여 년간의 장기 불황에 길들여진 일본의 청년들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절망의 신인류, ‘마쿠도 난민’
지난 연말 일본 청년들의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새벽 1시에 도쿄에 있는 한 맥도널드 매장을 찾아갔다. 밤이 깊었는데도 청년들이 매장 가득 빼곡히 앉아 있었다. 대부분 혼자 매장을 찾은 이들은 100엔(약 930원)짜리 커피 한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엎드려 자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로 이들이 오랜 불황이 낳은 일본의 신인류 ‘마쿠도 난민(マクド難民)’이다. 마쿠도는 맥도널드의 일본식 발음인 마쿠도나루도(マクドナルド)를 줄인 말이다. 도대체 왜 청년들이 새벽 시간에 집에도 가지 않고 맥도널드로 몰려들고 있는 것일까?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일본 청년들이 임대료가 비싼 도쿄23구(東京23区)에 집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교외에 집을 얻거나 아예 집을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하룻밤에 1,000엔(약 9,3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PC방을 잠자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청년들은 100엔짜리 커피 하나로 밤을 지새울 수 있는 맥도널드를 찾는 것이다. 이 때문에 24시간 운영하던 맥도널드 지점들 중에서 새벽 2시 이후 청소를 한다며 잠시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새벽 2시가 되어 매장 문을 닫는다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 청년들은 조용히 일어나 다른 쉴 곳을 찾아 떠난다.
일본의 오랜 경기 불황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바로 청년들이었다. 1990년에 3.1%였던 청년실업률이 2008년에는 9.1%까지 치솟았다. 일본 국세청이 발표한 ‘민간급여실태 통계조사’에 따르면 30~34세까지의 평균 연봉은 1997년 449만 엔(약 4,200만 원)에서 2010년에는 384만 엔(약 3,600만 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일본 기업들이 경기 불황을 핑계로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단기 계약직 고용을 늘린 탓에 일본 청년들의 임금이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 청년들은 정부의 사회안전망에서도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일본의 고령화가 점점 가속화되면서, 1990년부터 2010년 사이 노인들의 복지비용에 투입되는 예산이 해마다 평균 5.9%나 늘어났다. 그 결과 2007년 기준 고령화 관련 복지지출이 전체 사회보장 지출의 70%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고령자를 위한 복지 지출액은 육아 등 가족복지를 위한 지출액의 10배나 된다. 복지강국 스웨덴의 경우 고령자 복지지출이 가족복지의 3배 정도에 불과하고, 독일이 4배 정도인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희망이 없어서 행복해요”…‘포기’를 택한 일본 청년들
이처럼 기업에 외면당하고 정부에게 버림받은 일본 청년들은 풍요로웠던 이전 세대에 비해 얼마나 불행할까?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뒤집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2011년 일본 내각부(内閣府)에서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한 20대 비율이 무려 70%를 넘은 것이다. 일본의 황금기였던 1970년대에 20대 청년들의 만족도가 50%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이 훨씬 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일본 청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본 청년들은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의 청년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탐을 내지 않는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로 진화하고 있다. ‘사토리 세대’란 마치 득도(得道)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많은 청년들이 절망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희망고문’을 그만두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 사토리 세대는 성공하겠다는 욕망은 물론, 더 좋은 물건을 갖고 싶다는 사소한 욕구까지 모두 버리고 말았다.
사토리 세대의 등장으로 청년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시작했지만, 당장 비상이 걸린 것은 기업들이었다. 청년들이 해외여행은 커녕 음주까지 줄이면서 내수시장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당장 비상이 걸린 것은 바로 자동차 산업이다. 일본 자동차공업회의 조사 결과, 일본의 전체 운전 빈도 중 20대 청년들의 운전 비중이 1999년 16%에서 2011년에는 8%로 반토막이 났다. 심지어 청년들이 운전면허조차 잘 따려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운전면허를 따라는 캠페인성 광고까지 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조차 아예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제 계약직을 전전하는 일본의 청년들은 돈이 없어서 이성을 못 만나는 단계를 넘어 아예 해탈(解脫)의 경지로 넘어가고 있다. 실제로 일본 남성의 경우 50세가 될 때까지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는 인구 비율인 ‘생애 미혼율’이 1980년 2.6%에서 2010년에는 20.1%로 무려 8배 가까이 급증했다. 그 결과 출산율까지 낮아지면서 일본 경제의 활력은 점점 더 약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의 가치를 깨달은 나라만이 살아 남는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고 다양한 경기 부양책을 써도 청년이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린 나라에서 경제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제야 일본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20여 년 동안 철저하게 무너진 청년 정책을 단번에 되돌리기란 쉽지가 않다. 일본은 전례가 없었기에 청년의 몰락을 앞두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그 공포스러운 모습들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우리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아간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는가?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리 청년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청년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가장 확실한 성장 동력이다. 청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나라는 자멸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제발 더 늦기 전에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
|
|